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헤이리는 짙은 안개 속에 잠겨있습니다.
안개 속 헤이리의 윤곽은 아련하고
소리조차 안개 뒤로 숨은 듯
적막하고 고요합니다.
길게 드리운 버드나무의 실가지가 느리게 간간이 몸을 흔들고
새순을 낸 연둣빛 작살나무 잎의 팔랑이는 모습에
바람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 뿐입니다.
저는 이 적막을 두고 늦은 밤도 잠자리에 드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 아침의 고요가 궁금해서 이부자리와 오랫동안 친해질 수 없습니다.
전례로 보아 한두 시간 뒤면
참나무골 동산을 넘어온 태양이
안개를 몰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대처의 사람들이
헤이리에 당도할 것입니다.
헤이리에서는 자일로드롭의 철렁한 경험이나
롤러코스터의 아찔한 현기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놀이공원의 전율에 비하면 따분한 곳이지요.
그러나 간담이 서늘해지는 자극 대신
기웃거리며 느리게 걷는 것에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분이라면
마음이 충만해지는 곳입니다.
헤이리는
등 푸른 고등어가 창문에서 헤엄치는 곳,
배 깔고 게으르게 독서할 수 있는 곳,
지나가는 사람 손짓해서 마음을 붙잡는 곳,
만나면 반가워 함박웃음 짓는 곳,
맏며느리 같은 갤러리 관장이 이웃의 어르신 화가를 시아버님으로 공양하는 곳,
수줍음 머금은 미소에 더불어 착해지는 곳,
지친 마음 옆 사람의 어깨에 잠시 기대 휴식할 수 있는 곳,
단풍나무 아래에서 반가움을 나누고,
키 큰 소나무아래에서 소담한 대화가 가능한 곳,
노신사부부가 팔짱 끼고 갤러리를 소요할 수 있는 곳,
작가로 부터 긴 명주 실타래도 닿지 않을 심해 같은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헤이리에서는 자동차를 벗고
느리게 그 고요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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