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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가족의 생일날을 특별한 날로 여겨 생일상을 차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나 저의 처는 물론 우리아들들의 생일날도 무시의 날과 다름없는 찬 두세 가지의 평범한 아침상일 뿐입니다. 그에 대한 저의 변명은 '일 년 365일을 생일날처럼 특별하게 살아라'입니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라고 합니다. 저는 '장애인의 날'이라고 특정한 오늘이 마뜩치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생일날을 챙기지 않는 연유와 같습니다. 오늘, 장애인을 특별하게 예우하는 특별한 행사를 하고 나면 다른 날들의 무관심에 대해 어느 정도 죄책감을 덜 수 있는 면책을 부여받는 면피(免避)의 느낌이 있기 때문이지요.

 

 

또 다른 이유는 '장애인'이라는 용어 또한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지난주에 '용의 눈물'의 연출자이신 김재형 감독님과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소한 일상을 주제로한 대화중에 저는 '장애인'이라는 용어를 대체할 더 좋은 용어를 찾아봄이 어떨지를 얘기했습니다.

 

김 감독님께서는 '장애인'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인 용어로 채택하신 분이 당시 우리나라 복지쪽의 책임공무원이셨던 김 감독님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전에는 '불구자'라는 용어가 그 호칭을 대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더러는 병신이라는 용어가 쓰이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의 대학에서 제가 쓴 글을 보고 'disabled person'대신에 'physical challenger(육체적으로 도전받는 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권고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미국인 교수의 지적이후부터 부정적인 어감이 내포된 'the disabled'나 'the handicapped' 용어대신 긍정적인 의미가 내포된 'physical challenger'라는 용어에 더 큰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장애인'이라는 용어대신 당사자에게 긍정과 용기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용어의 고민에 대한 필요성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에 '심신장애자복지법'을 만들고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올해는 이 날을 특별한 날로 기념한지 29해째가 되는 해입니다. 우리가 이렇듯 세 번 강산이 변할 만한 세월동안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왔지만 정작 장애인을 위한 사회 인프라가 얼마나 개선되었고 장애인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편견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의문입니다.

 

 

헤이리에서도 한 달 전부터 이 날을 위한 '전국 장애인 미술 전시회'에 대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파주시장인종합복지관과 서울민족미술인협회가 주축이 되었습니다. 소설가이신 윤후명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공간인 헤이리의 '마음등불'을 갤러리의 명성을 올리거나 돈벌이가 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 일에 기꺼이 제공하습니다. 김기호 화백께서 앞장서신 이 일을 헤이리사무국에서 편의를 제공하고 주민들도 봉사자로 참여했습니다. 헤이리의 관할 관청인 탄현면에서도 채우병면장님이 인근 부대 장병들의 도움을 받아 마음등불 앞 행사장을 정비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국의 장애인들이 출품한 이 미술전시회의 명칭을 정함에 있어서 '전국 장애인 미술 전시회'라는 명칭에서 장애인이란 한정사를 뺄 것을 건의했습니다. 그냥 '작가'이면 될 것을 '여류'라는 한정사를 붙여서 무의식중에 남여의 차별을 유발하는 '여류작가'라는 용어처럼 미술전시회이면 충분할 것을 '장애인'이라는 수식어를 넣어서 차별을 유발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이 의견은 관련단체에서 난감한 뜻을 표명해서 받아들여지지는 못했지만 가능하면 구분하고 차별하는 용어를 남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한 달간의 준비를 거쳐 4월 18일,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토요일을 택해 전국 장애인 미술 전시회인 '함께 그려보는 우리들의 이야기'전이 개막했습니다.

 

 

마음등불에서 개최된 지금까지의 모든 전시회를 통틀어 가장 많은 작품이 공간을 가득 메웠습니다. 전국에서 보내온 장애인들의 작품을 선별하지 않고 모두 걸었고 그들과 함께하는 마음을 나누기위해 기성작가들의 작품도 일부 섞어 걸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눈 대신 마음으로 찍은 사진도 걸리고 지적장애인들이 떨리는 손으로 그러나 순수의 가슴으로 빚은 도자기들도 놓였습니다. 윤후명 선생님도 이 전시회를 위해 '아름다움을 배운다'라는 시화를 내주시고 저도 장애 없는 사회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전통솟대에서 모티프를 얻은 '새'라는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마음등불 앞에서는 장애인과 봉사자가 함께 모여 이 날을 경축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며칠 전부터 휠체어가 불편 없이 드나들도록 군인들과 함께 손수 삽을 들고 땅을 골랐던 탄현면장님도 작업복을 벗고 점퍼로 멋을 낸 모습으로 관객들의 뒤쪽에서 흐뭇하게 행사를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봄이 한창인 헤이리의 하늘처럼 화창한 장애인들의 웃음을 지켜보면서 진정 장애를 가진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습니다. 보다 큰 장애는 신체의 장애가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의 눈으로 대하는 마음의 장애, 생각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장애인은 단지 신체에 장애를 가진, 그러나 다른  재주와 능력을 가진 나와 다름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을 위한 것이기 보다 우리 모두가 가진 마음의 장애을 허무는 날인 셈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낮은 벽이라도 마음에 남아있다면 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가득한 '마음등불'로의 나들이를 통해 그 오해의 벽을 허물기회를 가져보시길…….

 

 

*전국 장애인 미술 전시회 '함께 그려보는 우리들의 이야기'전

-장소 | 헤이리 '마음등불'

-기간 | 4월 18일 _ 5월 6일

-체험행사 | 장애이해 및 체험, 천연비누만들기, 버튼만들기, 희망메시지작성, 장애인돕기 솜사탕 및 화분판매(4월 25일, 26일, 5월 2일, 3일, 5일) 염색, 전각, 압화 체험(4월 25일, 26일, 5월 2일, 3일) 국립중앙박물관의 움직이는 박물관(4월 25일, 26일)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제29회장애인의날, #전국장애인미술전시회, #함께그려보는우리들의이야기, #헤이리, #파주장애인종합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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