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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현대(사간)입구에 걸린 '오치균-소외된 인간전' 대형포스터 작품은 '인체연작' 74×150cm 1989
 갤러리현대(사간)입구에 걸린 '오치균-소외된 인간전' 대형포스터 작품은 '인체연작' 74×150cm 198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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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균의 '소외된 인간'전이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5월 1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그린 자신의 누드작품과 90년대 중반에 낳은 딸과 아내 그리고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 등 40여 점을 선보인다.

그는 한국미술투자연구소에서 펴낸 <2009 미술투자 가이드북>에서 박수근, 이우환, 김환기, 이대원, 김종학, 천경자, 장욱진, 도상봉, 김창열 등과 함께 한국10대작가로 뽑혔다. 10대작가 중 오치균은 현존작가에다 젊다는 면에서 그의 특별한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그는 학부시절 교수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친구도 별반 없는 외톨이였다. 그래서 외로움이 세상과 소통하는 그의 유일한 창구였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이 오히려 그를 더 독창적 작가로 만든 것이 아닌가싶다. 하여간 그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가장 어둡고 고달픈 시기에 그린 누드자화상

 '인체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06×106cm 1989
 '인체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06×106cm 198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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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의 소개되는 '인체연작'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고달프고 어둡고 괴로웠던 뉴욕 유학시절에 탄생한 누드자화상으로 이 작가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꼭 필요하다. 절박한 남자누드지만 너무 아름답고 황홀하다.

오치균은 서울대 미대를 나와 1984년 역시 화가인 이명순씨와 결혼, 1985년 먼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뒤따라온다는 아내가 남편이 학원 등을 운영하여 어렵게 번 유학비를 사기당해 다 날려버린다. 그 소식은 오치균에게 청천벼락과 같은 사건이었다.

결국 오치균은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위험하지만 브루클린 할렘가에 방을 얻을 수밖에 없었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세탁소, 야채가게, 옷가게 점원 등 막일을 해야 했다. 아내도 같은 종류의 부업으로 생고생을 해야 했다.

"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그린다"

 '인체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91×107cm 1989
 '인체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91×107cm 198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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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나온 누드화라 그런지 처절하게 보인다. 오치균의 몸에서 치솟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몸에서 일어나는 경련이 느껴진다. 그의 몸은 마치 죽음에 닿아있는 것 같다. 아내에게 자신의 누드를 사진으로 찍게 한 후에 그걸 보며 마치 자신의 절망과 좌절을 지워나가듯 자신의 몸을 그려나갔다.

오치균의 이런 연작들은 인간의 고뇌를 그린 '고흐', 블랙 페인팅의 대변자 '고야', 명암법의 완성자 '렘브란트', 온몸을 던지며 물감을 붓는 '폴록', 실존적 치열함을 보여준 '자코메티', 추악미를 인체로 표현한 '루시앙 프로이트' 등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사실 이들은 오치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이기도 하다.

 '장독' 캔버스에 아크릴 117×78cm 2006
 '장독' 캔버스에 아크릴 117×78cm 2006
ⓒ 오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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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균은 "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그린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연히 세상에 길들여진 아름다움을 거부한다. 그는 특이하게도 인물이든 풍경이든 무너져내리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그가 탄광촌화가 황재형(1952~)을 만나러 우연히 태백에 갔다가 사북의 쓰러져가는 풍경에 반해 그곳을 뜨거운 가슴으로 그렸다.

작가는 그때 심정을 "사북에는 가난과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것들의 아름다움도 있다. 사북에서는 그 부조화한 빨강과 파랑이 내 가슴을 때렸다. 녹슨 양철지붕 위에 눈처럼 쌓인 탄가루는 아름다웠다"라고 고백한다.

이번 전도 바로 무참하게 망가져가는 자신을 누드화로 표현했다. 하긴 예술이란 폐허와 허무에서 시작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가.

오치균 그림값이 비싼 이유

 '인체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22×91cm 1989
 '인체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22×91cm 198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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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균은 생존하는 작가 중 그림값이 제일 높다. 모 일간지에 따르면 2007년 미술경매에서 낙찰총액만 해도 무려 62억 2900만원이란다. 그런데 왜 그의 작품이 이렇게 비쌀까?

그건 찬란한 생명의 빛을 캐보려고 작가가 자신의 혼과 기와 열정을 작품에 헌신적으로 다 퍼붓기 때문인가. 그의 그림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경건함과 숭고함이 있다. 그런데 전혀 의도적이지 않다. 게다가 그는 맨손으로 그림(指頭畵 hand painting)을 그린다. 그는 손으로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도 움직이게 하나보다.

독일화가들이 나치의 악몽과 그로 인한 빚어진 분단에 대한 고통과 갈등을 신표현주의로 풀어내듯 오치균은 유학생활에서 겪는 궁핍과 소외감을 누드자화상을 통해 씻어냈다.

작가자신과의 치열한 전투

 '인체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91×107cm 1989
 '인체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91×107cm 198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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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자기 자신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가 알 수 있다. 작년 산타페전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 지상의 왕국에서 추방된 카뮈의 이방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로 자기철학이 분명하고 감각과 지성이 넘치는 작가라는 인상을 준다.

요즘 '얼짱', '몸짱' 등이 유행어지만 '인체연작'을 쭉 보고 있으니 야생적 이미지의 작가 베이컨(1902~1992)도 그랬지만 몸이 우리시대의 화두가 아닌가싶다. 프랑스철학자 메를로퐁티(1908~1961)는 사람의 몸을 '감각 덩어리(mass sensible)'라며 그 감각이 열려야 산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내 온몸이 전율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도 남겼다.

하여간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사회도 이제는 이성(로고스)보단 감성(파토스)을 지성보단 감각을 정신보단 몸과 육체를 영혼보단 관능을 정치발전이나 경제성장보단 사회복지나 문화향유를 더 중시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30대 중반 지나 낳은 딸 진이

 '단잠1'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46×51cm 1994
 '단잠1'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46×51cm 1994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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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그의 딸 진이가 곤히 잠든 모습이다. 딸의 표정을 통해 작가의 심경을 간접적으로 내비친다. 작가가 30대중반 지나 늦게 낳은 딸, 이를 보는 아빠의 마음은 뿌듯하면서도 애틋해 보인다. 또한 삶의 언저리에서 작가와 함께 고생한 사람들을 생각하는지 모른다.

하긴 인생이든 예술이든 쉬우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예술에는 더더욱 공짜가 없다. 이 작품 속에 작가로서 가지는 삶에 대한 복잡한 감회가 뒤섞여 있는 것 같다. 하여간 딸의 천진한 표정과 그 주변에 소용돌이치는 분위기가 서로 하모니를 잘 이룬다.

아내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

 '이명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35×30cm 1994. 아내가 남편을 제대로 뒷바라지 해주지 못한 회한이 담긴 표정 같다. '아가의 행복' 94×41cm 1994
 '이명순'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35×30cm 1994. 아내가 남편을 제대로 뒷바라지 해주지 못한 회한이 담긴 표정 같다. '아가의 행복' 94×41cm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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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으로 작가자신이 그린 이명순씨를 보자. 이 작품은 아내에 대한 작가의 연민, 투정, 애정, 안타까움 등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왼쪽 아내는 생의 동반자로서 남편을 구원하는 여신 같고, 오른쪽 아기를 안고 행복해하는 엄마모습은 마치 '한국판 성모상' 같다.

이 부부는 같은 작가로서 어쩔 수 없이 서로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이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니 짜증나는 일이 자주 일어날 텐데 그런 면도 아내의 표정 속에 은근슬쩍 담았다.

하여간 그의 작품은 절박한 분위기, 투박한 질감, 격정적 색감 등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특히 작품전반에서 깔린 녹색에 청색, 황색, 갈색 등을 융합하여 빚어낸 독특한 색감은 가히 천재적이다. 그의 장엄한 작품세계에 빠지면 거기서 벗어나기 힘들다.

최고의 그림값을 구가하는 작가 오치균
 오치균
 오치균
ⓒ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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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충남 대덕군 반석리에서 10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남
1964년 초등학교 내내 전국 1등. 집에만 틀어박혀 생활함
1969년 중고등학교시절 미술부활동
1976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 입학. 아르바이트로 학비충당
1980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 졸업
1982년 재대 후 유학비 마련 학원운영
1984년 화가인 이명순과 결혼(2월10일)
1985년 백악미술관(관훈동) 첫 전시회. 미국으로 유학 떠남
1986년 미국 브루클린대 대학원입학 87년, 88년 1등수상.
1987년 뉴욕 소호 핀다 갤러리 개인전
1988년 브루클린대 대학원 졸업
1990년 뉴욕타임스 <아트리뷰>상 수상
1992년 가나화랑 전시 잠시 귀국 다시 뉴욕으로 감
1993년 프랑스 피아크(FIAC)아트페어 참가. 딸 진이 탄생
1994년 뉴욕(마리사델레)개인전. 뉴욕 떠나 산타페*로 이주
1995년 가나화랑에서 개인전 공간화랑(부산)
1997년 가나화랑 개인전 미국 '산타나' 체류를 끝으로 귀국
2002년 가나화랑 개인전(사북소재작품)
2007년 두바이아트페어 참가
2007년 갤러리현대(사간) 진달래와 사북의 겨울전
2007년 미술경매에서 낙찰총액 62억 2900만원 기록 세움(모 일간지)
2008년 갤러리현대(강남) 산타페 전
*산타페는 미국 뉴멕시코주도로 인디언문화, 멕시코토착문화, 스페인유럽문화가 혼재된 곳

덧붙이는 글 | * 위 사진은 전시회장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갤러리현대(사간) 전화 02)734-6111~3 팩스 02)734-1616
http://www.galleryhyundai.com에 들어가면 더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오치균 공식홈페이지 http://www.ohchig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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