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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암으로 가는 길.
 월명암으로 가는 길.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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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지를 떠나 월명암을 향해 간다. 길은 굽이굽이 이어지는 곡선의 길이다. 사람의 마음은 알게 모르게 자신이 걸어가는 길의 모양을 닮는다. 이 산에 들어오기 전까지 직선이었던 마음이 어느새 곡선이 되어 있다. 간간이 굽이치는 눈발이 몸과 마음을 흥건히 적신다. 

봉래구곡을 지나자 자연보호 탑이 염불삼매에 들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앞으로 곧장 가면 직소폭포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난 월명암 가는 산길을 따라간다. 남여치 쪽에서 오르는 길보다 훨씬 험한 길이다.

이따금 암벽 가에 홀로 기대어 선 소나무들과 조우한다. 마치 추사의 세한도를 연상시키는 듯한 풍경이다. 추위는 나무를 단련시키고 시련은 인간을 단련시킨다. 자연이 주는 온갖 풍설을 이기고서 저렇게 푸름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소나무가 얼마나 강인한 식물인지 알게 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저 푸름은 얼마나 서럽게 도달한 빛깔인가.

하얗게 눈 덮인 내변산 봉우리들. 올겨울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다. 북쪽에 있는 산에서도 보지 못한 눈을 비로소 남쪽에 와서 본다는 일종의 아이러니다. 산마루에 올라서자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다. 아이젠을 차고서 조심조심 산길을 걸어간다. 오리가량이나  걸었을까. 마침내 월명암이 조촐한 모습을 드러낸다. 얼마 만에 다시 찾아온 월명암인가.  나그네의 가슴 속으로 할 줄기 감회가 바람처럼 스쳐간다.  

대웅전과 관음전.
 대웅전과 관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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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선원 앞에서 바라본 대웅전의 뒷모습.
 사성선원 앞에서 바라본 대웅전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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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변산 쌍선봉 아래 결가부좌를 틀고 앉은 월명암은 눈이야 내리든 말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삼매에 들어 있다. 어쩌면 온갖 번뇌 망상을 저 눈보라에 실어 날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월명암은  신라 문무왕 12년(692년) 때, 인도의 유마 거사, 중국의 방 거사와 더불어 3대 거사로 일컫는 부설 거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월명암은 가히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라 부를 만하다. 산상무쟁처란 뛰어난 경치와 땅의 기운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번뇌와 분별이 끊어지고 가라앉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대웅전 마당가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곳에 아주 어중간한 시간에 왔음을 후회한다. 조금 더 이른 아침에 찾아오거나 늦은 저녁에 왔어야 했다. 최남선이 왜 '심춘순례'라는 글 속에서 "월명암이 낙조와 한가지 조애(朝靄)의 승지(勝地)로 이름있는 소이를 알겠다"라고 했는지 알겠다.

조애란 아침에 끼는 아지랑이를 이르는 말이다. 암자 이름이 월명암이니 달밤이야 더 말할 것 없을 터. 아침 일찍 이 자리에 서서 저 아래 골짜기로부터 보일 듯 말듯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바라보기라도 한다면 탈속의 기쁨이 가슴 속으로 물밀어 올 것만 같다.

사성선원. 부설 거사와 그의 가족들을 기리고자 지은 전각이다.
 사성선원. 부설 거사와 그의 가족들을 기리고자 지은 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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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스님의 거처인 운해당. 부설 거사의 거처가 있었다면 저 자리 쯤 있지 않았을까.
 주지 스님의 거처인 운해당. 부설 거사의 거처가 있었다면 저 자리 쯤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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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설 거사의 전설에서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이곳에 처음 자신의 딸 월명을 위해 암자를 지어준 월명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이곳에 소장된 작자 미상의 불교 소설인 부설전(浮雪傳)은 그가 신라 진덕여왕 때 태어났으며 본명이 진광세(陳光世)였다고 전한다. 법명을 부설, 자를 의상(宜祥)이라 했다. 변산에다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정진하던 그는 친구인 영조, 영희와 함께 오대산으로 구도의 길을 떠났다가 김제에서 묘화라는 여인을 만나서 결혼함으로써 파계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오대산에서 수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영조와 영희가 부설을 찾아왔다. 세 사람은 누구의 수행의 깊이가 더 깊은지 거량해보고자 물병 세 개를 달아놓고 하나씩 쳤는데, 부설의 병만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부설은 자신의 도의 깊이가 인정받은 것보다 자신이 택했던 사랑의 정당성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더욱 감격스러워했을는지 모른다.

열반을 앞둔 부설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목무소견무분별(目無所見無分別) 눈으로 보는 것이 없으니 분별이 없고
이청무성절시비(耳聽無聲絶是非) 귀에는 들리는 소리 없어 시비가 끊어졌네.
분별시비도방하(分別是非都放下) 시비와 분별을 모두 놓아버리고
단관심불자귀의(但看心佛自歸依) 다만 내 마음의 부처님을 보고 스스로 귀의한다.
                                     - 부설거사(浮雪居士)의 게송

부설 거사의 이야기 속에서 우린 굳이 승속(僧俗0을 차별하지 않는 중생구제사상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선 은근히 대처승의 정당성을 표방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부설 거사는 중이 처와 자식을 두었다고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이다. "시비와 분별을 모두 놓아버리고/ 다만 내 마음의 부처님을 보고 스스로 귀의한다"는 구절은 혹시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역정을 돌아본 구절이 아닐는지.

그러나 부설 거사는 그런 역경을 딛고 용맹정진하여 끝내 한 소식을 얻었다. 부설거사의 전설은 우리에게 사랑에 관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준다. 사랑을 하려거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과 하라는. 만일 묘화라는 여인이 부설의 길을 반대했다면 부설이 어찌 수도에만 정진할 수 있었겠는가.

전각들을 두루 들여다보고 나서 요사 앞을 지나려는데 "어디서 오셨느냐?"고 늙은 보살이 말을 건넨다. 그러더니 안으로 들어와 점심 공양이나 하고 가라고 권한다. 못 이기는 척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요사 안에는 사람들로 그득했다. "원 이렇게 인심이 좋아서야. 자칫 절 살림을 말아먹을 보살이로군." 공양도 머슴 밥그릇만큼이나 고봉으로 수북이 담겼다. 서둘러 공양을 마치고 나서 맘씨 좋은 보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 후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의상봉. 가장 왼쪽에 있는 봉우리가 의상봉이다.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의상봉. 가장 왼쪽에 있는 봉우리가 의상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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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의 방장(不思議方丈)'이 있는 의상봉

다시 마당가에 섰다. 저 멀리 의상봉이 바라다보인다. 눈 내리는 날씨만 아니라면 손에 잡힐 듯 아주 선명히 보일 텐데…. 저 의상봉 꼭대기엔 고려시대 명문장가였던 이규보(1168-1241)가 다녀갔던 이른바 '불사의방장(不思議方丈)'이 있다. 이규보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의 한 대목을 생각한다.

又問所謂不思議方丈者求觀之。其高險萬倍於曉公方丈。有木梯高可百尺。直倚絶壁。三面皆不測之壑。回身計級而下。乃得至於方丈。一失足則更無可奈何矣。予平日登一臺一樓高不過尋丈者。以頭病故。猶眩眩然不得俯臨。至是益悚然股抃。未入而頭已旋矣。然自昔飽聞勝跡。今幸特來。若不入見其方丈。又不得禮眞表大士之像。則後必悔矣。於是盤桓蒲北而下。足猶在級而若將已墮者。- <동국이상국전집> 제23권 '남행월일기'에서

또 이른바 '불사의 방장(不思議方丈)'이란 것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서 구경하였는데, 그 높고 험함이 효공의 방장의 만배였고 높이 1백 척쯤 되는 나무사다리가 곧게 절벽에 걸쳐 있었다. 3면이 모두 위험한 골짜기라, 몸을 돌려 계단을 하나씩 딛고 내려와야만 방장에 이를 수가 있다. 한 번만 헛디디면 다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나는 평소에 높이 한 길에 불과한 누대(樓臺)를 오를 때도 두통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신이 아찔하여 굽어볼 수 없던 터인데, 이에 이르러는 더욱 다리가 와들와들 떨려 들어가기도 전에 머리가 벌써 빙 돈다. - 이규보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서

그렇게 와들와들 떨면서도 이규보는 끝내 '불사의 방장'에 들어가기에 이른다. 진표대사의 자취를 보지 못한 채 그냥 가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까봐서이다. 겁 많은 나도 언젠가 '불사의 방장'에 가게 된다면 꼭 이규보처럼 되리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의상봉이여, 불사의 방장이여. 기다려라. 언젠가 내가 그곳에 찾아갈지니. 

관음봉(왼쪽)을 비롯한 내변산 봉우리들.
 관음봉(왼쪽)을 비롯한 내변산 봉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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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백이 고개 으측으로 뻗은 산줄기들.
 재백이 고개 으측으로 뻗은 산줄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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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야기가 서린 곳은 달밤에 와야 한다. 그리고 달과 바람 소리가 교대로 들려주는 사랑의 전설을 숙연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뭐가 그리 바쁜지 알지 못하면서 번번이 월명암의 달밤을, 낙조대의 황혼을 보지 못한 채 하산하고 마는가.

아쉬운 마음을 부여안고 월명암을 떠난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내변산 봉우리들이 직소폭포까지 먼길을 동행해준다. 아아, 이렇게 눈 내리는 날엔 말 없는 무생물인 저 산줄기들마저 끝없이 유정(有情)한 줄 이제야 알겠다.


태그:#내변산 , #월명암, #부설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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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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