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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간 우리 국민은 경제 불안, 안보 불안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이명박 정부와 김정일 정권 모두 남북경색과 한반도 안보위기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자신이 진정한 한반도 평화의 수호자임을 역설하고 있다. 지난 1년 무엇이 변한 것일까? 남북의 무차별 난타전 속에 정신없이 지나온 지난 1년을 돌아보고 과연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지난 정부와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한반도 평화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는지, 아니면 위기를 더욱 조장하였는지 분석해 보고자 한다.

 

[북한은 특별한가?] 신기능주의적 포용정책 VS. 신현실주의적 무차별 정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창한 햇볕정책은 접촉을 통한 변화, 타협을 통한 상호 이익을 추구하였다. 햇볕정책은 일부분 수정의 과정을 거쳤으나 포용정책이란 틀로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 근간이 이어졌다. 이러한 접근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특수성을 현실로 인정하는 기반 하에 서 있다. 북한에게 명분을 세울 기회를 주되, 실질적으로 남북간 경제적, 문화적 통합을 진전시킴으로써 정치, 군사 등 다른 분야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통합을 진전시킨다는 것으로 신기능주의적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신기능주의적 접근 방식은 기본적으로 통합을 지향한다. 특정한 경제 분야에서 통합이 이루어질 경우 경제의 여러 분야에서의 상호의존성으로 말미암아 타 분야에서의 통합도 불가피해지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상호의존성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통합으로까지 통합의 필요성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유지되어오던 대북 인식과 달리, 이명박 정부가 바라보는 북한과 한반도의 현실은 매우 현실적이다. 여기서 현실적이라 함은 북한을 더 이상 다른 국가와 구별되는 특수한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합리적 국가 행위자로 가정함으로써 이로부터 벗어나는 북한의 요구와 도발에 대응해 협상하기 보다는 '무시전술'을 구사해 왔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이전 정부의 차이에 대해 "비핵·개방·3000과 평화번영정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남북관계와 국제관계의 결합방식이다. 비핵·개방·3000은 북한의 국제화, 국제사회 편입을 강조한다"고 말한다. (통일연구원,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비전 및 추진방향' 2008. p.17)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정부에게 북한은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북한은 국제관계의 한 행위자로 규정되고 인식된다. 북한에 대한 이와 같은 시각은 국제정치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는 신현실주의 시각에 기반한다.

 

신현실주의 국제관에 따르면 일국은 무정부의 국제사회에서 끊임없이 국가의 안전보장을 추구한다. 이러한 인식은 북한 또한 안보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국제정치의 행위자로 인식함으로써, 과거 북한의 행동을 '광도 집단'의 '미친 짓'쯤으로 규정해온 보수 세력의 인식으로부터 일정 부분 발전된 부분이 있으나, 문제는 안보를 최우선으로 행동하는 국제관계에서 북한의 도발이 안보 경쟁으로 이어지고, 상호 불신과 정보 부족이 안보 딜레마 상황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북 정책, 누가 주도하나?] 통일부 주도 VS. 청와대+외교부 주도

 

이러한 대북인식 스팩트럼의 차이는 대북정책을 생산하는 주체의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10년간 통일부는 대북정책 수립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지난 시기 통일부 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실질적 총괄 책임자를 겸임함으로써 북한과 관련된 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을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반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의 주도아래 외교부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 통일부를 폐쇄하고 그 역할을 외교부로 축소·통폐합하려했으나 국민의 반대로 좌절된 바 있다. 이러한 시도는 북한을 더 이상 특별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통일부 주도의 대북정책 생산)을 부정하고, 국제관계의 틀로 북한을 바라보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NSC 사무처의 폐지와 통일부의 축소가 현실화됨에 따라 대북문제를 실무적으로 총괄할 수 있는 주체가 사라졌고, 이 자리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이 차지했다는 점이다. 신현실주의의 스팩트럼을 폭넓게 공유하는, 학자 출신으로 구성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이 대북정책의 어젠다를 설정하고 외교부가 선두에서 관계 부처를 지휘하는, 청와대+외교부의 새로운 정책 생산라인이 설정됨에 따라, 신 대북 독트린 이행의 새로운 틀이 구성된 것이다.

 

'벼랑 끝 전술' VS. '벼랑 끝 무시 전술'

 

그렇다면 앞서 논의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갖는 차별성은 어떻게 현실로 표출되고 있는 것일까? 먼저, 최근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를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대북 강경정책을 임기의 앞선 6년간 지속한 부시 행정부가 물러나고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하였다. 이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남과 북 모두에게 기회의 창을 열어주었다. 북한은 과감한 직접대화 추진을 선언한 오바마 정부로부터 확실한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약속받는 기대를 품게 하였고, 한국은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영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세 변화에 북한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북한은 자신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벼랑 끝 전술'을 다시금 구사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과거 국제협상의 과정에서 자신의 협상 카드를 도발적으로 제시한 후, 협상을 극단적 충돌, 혹은 협상 파기의 극한까지 몰고 가며 결과적으로 상대의 양보를 얻어내는 협상 전술을 구사해 왔다. 남북 통행 차단과 군사통신선 차단, 6자회담 불참 언급, 공격적 대응타격 경고 등으로 벼랑 끝 전술을 지속해 온 북한은 지난 4월 5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함으로써 절정의 대결 국면을 만들고 새로운 국면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맞서 이명박 정부가 '벼랑 끝 무시 전술'을 구사하며 한반도 안보위기는 이전 정부에서 보기 어려웠던 극단적 대결의 국면에 들어섰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명박 정부는 더 이상 북한을 특별한 상대로 보지 않았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통한 협상 전략에는 '무시 전술'로 대응하는 반면,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통한 비대칭 군사전략에 대해서는 한미일의 대북 군사 동맹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이러한 남과 북의 벼랑 끝 힘겨루기는 타협을 통한 교차점을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극단적 치킨 게임으로 변화하게 된다. 문제는 치킨 게임의 담보가 우리 국민이라는 점이다.

 

남북한 정권의 치킨 게임에 벼랑 끝에 몰린 국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남북의 적대행위와 상호 책임 떠넘기기는 지난 10년간 쌓아온 신뢰를 지난 1년간 순차적으로 무너뜨리고 과거로의 회기를 현실화했다. 과거 남북간 신뢰가 유지되었을 때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수면으로 등장하며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남북 대결의 한가운데 개성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또한 개성공단과 개성에 상주하고 있는 우리 국민에 대한 우선 고려 없이 벼랑 끝 대치를 극단으로 몰아갔다.

 

북한은 지난 3월 9일 김정일 위원장이 안정적 발전을 보장한 개성공단 통행을 차단함으로써, 스스로 남북 합의를 위반하면서까지 양보 없는 대치를 전면화시켰다. 이명박 정부 또한, 키리졸브 군사 연습에 대해 북한이 남북관계의 단절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 연습을 강행하며 일시나마 개성공단이 고립되는 모험을 감행하였다. 한반도 상생의 미래, 남북 경제공동체 구상의 실험실로 개발된 개성공단이 남북의 벼랑 끝 대결에 볼모가 되고 만 것이다.

 

이제 벼랑 끝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북 당국의 무모한 치킨게임은 최악의 안보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결국, 4월 5일 인공위성 발사를 위해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응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정식 가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상대에 대한 정보의 부재와 극한의 불신 속에 안보경쟁이 상호 연계 상승하는 안보 딜레마의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6자회담의 틀 속에서 유지되어오던 역내 안정은 남북간 안보경쟁과 함께 일본의 군사 대국화와 중국의 대응으로 이어지며 동북아시아의 안보 딜레마 상황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남북관계 정상화와 6자회담을 통한 안보딜레마 차단 필요

 

4월 8일 현재, 개성공단에 823명, 금강산에 41명 등 총 865명의 우리 국민이, 남북의 상호협력을 통해 한민족이 상생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묵묵히 생산현장을 지키고 있다. 우리 정부와 북한 당국은 이들에게 신변 안전과, 자유로운 생산 활동을 보장해야할 책임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더 이상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기다리기 전략', '무시 전술'의 결과가 무엇인지 지난 1년간 보아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한 북한에 체류하고 있는 우리 국민에 대한 신변 안전을 보장하고 남북 통행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제협력 사업은 정치적 대결의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정보기관 인수분야 팀장을 지난 아서 브라운 전 CIA 동아시아 지부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주도적으로 대북정책을 제안해야 한다" 만약, "미사일 발사 후 한국이 미사일 문제 해결의 공백을 채워주지 못하면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대화로 직행할 수 있다"고 말해, 미국 정부가 한국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 한국정부는 남북관계와 6자회담의 틀을 복원하는 투 트랙(Two Track) 접근을 견지해야 한다.

 

첫째, 현재 경색되어 있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단지 이명박 정부와 여당에 국한되지 않는다. 야당과 남북교류 관련 단체 모두가 남북 대화의 루트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북미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구도가 만들어지고 또 다시 한국이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된다.

 

둘째, 6자회담의 틀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6자회담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성사시키고, 2007년 2.13 합의를 이끌어내며, 북핵 불능화 프로세스의 집행자 역할을 담당해 왔다. 또한, 세계의 국사 강대국들이 힘의 교차점을 형성하고 있는 동북아 지역의 세력균형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모범답안으로 향후 확대 발전이 예상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로켓발사로 발생한 동북아 균열을 6자회담의 틀에서 봉합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6자회담을 벗어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이란 상상할 수 없다.


태그:#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신현실주의, #벼랑 끝 무시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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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정일영 연구교수입니다. 저의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오디세이],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평양학개론], [한반도 스케치北], [속삭이다, 평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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