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주 중앙시장. 상인들과 주민들은 '전주의 아들'에 대한 기대와 동정심을 바탕으로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을 따뜻하게 감쌌다.
 전주 중앙시장. 상인들과 주민들은 '전주의 아들'에 대한 기대와 동정심을 바탕으로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을 따뜻하게 감쌌다.
ⓒ 김당

관련사진보기


"아직 젊은 사람 아녀? 재출마해서 꿈을 이뤄야지. 전북은 도세도 작고, 국회의원수도 적은디, 전주서 입김 센 사람이 (서울에) 올라가서 우리 입장을 대변해야지."

재보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4월1일. 민주당의 관심이 온통 쏠려있는 전주 덕진구를 찾았다. 이날 오후 전주 중앙시장 입구에서 만난 윤재웅(60·덕진구 노송동)씨는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의 4·29 재보선 출마에 대해 묻자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민주당이 공천을 안 줘도 괜찮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공천을 주네, 안주네 해도…, 무소속으로 나와도 당선될 가능성이 많어. 전북으로 봐서는 대통령후보 나온 사람, 초선보다는 다선의원이 낫지. 공천 안 줘도 나와야 돼. 어쨌든 밀어야 혀. 정동영이 같은 사람이 필요하당께."

윤씨는 "정세균이도 여(기)가 고향인디, 왜 (공천을) 안 주나 몰라" 하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윤씨의 친구는 "그렇지"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서울) 동작에 나갔다고 해서 여기서 다시 못 나오란 법은 없잖여? 정치는 다 그런 거지. 여기는 고향이고 헌께…. 여기서 커서 다시 가야제, 고향인디."

당 지도부의 출마 반대로 당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정 고문은 닷새 전부터 이곳에 내려와 지도부를 향해 무언의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래도 공천 안 줄래'라고. '물밑 행보'를 선언한 정 고문은 일체의 언론 접촉을 피해 그의 동선을 쉽게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덕진구민들이 정 고문에게 보내는 '짠한' 애정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동작을 출마가 잘못? 정치라는게 다 그런 것 아닌가?"

민주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컸다. '전북의 큰 인물 정동영'을 왜 죽이려느냐는 불만이었다.

"정동영 나오면 딱 찍어줘야지. 무소속으로라도 나와야 해. 옛날에는 여기가 다 민주당 찍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그렇지 않아. 다른 당으로라도 꼭 나와야지."

중앙시장 속옷가게에서 잡담을 나누던 송주형(63)씨는 "민주당이 잘못하고 있다"고 열을 올렸다. 송씨는 "무조건 공천을 줘야지, 여기선 정동영이 나오면 두 번이라도 찍는다"고 잘라말했다. 옆에 앉은 장인순(61)씨도 "정동영이 왜 안되느냐"고 끼어들었다. 장씨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투표소 가서 꼭 찍는다"는 말에 힘이 실려 있었다.

"민주당 재보선 전략에 차질이 있다고? 무슨 차질? 공천 안 주는 건 민주당이 분명 잘못하고 있는 거지."

중앙시장 한 가운데 어물가게를 연 홍아무개(46)씨도 공천 논란에 목소리를 높였다. "정 고문이 민주당 재보선 전략에 걸림돌이 된다"는 당내 비판을 전하자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홍씨 역시 "공천 안 주면 무소속이라도 나와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정동영이 그만큼 (민주당에) 공헌했고, 지역구에서도…, 좌우지간 장관 시절에도 일을 많이 하지 않았나?"

시장에서 만난 상인과 주민들에게서 "정동영이 잘못한다"는 비판을 듣기는 어려웠다. 대선과 총선에서 연거푸 패배한 '전주의 아들'에게 보내는 기대와 동정심이 '절대 지지'의 밑바탕이었다. 지난해 총선 당시 서울 동작을에서 낙선한 뒤 다시 고향을 찾은 정 고문의 '철새' 행보도 따뜻하게 감쌌다.

"여기서 나오면 무소속이라도 무조건 당선되지. 동작을 출마한 것 갖고 사람들이 말은 할 수 있지만, 전주는 당보다 인물이여. 정동영이 보고 찍는 거지."

전주시내 한 식당에서 만난 김영길(53)씨는 "출마만 한다면 열심히 선거를 돕겠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전주역사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 일부 택시기사는 "안되면 무소속으로라도 나와야지"라며 정동영 고문에 대한 '절대 지지'를 나타냈다.
 전주역사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 일부 택시기사는 "안되면 무소속으로라도 나와야지"라며 정동영 고문에 대한 '절대 지지'를 나타냈다.
ⓒ 김당

관련사진보기


전주역과 대학가에서 만난 유권자들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일 같이 라디오로 뉴스를 듣고, 승객들과 대화하면서 '민심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택시기사들도 "재보선은 해보나마나"라며 정동영 승리론에 힘을 실었다.

같은 날 오후 4시께 전주역 앞에서 만난 이호성(59·개인택시 기사)씨는 "일단 정 고문이 나와야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씨는 "전에 잘못했던 것은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면 된다"며 "민주당도 (출마를) 막으면 안 된다, 순리대로 공천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대선 패배는 잘못했지만, '미워도 다시 한번' 밀어주겠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당을 깬다는 비판도 하는 것 같던데, 당선되면 다시 협조해서 잘될 것 아닌가. 안 되면 무소속으로라도 나와야지."

덕진구에 산다는 김중태(54·개인택시)씨도 "지금 와서 배제한다느니 하는 것은 올바른 정치가 아닌 것 같다"고 거들었다. 전주역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엄분순(69·덕진구 홍천동)씨도 "정동영이 시나브로 (국회에) 올라가서 일하다보면 (큰) 목적을 이루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선후보 해놓고 지역에 다시... 말이 안 된다"

비판적인 목소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한 40대 유권자는 "정동영 출마를 바라보는 데 양면성이 있다, 무조건 밀어줘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비겁한 짓이라는 사람도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는 "대선후보를 해놓고 지역에 다시 나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며 "정동영이 출마한다면 나는 선거(투표) 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대에서 만난 진실(05·사학과)씨도 "나이 많은 분들은 여기가 정 장관 본거지니까, 전주에서 무소속으로 나오더라도 무조건 찍겠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진씨는 "무소속으로 나오면서까지 (전주로) 돌아올 필요가 있냐"면서 정 고문의 행보를 비판했다.

"정 장관은 대선 후보였는데, 그 정치적 지위를 이용해서 공천을 받아서 전주에 출마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욕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기회만 보고 들어온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고…."

다만 진씨는 "정 고문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막상 투표장에 가면 생각이 달라질 것 같다"며 "정 고문에게 표를 던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주역사 안. 전주에서는 정동영 민주당 고문의 출마선언으로 관심이 집중된 덕진구 말고도 인근 완산구에서도 재선거가 실시된다.
 전주역사 안. 전주에서는 정동영 민주당 고문의 출마선언으로 관심이 집중된 덕진구 말고도 인근 완산구에서도 재선거가 실시된다.
ⓒ 김당

관련사진보기


1일 전주에서 확인한 민심은 이미 정동영 고문 쪽에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한 예비후보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정 고문이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민주당이 다른 후보를 내세워 당력을 집중한다면 싸워볼 만하다는 얘기다.

전라북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한명규 예비후보는 "지금 전주에서도 변화의 기류가 크다"며 "'덕진이 정동영 주머니속의 땅콩이냐'는 비판도 나온다"고 말했다. 한 예비후보는 또 "정동영 고문에 대한 비판은 주로 지역에서 한 일이 없다는 것"이라며 유권자들이 지역일꾼을 뽑아줄 거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 예비후보측 캠프 인사는 "흘러간 강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며 정 고문을 '올드보이'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임수진 예비후보측은 민주당에서 낙점을 받기만 하면 최소한 '백중세'는 될 싸움이라고 보고 있다. 임 예비후보측 관계자는 "전주에도 민주당 로열티가 있다"면서 "정동영 고문의 행태를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고, 당력을 모은다면 정 고문의 조직력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영 예비후보도 "지역발전 공약을 제시하고, 민주당 대 무소속, 개혁 대 반개혁 구도를 세운다면 승산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의 '희망사항'만큼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정 고문의 지지율이 정체되거나 약간 떨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50% 안팎의 지지율을 점유하고 있다. 반면 다른 예비후보들의 지지율은 한자릿수에 머문 상태다.

'안방에서 서로 총질'... 6대1의 승부 이뤄질까

흥미로운 것은 지난 29일 정동영 고문을 제외한 6명의 예비후보들이 모여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다. 정 고문이 끝내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민주당이 6명 중 1명을 공천한다면 나머지 5명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기어이 꺾어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6 대 1'의 싸움을 펼쳐서라도, 정 고문을 낙마시키겠다는 얘기다. 정 고문은 뜻하지 않게 다른 예비후보들에게 '공공의 적'이 돼 버렸다.

"6명이 힘을 모으고, 당이 지원해 싸운다면, 최소한 용호상박은 될 수 있죠. 그러면 전국의 관심이 집중될 '빅 게임'이 펼쳐지지 않겠습니까?"

한 예비후보 캠프에서는 '6 대 1의 승부'가 꼭 이뤄져야 한다는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으로선 6 대 1의 승부가 '최악의 구도'일 수 있다. 아군 벙커에서 서로 총질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정 고문이든, 예비후보들이든 '아군의 사상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인천 부평을과 경주, 울산 북구의 바깥 진지는 방어조차 못할 공산이 크다. 재보선을 한달 앞둔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밑 행보'를 하고 있는 정 고문도 당 지도부의 결정에 촉각을 세우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무소속 당선보다는, 민주당 간판으로 당선되는 게 정도이기 때문이다. 마침 중진들이 나섰다. 문희상, 박상천, 천정배 등 4선급 이상 6명의 민주당 중진들은 2일 회동을 갖고 중재에 나섰다. 중진들은 정 고문이 먼저 '돌출 행동'을 사과하고, 그 이후 당이 공천을 하는 모양새를 갖춰 갈등을 봉합하는 안을 마련했다.

남은 것은 당과 정 고문의 결정이다. 전주에서 홀로 표밭을 다지던 정 고문은 중진들의 중재 소식을 듣고 2일 오후 서울로 돌아왔다. 정 고문이 중진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윈-윈'할 수 있는 길도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태그:#정동영, #4.29재보선, #민주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