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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마을 입구에서 만난 유채꽃과 숲, 맑은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
 민속마을 입구에서 만난 유채꽃과 숲, 맑은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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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간도 넉넉한데 코끼리 쇼 한 번 구경하시죠?"

제주여행 마지막 날 가이드 겸 운전기사가 숙소를 출발하며 코끼리 쇼를 구경하라고 권한다. 물론 따로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옵션 상품이었다.

"시간 여유 있으면 짧은 코스라도 좋으니까 제주 올레 한 코스 한 곳 돌아봅시다. 우리들이 애들도 아니고, 코끼리 쇼보다는 제주의 자연환경이 더 좋거든요."

코끼리 쇼야 어린이들이나 좋아할 관광 상품이다. 그런데 그 코끼리 쇼를 보러가자고 하니 누가 좋아 하겠는가? 일행들은 아무도 코끼리 쇼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시간 여유가 있으면 근래 개발되었다는 제주올레가 훨씬 매력 있는 코스였다.

"코끼리 쇼도 안 보려면 제주도는 왜 왔습니까? 올레야 그거 지나는 길에 잠깐 보면 되는 건데..."

그런데 일행들의 반응이 좋지 않자 가이드 겸 운전기사가 버럭 짜증을 내는 게 아닌가. 코끼리 쇼도 보지 않으려면 제주도는 왜 왔느냐고 퉁명스럽게 맞받고 나온 것이다. 일행들이 모두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재래식 화장실의 똥돼지와 재미 있는 안내원 아주머니
 재래식 화장실의 똥돼지와 재미 있는 안내원 아주머니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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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일행들이야 제주도에서 관광 상품으로 팔고 있는 각종 공연이나 쇼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제주도는 전에 한두 번 다녀간 곳이어서 그런 공연이나 쇼는 대부분 이미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육지와 다른 제주도만의 독특한 자연 환경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끼리 쇼도 안 보려면 제주도에 왜 왔느냐고?

그러나 값싼 여행이라는 이유로 첫날과 이튿날 일정에 가이드의 권유를 많이 수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날까지 손님들의 관심과 요구는 묵살하고 가이드 자신의 부수입만 앞세우는 그를 더는 묵과할 수 없었다.

"여보세요. 0선생! 이거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들이 첫날부터 이틀 동안 선생이 권하는 곳 대부분 다 수용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까지 이런 식으로 강요해도 되는 겁니까?"

사실은 너무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정중하게 항의를 했다. 그때서야 그도 스스로 지나쳤다는 생각을 했는지 코끼리 쇼를 더는 권하지 않고 계약된 일정대로 하겠노라고 수긍을 했다. 제주 올레도 잊지 않고 돌아보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뜰안의 감나무는 재래식 화장실 표지
 뜰안의 감나무는 재래식 화장실 표지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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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발할 때 언짢았던 기분은 조랑말을 타는 것으로 날려 보냈다. 다음에 들른 곳이 민속마을이었다. 민속마을이야 모두들 한두 번 다녀간 코스지만 그래도 제주도의 옛 모습과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어서 모두들 기꺼이 참여했다. 마을 입구 길가엔 노란 유채꽃이 한들한들 맑은 하늘 흰 구름과 어우러져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우리들을 안내한 젊은 여성은 입심이 대단했다. 거침없는 말투로 일행들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옛 삶을 보여주는 도중에 제주 똥돼지와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의 웃음보를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여기 이 나무 아직 잎이 피진 않았지만 감나무입니다. 장독대에 감나무를 심어놨느냐고요? 아닙니다. 장독대가 아니라 화장실 옆에 심어 놓은 겁니다"

"왜 화장실 옆에 감나무냐고요? 옛날에 화장지가 있었습니까? 감나무 잎을 화장지 대신 사용하기 위해 화장실 옆에 감나무를 심은 겁니다"

돌로 쌓아 놓은 재래식 화장실 겸 똥돼지 집 옆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그런데 그 밑에 옹기 독 몇 개가 놓여 있어서 장독대인 줄 알았던 것이다.

숲과 언덕이 있는 풍경
 숲과 언덕이 있는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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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봐도 정겨운 제주 민속마을과 재미있는 안내원 아주머니

"여기 저 돼지 보이죠? 똥돼지냐고요? 맞습니다. 똥돼지, 그런데 지금은 똥 안 먹습니다. 지금은 화장실 따로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옛날에 이렇게 앉아 똥 누었습니다, 그러면 저렇게 누워있던 똥돼지가 밑으로 다가와 똥을 받아먹었습니다."

안내원은 쪼그리고 앉아 똥 누는 시늉을 해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 똥을 누다보면 여자들은 아무 일 없지만 저 왕바리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똥돼지가 똥을 받아먹다가 중요한 걸 먹을 건줄 알고 물어뜯어 버리면 큰일 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우하하! 웃음보를 터뜨린다. 안내원은 재치 있고 재미있는 말솜씨로 몇 곳을 안내하며 설명한 다음 예의 건강식품 파는 곳으로 안내했다. 먼저 오미자차를 한 잔씩 맛보게 한 후 조랑말 뼈로 만든 건강식품과 오미자차를 권했다. 일행들은 조랑말 뼈로 만든 건강식품은 전에 대부분 한 번씩 먹어본 사람들이어서 오미자차를 몇 병씩 사들고 나왔다.

일행들과 아내가 오미자차를 구입하는 동안 마을 뒷길로 올라갔다. 하늘이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맑고 파랗다. 저 만큼 뒷동산 위로 둥실 떠오른 뭉게구름과 그늘진 검은 숲이 어우러진 풍경이 그림처럼 정겨웠다.

성읍마을 풍경
 성읍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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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성읍마을 근처에서 제주흑돼지 구이로 하겠습니다. 성읍마을을 지나면서 골목길을 살펴보십시오, 바로 제주올레가 그런 길입니다."

가이드가 지나는 길에 들르겠다고 말한 제주올레는 버스를 타고 지나치는 성읍마을 골목길이었던 셈이었다. 12개의 코스가 개발되었다는 제주올레, 그런데 그는 제주올레를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면 알고도 자신의 부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아 일부러 기피한 것일까?

돌담이 둘러쳐진 성읍마을은 옛 관청건물과 함께 옛 모습이 조금 남아있기는 했지만 버스를 타고 지나치는 창밖의 풍경은 별로 볼품이 없었다. 가이드에게 더 이상 제주올레 코스 안내를 부탁하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이드가 기피하여 제주올레 트레킹을 포기하다

성읍마을 근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은 일행들이 다음에 들른 곳이 일출랜드였다. 일출랜드를 향해 달리는 길가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길가의 밭에선 무를 뽑아낸 자리에 흩어져 있는 잔챙이 무들을 조랑말이 주워 먹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도로변 마을 안길 풍경
 도로변 마을 안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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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작물이 자라지 않아 텅 빈 밭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밭과 밭 사이에 둘러쳐진 돌담, 가끔 바라보이는 아열대 식물들, 푸른 풀이 파릇파릇 돋아난 목장, 그리고 울창하게 자란 삼나무 숲이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어서 눈길이 시원했다.

일출랜드를 거쳐 다음에 들른 곳이 한라수목원이었다. 벚꽃이 흐드러진 한라수목원 산책을 마치고 나왔지만 시간은 아직 오후 3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가이드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제주 바닷가 드라이브를 잠깐하고 바닷가 횟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서울로 오는 비행기는 6시 30분이었다. 이렇게 시간 여유가 많은데 제주올레 트레킹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가이드 겸 운전기사가 제안한 바닷가 드라이브는 그냥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바닷가 길을 잠깐 달려 도착한 곳은 공항 가까운 곳에 있는 바닷가 횟집 겸 전복죽을 파는 집이었다. 이곳은 제주지역 여행사들이 주로 안내하는 곳이어서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아내들은 대뜸 바닷가로 달려 내려간다.

바닷가에서 마냥 즐거운 여성일행들
 바닷가에서 마냥 즐거운 여성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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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기도 했지만 제주에 와서 공연장과 공원만 찾다보니 바닷가 풍경이 몹시 그리웠기 때문이리라. 제주의 바닷가 풍경이라니, 육지의 바닷가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 온통 검은 돌과 검은 바위로 뒤덮인 풍경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아름다움에 취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지막까지 장삿속이었던 가이드와 바닷가에서 만난 갈매기 한 마리

끝없이 펼쳐진 바다, 짙푸른 파도가 한없이 밀려와 검은 바윗돌에 부딪치며 일으키는 하얀 포말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바닷가로 뛰어 내려간 여성일행들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검은 돌을 주워들고 바닷물을 향해 던지기도 하고.

그 바닷가 조금 높은 바위 위에 하얀 갈매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일행 여성 한사람이 그 갈매기를 향해 다가간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런데 홀로 서있는 갈매기는 웬일인지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을 빤히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만 다가가세요. 그 갈매기 무언가 사연이 있는 갈매기 같네요. 아니면 아프거나 부상을 입어 날아갈 힘이 없던가."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 갈매기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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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회와 술, 전복죽으로 푸짐한 저녁식사
 생선회와 술, 전복죽으로 푸짐한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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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다가가던 농작을 멈추고 갈매기를 찬찬히 살펴본다. 갈매기도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그렇게 서로 바라보다가 일행이 뒤돌아 왔다.

"정말 그런 것 같았어요, 저 갈매기 어디가 아프거나 다른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아요. 겉으로 보기엔 부상을 당한 것 같지 않았지만 그렇게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날아가지 않는 걸 보면."

일행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갈매기를 바라본다. 그때 음식점에 들어가 있던 다른 일행들이 우리들을 부른다. 음식을 다 차려놓았으니 빨리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음식은 저녁으로 먹을 전복죽과 푸짐한 회를 곁들인 술이었다. 일행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맛있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가이드가 음식점 종업원인 양 음식을 권하고 주문하며 나르기까지 한다. 가이드가 음식점에서 어떤 보상을 받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매우 신이 난 모습이었다.

"그래, 오늘 실컷 먹자,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제주도인데..."

술이 얼큰해지자 일행들의 음식 주문도 늘어난다, 이제 곧 제주도를 떠날 거라고 생각하니 많이들 아쉬운가 보았다. 이른 저녁이어서 간단하게 먹고 비행기에 오를 생각이었는데 시간 여유가 많다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술자리가 길어졌다.

제주공항 비행기 날개 끝으로 지는 석양
 제주공항 비행기 날개 끝으로 지는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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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가 조금 넘어 음식점을 나섰다. 계산서를 받아보니 음식 값과 술값이 만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공항은 지척이었다.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끝내고 여유 있게 비행기에 올랐다. 서쪽 창문으로 바라보이는 제주공항의 석양이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코끼리 쇼, #아쉬움으로, #제주여행, #이승철,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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