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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순 변호사와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석면 베이비파우더' 파동과 관련해 피해자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정남순 변호사와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석면 베이비파우더' 파동과 관련해 피해자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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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2시,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에는 한 건의 고발장이 접수됐다. 환경운동연합이 베이비파우더에서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과 관련해 관리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과 제조업체, 원료공급업체에 책임 묻기 위해 고발을 한 것이다.

잠깐 지난해 멜라민 파동 때를 기억해 보자.

중국 원료공급회사에서 아기들이 먹는 분유에 멜라민을 넣었고, 당시 식약청은 중국 당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가 다른 나라에서 검출된 결과를 보고 난 후 열흘이나 지나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다. 해당 기업들도 '우리 제품은 안전하다'고 큰소리치더니 뒤늦게 검출된 제품의 회수에 나서는 등 늑장대응했다.

멜라민이 검출될 수 있는 제품은 분유로 시작해 건강보조식품까지, 그 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었고, '백색가루 공포' 멜라민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은 한동안 계속됐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소비자 피해에 대해 책임을 묻는 집단소송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신호등제도'도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난 후, 우리 사회에서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집단소송법과 신호등제도, 이 두 가지 모두 기업들의 강한 반발에 의해 무산됐다. 검출된 제품에 대해선 회수 등 당연한 조치 외에는 해당 담당 부서의 책임을 묻는 어떠한 행정적 절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사회는 다시 석면 베이비파우더 건을 맞고 있다.

멜라민 때와 똑같은 모습... 주말 동안 300여 명 피해 접수

사안은 다르지만, 멜라민 파동 때와 달라진 것은 없다. 그때처럼 여전한 모습들이 이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 조치 취할 때 우리나라는 뭐했냐, 다른 나라 기업들은 관리하고 있는 동안 우리 기업들은 뭐했냐, 늑장대응이다, 뒷북이다." 어쩌면 어떻게 매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거기다 '식약청의 관리 기준을 따랐을 뿐인데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는 기업들의 볼멘소리도 여전하다.

그럼 우리 국민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혹시라도 수십 년 지난 후에 암이라도 걸리면 이 원인이 베이비파우더 때문인지 아닌지 누구에게 따져 물어야 할까?

환경운동연합은 이런 소비자들의 마음을 모아 지난 주 '피해시민신고센터'를 열었다. 더 이상 기업도 못 믿겠고, 정부도 못 믿겠다는 것이다. 이미 발라버린 석면 베이비파우더야 되돌릴 순 없지만, 그렇다고 기업에게 아무런 책임을 묻지도 않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이런 시민들의 요구를 모아 지난 금요일(3일) 오후에 개설한 신고센터에는 주말 동안만 300여 명의 시민들이 피해 사례를 접수하며 집단소송에 함께하겠다는 뜻을 모으고 있다. 그 중에는 이것을 살까(검출되지 않은 제품), 저것을 살까(검출된 제품)를 고민하다 순간의 선택을 잘못한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고,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지금껏 10년 넘게 제품을 사용해 왔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며 제발 도와달라고 하소연하는 여대생도 있었다. 해당 기업에 항의의 뜻을 밝히며 꼭 책임을 묻겠다는 시민들도 다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 다음 카페 '석면 베이비파우더 소송모임'의 1200명 가까운 회원들도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할 의사를 밝혀오고 있다.

물론, 석면이 함유된 제품을 사용한다고 다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건학적 연구는 해당 물질과 질병의 연관성을 살피고, 연관성이 있다면 사전예방적인 차원에서 관리 대책을 마련해 국민 건강을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식약청장·경인지방노동청장 직무유기·관리소홀 고발

식약청이 6일 (주)로쎄앙 화장품 5개 품목이 발암물질인 석면이 함유된 탈크로 제조됐다며 판매금지 및 회수 조치했다. 사진은 탈크를 원료로 만든 화장품 중 로쎄앙 휘니쉬 훼이스 파우더(왼쪽)와 로쎄앙 퍼펙션 메이크업 베이스 (자료사진 - 식약청 제공)
 식약청이 6일 (주)로쎄앙 화장품 5개 품목이 발암물질인 석면이 함유된 탈크로 제조됐다며 판매금지 및 회수 조치했다. 사진은 탈크를 원료로 만든 화장품 중 로쎄앙 휘니쉬 훼이스 파우더(왼쪽)와 로쎄앙 퍼펙션 메이크업 베이스 (자료사진 - 식약청 제공)

석면은 이미 여러 연구를 거쳐 악성중피종 등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져 1987년 국제암연구소에서 1급 발암물질, 즉 인간에게 암을 일으키는 물질로 등록되었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석면과 관련된 모든 제품은 0.1% 이하로 관리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제품의 생산, 유통, 판매 등을 금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관리를 담당하는 식약청이나 기업들은 '미량이어서 괜찮다'거나 '피부를 통해 들어가는 양을 극히 미미하다'고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분노한 시민들을 오히려 자극할 뿐이다.

환경운동연합이 6일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하 식약청)과 노동부 경인지방노동청장에게 책임을 물은 부분은 직무 유기와 관리 소홀이다. 특히 식약청은 2004년 자체 연구 조사 결과 기능성화장품의 안전성 평가 연구(화장품 원료의 안전성 재평가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이 보고서에서는 "탈크는 외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되거나 문제시된 원료로 빠른 시일 내에 안전성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되어 있다. 만약 이 때 미리 관리기준을 마련했더라면 오히려 미국이나 유럽보다 앞서 관리기준을 설정해 국민들의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석면탈크 위험성 누락시킨 '덕산약품공업'

업체 중에서는 원료를 공급하는 덕산약품공업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이 회사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한 기업 8개 제조사(덕산약품공업, 보령메디앙스, 대봉엘에스, 락희제약, 성광제약, 유씨엘, 한국모니카제약, 한국콜마)를 약사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특히 덕산약품공업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허위로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물질안전보건자료'는 화학물질의 안전보건상의 문제점을 담은 자료로 작업자들의 안전보건을 위해 정확하게 작성하여 작업장에 비치토록 되어 있는 의무사항인데도 덕산약품공업은 자료에서 탈크에 대해 <발암성-없음>이라고 표기하여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1급 발암물질로 규정되어 있는 석면의 혼합물(including talk containing asbestos) 또는 석면상섬유포함탈크(Talc containing asbeststiform fiber)의 위험성을 누락시켰다.

환경운동연합은 오는 8일 피해자 예비모임도 할 예정이다. 예비모임은 서울대학교 백도명 교수로부터 석면과 관련된 건강영향에 대한 의학적 설명과 자문을, 환경법률센터 정남순 변호사로부터 집단소송 준비에 따른 절차와 증거자료준비 및 향후 일정 등에 대한 법률 자문을 받는 순서로 진행될 것이다.

제일 안전하고, 제일 좋은 것만 골라 쓰며 아기를 키우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하지만 식약청과 관련 기업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시민들 스스로 나서 직접 책임을 묻는 사회적 절차를 진행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지현 기자는 서울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석면 베이비파우더 피해신고센터
www.kfem.or.kr /02-735-7000/asbestos@kfem.or.kr



태그:#석면 , #베이비파우더, #집단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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