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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골목길은 지상의 길이지만, 지상이 아닌 하늘에는 전선줄이 마치 동네 골목길처럼 이리 저리 어지럽게 나 있다. 골목길에는 어디나 전선줄이 따라 오고 전봇대가 골목길에 일주문처럼 서 있다. 오늘은 초파일이다. 나는 새벽일찍 어느날보다 일찍 산책에 나섰다. 출근 걱정도 없어 느긋하게 걷고 걷기로 했다. 그런데 새벽 5시라도 벌써 대문을 열고 나오는 골목길은 대낮처럼 환했다. 나는 이 골목길 저 저골목길 기웃기웃 거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다니는 동네 버스 정류장 앞 Y 교회 앞에 보기 좋게 등꽃이 피어 있다. 연보라 빛 등꽃이 함박꽃보다 탐스럽게 피어 있는데, 지나가는 나그네를 위해 등나무 아래 내 놓은 의자에 앉아 올려다 보는 아침 하늘이 너무 파랗다.
 

어머님의 명부을 밝히는 마음의 등을 달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 오월은 하늘만 우러러 보아도 가슴이 설레이는 희망의 계절이다. 오월은 장미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등꽃의 계절이기도 하다. 동네 골목길에 환한 연등처럼 밝혀진 등꽃 아래 서면 왈칵 그리워 지는 첫 사랑의 얼굴이 생각나고, 해마다 사월 초파일이면 절에 가셔서 연등을 밝히시던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난다.
 
올해는 돌아가신 어머님 위한 연등을 아직 달지 못했다. 꼭 불자가 아니라도 사월 초파일은 많은 사람들이 등을 달고 소원을 빈다. 사월 초파일 연등을 하는 풍속은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낮은 곳에 등을 다는 것보다 남보다 크고 높은 데 등을 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동네 사찰에서 접수하는 연등 값이 나 같은 서민에게는 생각보다 금액이 만만치지 않았다. 그래, 무슨 등 등 해도 연등보다 마음의 등보다 소중한 등은 없다. 그 마음의 등 하나를 어머님을 위해 동네 전선줄에 달아본다.  
 
오월은 등꽃의 계절... 등꽃은 아름다운 오월의 연등이다. 전깃불이 들어와서 밝히는 요즘의 연등보다 등꽃은 자연의 등(燈)같다. 등나무는 아구아나처럼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한 나무. 어떤 환경조건에서도 죽지 않고 잘 자라는 등나무는 인간의 의지를 표상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차마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것일까
 
수줍게 늘어뜨린
연보랏빛 꽃타래
혼자서 등꽃 아래 서면
누군가를 위해
꽃등을 밝히고 싶은 마음
나도 이젠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하리
'등꽃 아래서'-'이해인'
 

사월 초파일 연등은 여러가지 모양이 있다고 한다. 과실 모양, 연꽃 모양, 어류 모양, 동물 모양 등 그러나 등꽃 만큼 우리의 마음의 등불 같이 환한 등은 없을 듯 하다. 환한 마음의 등불이 내 걸린 등나무 아래 앉아 있는 내 마음도 초파일의 연등이 된다.
 
우리네가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처럼 이리 저리 얼키고 설켜 가닥가닥 전선줄 같은 등줄기 아래 환하게 매달린 등꽃은 오래된 골목길의 연등행렬처럼 환하다.
 


태그:#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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