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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에 시작된 라우쉔버그의 정크 아트

라우쉔버그의 '자전거 타기'
 라우쉔버그의 '자전거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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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아트는 1966년 라우쉔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그의 예술은 네오 다다(Neo-Dada)로 불렸다. 다다의 선구자인 마르셀 듀상(Marcel Duchamp)의 영향으로 라우쉔버그는 일상의 대상과 예술적인 오브제의 차이(gap)라는 문제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그는 듀상과 마찬가지로 예술을 보는 관찰자의 역할을 중시했다.

라우쉔버그가 1963년에 만든 팝 아트 작품 'combine'
 라우쉔버그가 1963년에 만든 팝 아트 작품 'comb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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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61년 라우쉔버그는 예술에 있어서 창조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반대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1962년 그는 그림에 대상과 이미지 그리고 사진을 도입하여 실크스크린 기법을 통해 복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라우쉔버그는 초기 미국 팝 아트의 선구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1966년 그는 빌리 클뤼버와 함께 비영리기구인 '미술과 기술의 실험들(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을 만들어 미술가와 기술자의 공동 작업을 추진한다. 이것이 정크 아트의 시작이다.

라우쉔버그는 1925년 미국의 남부 텍사스에서 독일계 아버지와 영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캔자스 시티 미술학교와 파리의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파리에서 그는 부인이 될 수잔 바일을 만났고, 1948년 미국으로 돌아와 함께 노스 캐롤라이나의 블랙 마운틴 대학을 다녔다.

이곳에서 그는 바우하우스 출신의 교수인 요셉 알버스(Joseph Albers)를 만나 새로운 실험에 대한 자극을 받는다. 요셉 알버스는 그에게 '영향력이 없는 실험'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가 배운 것과는 정반대로 작업할 것을 주문한다. 라우쉔버그는 1949년부터 1952년까지 뉴욕의 미대생 모임에서 바츠라프 비트라칠과 사이 툼블리 등과 교류한다. 1953년 아내인 수잔과 이혼했고, 1961년 아이리스 클러트 미술관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실험과 창조성을 강조하는 예술의 길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자전거와 라디에이터 그릴

오대호는 라우쉔버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대호는 라우쉔버그의 예술을 보고 배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라우쉔버그가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는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오대호와 라우쉔버그 두 사람은 미술과 기술을 연결하는 실험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라우쉔버그는 기술 부문에 있어 클뤼버의 도움을 받았다.

이에 비해 오대호는 미술과 기술 두 가지 재능을 다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과 조소를 공부했기 때문에, 그의 정크 아트는 좀 더 과학적이면서도 좀 더 예술적이다. 이것이 바로 오대호의 강점이다. 그래서인지 오대호의 정크 아트에서는 살아 있는 예술혼이 느껴진다. 금속으로 만든 동물인데 살아 움직이고, 고철과 나무로 만든 스피커인데 예술성이 느껴진다.

사랑을 알리는 여자
 사랑을 알리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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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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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오대호의 작품은 충주의 OS Gallery와 청주의 Brux Gallery에서 전시되고 있다. 지역 주민에게 검증을 받자는 목적에서 열리는 최초의 전시회이다. 지금까지 그는 주로 지방자치단체나 축제를 주최하는 기관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가 아닌 축제조형물 제작자 정도로 밖에는 인식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처음 작품을 통해 관객과 직접 만나는 일을 꾸미게 된 것이다.

OS Gallery 전시장 밖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큰 작품들이 세워져 있다. 이들은 남녀노소 네 가지 부류의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 칼을 든 남자, 사랑을 알리는 여자, 자전거를 타는 아이,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 이들의 모습은 뭔가 그로테스크하고, 이들을 보는 우리는 우수를 느끼게 된다. 기계복제시대 인간들이 느끼는 우울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시장의 모습
 전시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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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면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느낄 수 있다. 첫째가 동심의 세계이다. 자전거 타기, 곤충 채집, 동화 속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둘째가 인체의 세계이다. 동판과 라디에이터 그릴을 이용한 인체의 표현이다. 셋째가 소리의 세계이다. 소리는 작가 오대호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주제로 보인다. 그는 기계에서 소리를 꺼내고 작품 속에 그 소리를 연결하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잊을 수 없다

동심의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다. 이것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인간들에게 경고를 주는 동화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1284년 하멜른에 나타난 기이한 인간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한 전설이다. 하멜른은 독일의 베저(Weser) 강변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이곳에 쥐들이 나타나 마을의 곡식을 모두 먹어치운다. 이것을 보다 못한 사람들은 쥐를 퇴치하는 사람에게 금으로 보상해줄 것을 약속한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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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기이한 차림의 남자가 나타나서 이 도시를 쥐로부터 구해줄 것을 약속한다. 그는 피리를 불어 도시의 쥐들을 모은 뒤 이들을 베저강 안으로 끌고 들어가 익사시킨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약속했던 돈을 주지 않자 쥐잡이는 화가 나 도시를 떠난다. 며칠 후 그는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간 틈을 타 피리를 불며 도시를 돌아다닌다. 이 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모두 쥐잡이를 따라서 산속으로 들어간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가는 아이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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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두 아이만이 살아 돌아왔는데, 한 아이는 눈이 멀고 다른 아이는 말을 못해 간 곳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날이 1284년 6월26일이며, 이때 잃은 아이들이 모두 130명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오대호는 피리를 불면서 쥐들을 모으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가운데 피리를 부는 쥐잡이가 걸어가고, 그 주변에 쥐들이 귀를 종긋 세우고 쥐잡이를 주목한다.

여기서도 모티브는 음악이다. 쥐를 홀리게 만드는 것은 음악 소리이기 때문이다. 쥐들의 다양한 모습에서 우리는 생동감과 함께 예술성을 느낀다. 그 예술성이라는 것이 바로 음악과 미술의 결합에서 나온다. 오대호는 문학에서 출발해 미술을 만들어 내고 그 미술에서 음악이 들려오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오대호는 정크 아트에서 인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세부에 집착하지 말고 전체를 보라

남자(부조)
 남자(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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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오대호는 이번 전시에서 인체라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누드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는 부조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조소 형식이다. 이들은 상당히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외설로 여겨질 수도 있다. 옛날 같으면 심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잘 만들어진 예술이다. 특히 남자의 성기를 중심으로 배에서 허벅지까지 표현한 부조는 그 사실성이 뛰어나다. 배와 허벅지는 거의 평면으로 처리하고 성기는 입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성기를 강조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제목은 그냥 '남자'이다. 평범한 제목이 오히려 주제를 부각시킨다.

외다리
 외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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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조소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황동으로 만든 여인상과 스테인레스로 만든 외다리 여인이다. 이들 두 작품은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전자가 슬픈 염원을 담고 있다면 후자는 요염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더욱이 후자는 얼굴을 표현하지 않아 표정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두드러진 가슴과 외다리가 우리에게 뭔가를 말하는 듯하다. 이들 작품은 오대호가 추구하는 인체의 세계를 보여준다.  

여기도 소리를 도입했구만...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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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호가 이번 전시회에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세계는 소리로 대변되는 오케스트라의 세계이다. 지휘자의 현란한 몸짓, 커다란 축음기 스피커, 나무와 쇠로 만든 스피커, 턴테이블로 불리는 오디오 장치이다. 작가 오대호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소리를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해 오대호는 기계에서 소리를 꺼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소리를 연결하는 작업의 전 단계이다. 그는 우선 소리를 꺼내 보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관객들에게 '웃긴다', '착상이 기발하다', '그런데 소리도 좋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휘자의 표정, 연주되는 음악, 전체적인 구도와 배열이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고슴도치
 고슴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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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외에도 오대호는 이번 전시회에 못으로 만든 소품을 여럿 출품하고 있다. 고슴도치, 새, 닭, 개로 표현된 이들 작품은 그의 동물 선호를 보여준다. 그는 또한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 '컴퓨터 본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그의 또 다른 시도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취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존의 작품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작가 오대호의 작품은 한 곳에 머무는 일이 없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 바로 이 점이 그가 정크 아트를 대표하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정크 아트 작가 오대호 초대전이 충주의 OS Gallery와 청주의 Brux Gallery에서 4월2일부터 4월26일까지 열린다. 작가 오대호의 작업장은 음성군 읍성읍 용산리에 있는 Art Gallery이다. 그는 현재 소리를 미술에 끌어들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태그:#정크 아트, #라우쉔버그, #오대호, #동심의 세계, #OS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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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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