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러분들도 '투자'할 생각하지 마세요."

 

지난 23일 정태인 선생님 강연을 들었다. 월간 <작은책>에서 달마다 여는 특집강좌 가운데 하나였다. 주제는 '술술 넘어가는 노동자 경제 상식.' 정태인 선생님 강연은 언제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을 참 쉽고도 재미있게 말씀을 잘 풀어주시거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전 세계 경제 위기의 근본 문제들을 설명하면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로 완전 끝으로 내달리고 있는 우리 경제 문제까지도 알뜰살뜰하게 짚어주셨다. 그런데, 모든 강연 내용 다 제치고 내 마음에 가장 와 닿는 말씀은, 뜻밖에도 강연 끝에 우스개처럼 던진 말씀이었다.

 

"전 딱 보통예금 통장 밖에 없어요. 통장 살필 일도 잘 없죠. 카드 결제일 앞두고 한 번씩 살피는 것 말곤. 여러분들도 '투자'할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타짜랑 게임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그 말씀을 듣는데 괜히 흐뭇했다. 왜냐! 나도 딱 그렇거든. '투자'니 '재테크'니 이런 말 무척 싫어하기도 하고. 흐뭇한 마음속에 조금 지난 내 이야기가 떠올랐다. '재테크도 안 하는 어느 바보의 넋두리' 정도로 생각되는 그 이야기를, 이제부터 해보련다.

 

재테크도 안 하는 어느 바보의 넋두리

 

2년 전 친구 둘을 만났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여느 경제 전문지 기자로 그 때도 지금도 일하고 있다. 그 친구는 전에 '재테크'에 대한 책을 낸 적이 있고, 만났을 그 때는 또 다른 재테크 책을 써서, 인쇄가 막 들어간 상태였다. 게다가 조만간 주식과 재테크에 대한 책을 또 쓸 예정이기도 했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 제일 친한 동기였고, 졸업한 뒤에도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서로에 대해 '잘' 안다는 말. 그러니까 막 나온 그 책을 쓰면서는 '재테크' 안 하는 사례로 내 이야기를 써도 되겠느냐 물어서, 그러라고 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만 그 친구랑 만나는 자리에서 조금 싸울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좀체 그럴 일도, 까닭도 없는 사이인데…. 사건의 발단은 바로 '재.테.크!'

 

난 재테크를 하지 않는다. 또한 남편 통장을 열어본 적도 없고, 내 통장을 남편이 본 적도 없다. 집안 살림 때문에 갑자기 돈이 필요하거나 하면 서로 입으로만 묻는다.

 

"당신, 통장에 얼마 있어?"

 

그런 식으로 늘 해결했다. 쓰는 돈에 대해 정해진 틀 같은 건 없다. 주식이니 펀드니 하면서 재테크 어쩌고 하는 건 신경 쓸 시간도 없지만, 신경을 쓸 수도 없다. 왜냐, 정말 관심도 없을 뿐더러, 재테크를 좋게 보지 않는 내 마음 때문이다. 정당한 소득이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러면 재테크를 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 굴리고 발품 파는 것도 노동력이니, 그게 왜 불로소득이냐고 많이들 따질 것도 같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비정상적인 금융 구조, 부동산 구조에 기대어 이윤을 챙기는 것이니, 결과적으론 불로소득 아니겠냐고.

 

불로소득이 왜 나쁘냐고 혹시 물을 누군가를 위해, 사전 지식을 빌려 대답해 본다. '불로소득(不勞所得) : 직접 일을 하지 아니하고 얻는 수익. 이자, 배당금, 지대(地代) 따위를 통틀어 이른다.' 

 

하여간 난 그렇게 '재테크'하고는 동떨어진 채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아마 그러기가 쉬울 테다. 내가 그렇게 생겨먹은 걸 정말 잘 아는 친구 둘이, 그날따라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그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재테크 안 하는 거, 어리석은 거 아니야?"

 

소박한 수준의 재테크는 '삶의 지혜'며, 그걸 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좀 어리석은 거 아니냐는 게 두 친구 생각이었다. 조금만 신경 쓰면 돈이 차곡차곡 늘어날 수 있는데 아무 신경도 안 쓰는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단다.

 

친구들 때문에 난 무척 당황했다. 그래서 내가 왜 그렇게 재테크를 싫어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우리 집,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와 육남매.

 

넉넉하지는 않지만 가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엄마가 너무 지독하게 절약을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은 어릴 때부터 가졌던 것 같다.

 

대학에 다닐 때는 후배들 밥과 술 사 줄 돈만 넉넉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많이들 그랬겠지만, 그 때는 늘 술값 때문에 걱정이었고, 술값에 배가 고팠다. 그래서 나한텐 '돈'을 대하는 이런 마음이 생겼다. '돈'이란 건 후배들 술 사주고 싶을 때, 그리고 내가 술 먹고 싶을 때, 그 때 맘 놓고 쓸 수 있으면 그만인, 그런 대상으로. 

 

그래서 지금도 술값만은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단히 좋은데 가서 많이 쓰는 건 아니지만. 그런 나를 학교 다니면서, 그리고 졸업 뒤에도 내내 지켜본 친구는 한 번씩 나를 놀리기도 했다. 자기가 아는 여자들 가운데 한 달에 쓰는 돈에서 술값 비중이 나처럼 많은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아니 아마 없을 거라고.  

 

하여튼 돈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학교 다닐 때랑 지금이랑 크게 달라진 거 같지는 않다. 단, 결혼하고 반 지하 집에서 2년 살아본 뒤에는, '지하'에서는 살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은 돈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새롭게 가져보기는 했다. 그 생각 덕인지 결혼하고 2년 뒤 지금 살고 있는 2층 빌라로 옮길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술 값 말고는 별로 돈을 안 쓰니까, 그리고 아이가 없는 맞벌이 부부니까 그럴 수 있었다. 오래된 빌라지만 지하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아주 만족스럽게 살고 있고.

 

난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다. 2층 빌라에 살고, 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일 년에 두세 번쯤 필요한 옷 사고, 주변 사람들한테 뭐 사주고 싶을 때 사줄 수 있고, 읽고 싶은 책 읽을 수 있고, 보고 싶은 공연 볼 수 있고…. 그럴 만큼만 돈이 있으면 될 것 같다. 더 벌려고 아등바등할 필요를 못 느낀다.

 

더 벌려고 아등바등할 필요 못 느껴

 

하여간 난 이렇게 살고 있는데, 내 사는 방식을 그래도 남들보다 잘 아는 친구 두 놈이 나를 그날따라 '바보' 취급을 했다. '노후'는 어떻게 준비할 거냐는 소리까지 해가면서. 하긴, 나도 잘한 거는 없다.

 

친한 친구가 책을 계속 내고 있는데 '잘 썼다'는 입에 침 바른 소리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했으니. 물론 첫 책을 냈을 땐, 그 책 내용이 마음에는 안 들었지만 '축하'만은 해주었다. 정말 '억지로!' 하지만 두 번째 책을 낸 친구를 보면서는 더는 거짓 축하를 해줄 수 없었다.

 

그런 책이 나오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나로선 친한 친구가 재테크가 당연한 세상, 재테크 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되는 세상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될 책을 내고 있다는 데, '잘한다, 멋있다'고 맞장구를 쳐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제 그런 책 쓰지 말라'고 말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느라고 애를 썼지. 

 

난 정말 재테크가 싫다. 돈을 어떻게 모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건, 그게 단 일초뿐일지라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그런 내가 친구들 말처럼 정말 '바보' 아닐까, 한 번씩 고민도 해보았다. 하지만, 나랑 조금은 경향이 비슷해 보이는 정태인 선생님 말씀을 들은 뒤론, 괜히 당당해져서 이렇게 외치고 싶어졌다.

 

"나는 재테크가 싫어요! 재테크 안 해도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한마디만 더!

 

"재테크도 안 하는 어느 바보의 '넋두리'를 '외침' 수준으로 끌어 올려주신 정태인 선생님, 고맙습니다! 적어도 선생님 앞에서는 '바보'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오랜만에 흐뭇했습니다. 선생님, 저 바보 아닌 거 맞겠지요? 아니, 바보여도 괜찮아요. 저 같은 바보들이 많아지는 게, 꼭 나쁜 일은 아닌 거 같거든요. 재테크도 안 하는 바보들의 천국, 이 곧 제가 바라는 세상이니까요."  


태그:#재테크, #정태인, #작은책, #경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