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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파우더 석면이 가정주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인터넷 등에 궁금한 사항을 올리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언론사에 문의하거나 석면 전문가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다.

"우리 집 벽과 천장에 석고보드를 사용했는데 혹시 석면이 들어있지 않나요?"
"20여년 전 아이에게 미국산 베이비파우더를 2년간 발랐는데 당시 미국산은 괜찮은가요?"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과 생활용품에도 석면이 들었다는데 그대로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지요. 석면이 공기 중으로 새어나올 가능성은 없습니까?"

위해성 파동은 주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위험과 관련해 생긴다. 과거 에이즈(80년대와 90년대) 발생 때도 그랬고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광우병 파동, 멜라민 파동 때도 그랬다. 정말 위험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위험, 즉, 흡연이나 알코올 등에 대해서는 이런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선진국에서도 석면은 한때 잘 알려지지 않은 위험, 두려운 위험에 속했다. 그러나 1980년대 미국에서 큰 사회적 파문을 겪은 뒤로 석면은 알려진 위험, 두려운 위험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남대 차용진 교수가 2006년 수도권 주민을 227명을 대상으로 70개 위험을 조사한 결과, 석면은 질소비료(38위)보다 낮은 39번째로 위험하게 느끼는 유해물질로 인식됐으며 잘 알려지지 않은 위험, 통제가 어려운 위험군에 속했다.

이번 베이비파우더 석면 쇼크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석면에 대한 위험인식 순위가 크게 상승하고 잘 알려진 위험, 두려운 위험, 통제하기 어려운 위험군으로 이동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생활주변에 널린 석면, 대처방안

부산석면추방공동대책위가 부산지하철 서면역 벽몉에 석면의 위험을 경고하는 딱지를 붙여 놓은 가운데, 시민들이 그 앞을 지나고 있다.
 부산석면추방공동대책위가 부산지하철 서면역 벽몉에 석면의 위험을 경고하는 딱지를 붙여 놓은 가운데, 시민들이 그 앞을 지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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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은 3천종이 넘는 제품에 사용됐기 때문에 우리 생활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다만 건축자재의 경우 눈으로 볼 수 있지만 가전제품의 경우 눈에 띄지 않는 전기절연재 등의 부품으로 들어가 있어 눈으로 직접 보기 어렵다. 사실 눈으로 본다 하더라도 석면이 들어있는지 여부를 알기 어렵다.

천장재인 텍스와 칸막이 벽체로 주로 쓰인 밤라이트 등도 눈으로 보아서는 석면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지만 2003년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석면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정확한 것은 전문분석기관에 맡겨 정밀분석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의심스러우면 이런 건축자재를 다룰 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사무실이나 집에 석면이 들어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건축자재가 있을 경우 드릴작업 등으로 가루가 날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보수를 할 경우에는 사전에 석면진단을 한 뒤 하는 것이 사전예방원칙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석고보드에는 석고가 들어있을 뿐 석면은 들어있지 않다.

많은 소비자들이 최근 또는 과거 10년 전, 20년 전 베이비파우더나 활석(탈크)이 들어간 화장품을 사용했을 경우 악성중피종 등 발암위험성이 얼마나 되느냐를 물어온다.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아마 세계 최고의 석면전문가 100명을 모아놓고 물어도 한결같은 대답은 "모른다"일 것이다.

발암위험성이 있다, 없다로는 말할 수 있으나 확률로 말할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 발암 가능성이 제로라고 말하는 것은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데는 도움을 주겠지만 진실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분장을 하며 연극을 해온 배우가 악성중피종에 걸린 사례가 있다.

영화배우 스티브 매퀸도 석면 때문에 49세로 사망

석면의 희생자가 된 미국의 명배우 스티브 매퀸
 석면의 희생자가 된 미국의 명배우 스티브 매퀸
ⓒ 안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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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릴 때부터 라디오 등 전자제품을 취미로 만들어온 의대교수가 악성중피종에 걸려 숨진 사례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 보고되는 악성중피종 환자의 80~90%는 정확한 직업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내 석면전문가들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과거 생활 속에서 석면에 알게 모르게 노출된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가정 내 세탁기, 냉장고, 프라이팬 등에서도 석면이 들어있다고 보도하면서 혹시 가전제품이나 생활용품에서도 석면이 공기 중으로 나와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전전긍긍하는 소비자도 있다.

필자도 집 안에 이런 제품들이 있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지낸다. 하지만 이런 생활용품이나 가전제품을 수리하거나 폐기할 때 석면부품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국내에서도 석면개스킷 등을 오랫동안 드릴로 뚫는 등 수리를 해오던 기계수리공이 석면암에 걸린 사례가 몇몇 있다.

만약 사극 등을 찍으면서 몸에 불이 붙는 장면을 찍기 위해 석면복을 입고 자주 오랜 기간지낸 스턴트맨이나 단역배우 등이 있다면 이들은 석면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있다. 만약 폐질환이 나타나면 일단 의심을 해보는 것이 좋다.

영화 <빠삐용> <타워링> 등에 나왔던 미국의 유명 배우 스티브 매퀸도 자동차 경주 때 자주 입었던 석면복 때문에 49살인 1979년 악성중피종에 걸려 1년 만에 숨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소 노동자들이 용접 등을 하면서 불티가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석면포를, 겨울 야간작업 때 잠을 자면서 몸에 덮었던 것이 문제가 돼 악성중피종에 걸린 경우도 있다.

석면위험성, 과민 반응보다 감시가 우선

석면에 대한 불안공포가 확산되면서 심지어는 토양이 석면으로 오염된 지역에서 자란 채소나 농작물을 먹어도 괜찮은지 물어오거나, 석면으로 오염된 물을 마셔도 좋은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과거 석면 광산이 있었고 그런 곳에 대형 채석장을 내줘 크게 문제가 된 제천 지역을 여러 차례 방문해서 그 지역에서 나온 나물과 채소 등을 개의치 않고 잘 먹었다. 그런 걱정은 과민성 반응일 뿐이다.

음용수의 경우 미국에서 오대호 일부 상수원에 석면이 오염돼 조사분석을 한 적이 있다. 석면이 상당량 들어있는 물을 마신 지역 주민들에서 위암이나 결장암 등 소화기암이 증가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으나, 소화기암과 관련한 변수가 워낙 많아 석면과의 인과관계가 확실하게 입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구를 통해서도 암이 생길 가능성이 있으므로 미국에서는 음용수에 대해 석면을 검출한계 수준으로 강화한 기준을 마련해 관리하고 있다. 만약 지하수나 상수원이 석면으로 오염됐다면 먹는 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생활 주변에서 석면에 노출될 위험이 큰 곳은 지하상가, 지하철역, 각종 공공시설, 농어촌과 공장지대 석면슬레이트 지붕, 재건축, 재개발, 건물개보수 공사장 등이다. 생활하면서 이런 공간을 피해 다닐 수는 없기 때문에 이들 위험지역에 석면가루가 날릴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감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석면 위험, 전문가와의 위험 소통 절실

정남순 변호사와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석면 베이비파우더' 파동과 관련해 피해자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정남순 변호사와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석면 베이비파우더' 파동과 관련해 피해자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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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서는 석면 해체제거 공사현장을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인터넷 등을 통해 알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요구해야 한다. 또 정부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해체제거 공사장 등을 관리감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시민감시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토록 하고 문제가 되는 현장을 적발한 사람에게는 포상을 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생활 주변의 석면으로 인한 위험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따라서 정부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명쾌하게 어떤 경우는 이래서 전혀 위험하지 않고 어떤 경우는 이런 것만 조심하면 되며 어떤 경우는 이런 이유 때문에 매우 조심을 해야 한다고 위험소통(리스크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해야 한다.

정부 내에 석면위험소통을 제대로 해낼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면 석면전문가 가운데 국민의 눈높이에서 소통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이른 시일 안에 국민과 대화함으로써 대중의 불필요한 불안과 공포를 해소해주는 것이 정부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태그:#석면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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