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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이 일제고사 시작 전부터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교사들을 '엄벌'한다고 했고, 몇몇 시도교육청에서는 일제고사 반대에 서명한 교사들을 징계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는 말이 들립니다. 그렇다면, 교사를 징계하면서까지 '필요하니까 꼭 봐야 한다'고 하는 일제고사로 본 진단 평가의 내용은 어떨까요? '글로벌 시대에 알맞은 인재육성'에 꼭 필요한 것일까요?

 

이미 앞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번 일제고사 평가 문항을 살펴보면 외워서 알고 있는 간단한 용어와 낱말을 묻는 문제가 많습니다. 용어와 낱말은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하지, 낱말 자체를 외우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6학년 과학 4번 문항입니다.

 

이 문제는 '용액'과 '용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나 묻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맞히려면, 실험을 해서 현상을 이해하고 알지 않아도 외우기만 하면 됩니다. 비슷해서 헛갈리는 두 낱말 '용액'과 '용해'의 뜻을 묻는 문제가 과학 교과의 문제로 적당합니까? '용액'과 '용해' 두 낱말을 모른다고 해서 설탕이 물에 녹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제 기억으로 이 문제는 삼사십 년 전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지겹게 나온 문제입니다. '용액', '용해'와 더불어 함께 늘 함께 따라다녔던 '용매'까지, 아무리 외워도 자꾸 헛갈리기만 했던 약 오르는 문제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 문제는 과학문제도 아니고, '글로벌 시대'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문제입니다.

 

다음은 6학년 과학 14번 문항입니다.

 

이 문제 역시 학창시절 지겹도록 본 문제입니다. 시험보기 전에 달달 외워서 겨우 맞히곤 했지만, 지금 또 다시 답하라면 자꾸 헛갈리는 문제입니다. 한자를 잘 알고 있으면 저절로 맞힐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제 기억으로 학창시절 위 문제와 같은 현미경의 부분 이름을 외워 답하는 문제는 많이 만났어도, 현미경 한번 제대로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실험을 한 기억도 적을 뿐더러 늘 현미경은 부품이 덜렁거리거나 망가져 있기 일쑤였고, 그나마 작동되는 것도 겨우 2초 들여다 보려고 줄 길게 서면서 아이들끼리 서로 밀치던 기억이 더 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과학시간에 현미경을 들여다 본 일보다는 현미경 부분 이름 외우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미경 부분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현미경을 사용할 수 없을까요? 컴퓨터나 카메라 부분 이름을 몰라도 컴퓨터와 카메라를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현미경 또한 부분 이름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자와 영어로 된 현미경 부품 이름은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새롭게 한글이름으로 바꿀 수도 있고, 또 전문가들은 그대로 영어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문제는 '글로벌 시대'에 초등학교 과학 평가 문항에서 빨리 사라져야 할 문제입니다.

 

다음은 5학년 과학 16번 문항입니다.

 

이 문제 또한 우리가 학창시절 많이 만났던 문제입니다. 시험볼 때마다 만나고, 과학시간에 별자리를 배울 때마다 선생님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강조해서 이제는 누가 물어보면 바로 답을 정확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답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북쪽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 들 중에서 언제나 볼 수 있다는 별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손에 꼽을 것입니다.

 

그냥 외워서 알고 있기만 하면 정답을 맞힐 수 있는 이런 종류의 평가 문항은 과학교과 평가에서는 물론이고, '글로벌 시대' 평가 문항에서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다음은 6학년 사회 19번 문항입니다.

 

'한복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을 묻는 것으로 정답은 ④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복에 대해서도, '한복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잘못 설명하고 있습니다. ②번을 보면, 한복이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여 깨끗하고 영롱하다'고 했는데, 이곳에서는 어느 시대 한복을 말하는지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표현에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면 몰라도 지금의 한복은 대부분 자연재료보다는 화학재료로 많이 만들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이 한복을 애써서 자연재료로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는 자연재료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따라 한복의 재료는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한복을 꼭 자연재료로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자연의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깨끗하고 영롱하다'는 표현은 저로선 선뜻 이해가기 어렵습니다. 자연재료이기 때문에 투박할 때가 더 많습니다. 이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은 평가 문항으로 적절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사람마다 다른 느낌으로 보자면, ①번, '저고리와 치마가 단정하고 아담한 느낌입니다'는 표현도 저로선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한복 입고 찍은 유명배우 화보 사진만 보면, '단정하고 아담한 느낌'이 들지 모르지만, 한복을 한번이라도 입어본 여자들이라면, 한복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치마폭이 넓어서 거추장스러워 '단정'하지도 않을뿐더러 '아담'하지는 더욱 않습니다.

 

그 다음에 정답인 ④번을 보면, 결국 개량 한복이 한복의 아름다움을 감소시키고 있지 않다는 말인데, ①번과 ③번이 '한복의 아름다움'이라고 한다고 했으면, ①번과 ③번의 아름다움을 변형시킨 '개량한복'은 당연히 아름다움을 감소시켰을 수밖에요.

 

저는 이 문항에서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것은 ④번이 아닌, ②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우리들의 학창 시절에 평가 문항에 '한복'하면 빠짐없이 나온 것이 ③번에서 말하는 '한복의 아름다움'입니다. 어찌 보면 한복의 아름다움을 우리 스스로 생활 속애서 느껴서 알았다기보다, '한복은 아름다운 것이다'는 말을 배워서 외운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복이 귀찮고 거추장스럽기만 하지 뭐가 아름답냐?'하고 말하면 금방 매국노로 몰아갈 정도로 말이죠. 사람의 다양한 감정을 오직 한 쪽으로만 몰아가는 이런 종류의 평가 문항은 글로벌 시대에 평가 문항에서 앞으로는 절대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글로벌 시대의 평가 문항 속에 삼사십년 전에 우리가 배웠던 낡은 지식을 평가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문항은 여기에 올린 문항말고도 많습니다. 


태그:#일제고사, #진단평가, #평가문항분석, #초등교육,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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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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