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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8일)는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29년이 되는 날이었다. 나는 대학생사람연대 광주 순례단 '들불'에서 16∼17일 광주를 갔다 왔다.

 

'들불'의 첫 일정은 전남대에서 도청까지 행진이었다. 80년 5월 18일 전남대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에 계엄군이 무차별적 진압을 하게 된다. 우리가 했던 행진은 18일 계엄군의 무차별적 폭력에 항의하여 19일 금남로로 향하던 전남대 학생들을 재현했던 것이다.

 

전남대에서 광주역을 지나 도청으로 향하면서 '비상계엄 해제하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광주 정신 계승하여 세상을 바꾸자!', '들불야학 정신 계승하여 나눔 연대 실천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당시의 대학생들의 마음을 알고자 했다. 비록 지금은 거리에 항쟁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평화로웠지만, 아직 광주항쟁의 정신을 이어야 한다는 플랜카드가 거리 곳곳에 붙여져 있었다.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도청

 

때마침 우리가 갔던 날이 도청을 개방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도청을 전체 다 개방하지 않고 일부만 공개 하고 있었다. 비록 도청 건물 전체를 다 둘러보며 옛 광주를 지키고자 했던 시민군들의 발자취를 따라 갈 수는 없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후배="선배 여기 총알 자국이 그대로 있어요!"

나="정말? 에이 보수 공사 하다가 난 자국 아닐까?"

후배="자세히 봐요. 그리고 한 두 군데가 아니라니 깐요. 저기도 보세요."

나="이야 정말이네. 이거 섬뜩하다. 이야기로만 듣던 80년 5월 27일 시민군의 마지막 격전지를 눈으로 확인하니 말이야."

 

 

도청은 광주의 아픈 역사를 현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계획에 따라 도청 별관을 철거하려고 한다. 살아 움직이는 역사의 장소를 철거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씁슬한 느낌이 들었다.

 

"묘지에 계신 분들 중에 대학생들이 많은 것 같아"

 

 

전남대에서 숙박을 하고 광주 열사들의 묘지를 참배하기 위해 망월동으로 향했다. 올해로 광주 망월동 묘지에 방문하는 것은 4번째이다. 하지만 매번 묘지를 방문할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유독 이번에는 대학생 열사 분들의 묘지가 눈에 띄었다.

 

서울 동국대에서 자취 생활을 하다 5월 19일 광주 집으로 내려온 박병규 열사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계엄군에게 폭력진압을 당하자 불의를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가 계엄군과 맞서 싸웠었다. 학생수습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항쟁의 마지막 날이 27일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

 

목사인 아버지의 길을 따라 한국신학대학 2학년에 다니던 류동운 열사는 18일 항쟁에 참여해 계엄군에 붙들려 상무대로 끌려갔다가 22일 풀려났다. 그리고 25일 도청으로 들어가 마지막까지 항쟁에 참여하다 생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서울에 있는 은행 정규직 일자리를 그만두고 가장 낮은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온 윤상원 열사가 눈에 띄었다. 윤상원 열사는 당시 노동자 야학 들불야학의 선생으로 참가하였다. 그리고 광주 항쟁이 일어났을 때 투사회보를 만들어 광주 시민들에게 항쟁의 진실을 알렸고, 끝까지 도청을 지키다가 생을 마쳤다.

 

박병규, 류동운, 윤상원 열사 외에도 20대 열사의 묘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이것을 보며 과연 현재 우리 대학생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불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연대하고 있는가?

 

2009년 5월 18일에 기업 후원 콘서트가 열리는 대학교

 

지난 주말 광주 순례단 '들불'을 통해 광주 정신을 많이 느끼고 왔는데 다시 대학교로 돌아오니 현실은 우울했다.

 

부산 D대학교에서는 광주 5.18 항쟁에 대한 이야기는 커녕 모 은행의 주최와 총학생회 후원으로 대형 콘서트가 열렸다. 체육대회를 맞이하여 학교 분위기를 즐겁게 하려는 학생회의 취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꼭 5월 18일에 해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또 5.18 정신은 온대 간대 없고 외부 자본이(모 은행) 학생사회에 들어와 학생들의 눈과 귀를 다른 곳으로 집중시키려는 모습에 광주를 갔다 온 나로서 두 눈을 뜨고 보기가 민망하였다.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광주항쟁 당시 돌아가신 윤상원 열사와 집의 연탄 가스 누출로 돌아가신 노동운동가 박기순 열사의 영원 결혼식 때 불러졌던 임을 위한행진곡에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 까지 흔들리지말자..../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1980년 광주에서는 많은 학생, 노동자, 농민 등의 사람들은 인간의 보편적인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계엄군의 폭력에 맞서다 돌아가셨다. 노래의 가사처럼 앞서서간 광주의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지금 살아 있는 산자들이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산자여 따르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필자의 블로그와 다음블로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광주518, #광주,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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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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