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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릴 적 어버이날만 되면 부모님께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착한 아들이 되겠습니다.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뻔한 말이지만 편지를 읽은 부모님은 기뻐하셨지요.

 

요즘도 별 다르지 않습니다. 어버이날이면 어김없이 편지 한 장을 들고와서 어버이날을 축하해줍니다. 어릴 적 나를 보는 것같아 웃음이 나오지만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편지를 쓸때만이라도 자기를 길러준 부모를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막둥이가 아빠에게 쓴 편지라면서 불쑥 내밀었습니다. 막둥이가 쓰는 편지를 항상 비슷합니다. 키워주셔서 고맙고, 선물 못해 드려 죄송하고, 앞으로 돈을 모아 선물을 사주겠다는 말은 변함없는 막둥이 편지입니다.

 

자질구레한 말까지 다 쓰는 서헌이가 어떤 내용으로 편지를 쓸지 궁금했습니다. 아들보다는 딸에 받는 편지가 더 정감있는 이유는 예쁜 시늉은 다 하기 때문입니다. 4학년이 되었으니 더 예쁘고, 멋진 편지를 기대했습니다.

 

"아빠 어버이날 편지예요?"
"우리 예쁜 아이가 또 아빠에게 편지를 썼네. 올해는 무슨 내용일까?"

"그냥 인삿말만 썼어요?"
"이게 편지야?"

 

참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아빠와 엄마에게 쓴 편지라고 내민 것이 메모였습니다.

 

아빠께

아빠 안녕하세요. 저는 서헌이예요.

5월 8일 어버이날에 건강하세요.

즐겁게 보내세요.

그리고 안녕히 계세요.

2009년 5월 7일

딸 서헌 올림

 

섭섭했습니다. 4학년 쯤 되면 인사가 아니라 아빠에게 원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아빠가 고쳤으면 하는 일도 있을 것인데 이런 내용을 편지라고 내미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딸 아이에게 관심이 없었는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아빠와 엄마에게는 간단하게 편지를 썼지만 할머니와 외할머니에게 어버이날 선물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모아둔 돈이 없어서 선물을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선물을 못해드려도 카네이션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300원짜리 카네이션을 샀지만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자기 손을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겠다는 말을 듣고 간단 명료한 편지를 받고 섭섭했던 마음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내일 할머니와 외할머니 가슴에는 서헌이가 만든 카네이션이 달려 있을 것입니다.

 

 

 


태그:#어버이날, #편지, #카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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