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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문수사 가는 길. 섬진강변에 벚꽃이 많이 피었다.
 지리산 문수사 가는 길. 섬진강변에 벚꽃이 많이 피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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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안 세상을 호령하던 동장군도 슬며시 꼬리를 감췄다. 대신 그 자리엔 따스한 봄햇살이 들어와 대지를 살포시 감싸준다. 섬진강변엔 매화, 산수유꽃의 바통을 이어받은 벚꽃이 활짝 피어 이번엔 하얀 색으로 또 한 차례 봄꽃세상을 연출하고 있다.

이정표를 따라 문수사로 들어간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깔끔하다. 들녘은 어느새 파릇파릇한 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마을을 돌아서니 길이 가파르다. 경사지에 들어선 집이 아스라하다. 오른쪽으로 자리 잡은 문수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가뭄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산자락에 만들어진 계단식 논의 농사가 걱정이다.

산길은 점점 가파르다. 왼쪽으로는 산비탈이다. 산자락을 붙잡고 선 한봉에선 달콤한 꿀이 흐르는 것 같다. 군데군데 펜션이 여럿 생겼다. 오른쪽으로는 낭떠러지이고, 그 아래로 계곡이다. 아찔하다. 자동차도 힘이 드는지 숨을 헉헉 몰아쉬는 것만 같다. 잠시 멈춰 뒤돌아보니 섬진강이 저만치 보인다.

지리산 문수사 가는 길. 계단식 논이 눈길을 끈다.
 지리산 문수사 가는 길. 계단식 논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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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문수사. 계단을 따라 오르면 산신각과 문수전이다.
 지리산 문수사. 계단을 따라 오르면 산신각과 문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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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포장길이 끝나고 시멘트길이 나온다. 지리산 왕시루봉(1212m)이 우뚝 서 있다. 아래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계곡물도 흐른다. 문수계곡이다. 옛날 지리산 빨치산들의 이동로여서 아픔을 간직하고 있지만 물은 여전히 맑고 깨끗하다.

계곡을 건너고 또 건너니 산길이 더욱 험해진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가면서 자동차도 거친 숨을 뱉어낸다. 초보 운전자라면 아찔할 길이다. 그 길 끝에 문수사가 자리하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에서 내린다. 왕시루봉의 자태가 늠름하다. 지리산자락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펼쳐진다. 흘러내린 산자락은 멀리 섬진강에 가 닿는다. 높은 봉우리와 산자락, 계곡 그리고 그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섬진강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평화롭다.

한때 해우소에서 똥돼지를 키워 화제가 됐던 문수사는 여러 고승이 수행한 문수도량이다. 백제 성왕 때 창건됐다가 임진왜란 때 왜군의 난입으로 파괴됐다. 그러던 1980년대 중반 요사체를 세우고 대웅전 터에 지금의 3층 목탑 형태의 대웅전을 건립했다. 화순 쌍봉사의 대웅전과 흡사하다. 층층이 올라간 단청이며 지붕이 색다르다. 대웅전 옆 계단을 오르면 산신각과 문수전이 있다.

예슬이가 지리산 문수사에서 사과 하나를 반달곰에 공양하고 있다.
 예슬이가 지리산 문수사에서 사과 하나를 반달곰에 공양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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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왼편엔 반달곰 다섯 마리가 사는 우리가 있다. 한켠엔 반달곰의 먹이로 쓰이는 사과가 쌓여있다. 예슬이가 이 사과에 눈독을 들이자 반달곰이 먼저 알아보고 몸놀림이 부산해진다. 빨리 사과를 공양하라는 표정이다.

가슴에 선명하게 그려진 'V'자가 범상치 않음을 과시한다. 멸종되다시피 했고, 환경단체 등에서도 어느 정도 키워 야생으로 돌려보냈지만 오래 살지 못했던 반달곰이다. 그 곰을 지리산의 사찰에서 만나다니…. 한편으로 대견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갇혀 지내는 신세가 안쓰럽기도 하다.

반달곰을 보살피던 주지 고봉스님과 마주친다.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스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오래 전 스님과의 인연을 언급하니 스님이 더 반긴다. 그 사이 슬비와 예슬이가 다가와 스님에게 반달곰의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스님은 아이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궁금해 하는 것마다 바로바로 해소해 준다.

지리산 문수사 주지 고봉스님이 우리 밖으로 불러낸 반달곰에 사과를 건네고 있다.
 지리산 문수사 주지 고봉스님이 우리 밖으로 불러낸 반달곰에 사과를 건네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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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는 꿀을 좋아하는데, 이 반달곰은 사과를 더 좋아하나요?"
"꿀도 좋아하고 사과, 과자, 커피 같은 달콤한 것들을 좋아하지."
"반달곰이 커피도 좋아해요?"
"그럼, 커피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아이들의 궁금증은 끝이 없다. 스님은 전혀 귀찮은 내색 하지 않고 대답하더니 반달곰을 한번 밖으로 불러내 주겠다고 한다. 우리 안에 있는 반달곰을 보다가 장애물 없이 볼 수 있다는 말에 아이들이 화들짝 반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 소식에 다른 관광객들도 잔뜩 기대를 한다.

스님이 사과 조각으로 유인을 하자 반달곰이 어슬렁거리며 따라 나온다. 우리를 빠져나온 반달곰은 스님의 의도대로 사과조각을 하나씩 먹으며 대웅전 앞마당까지 나온다. 모처럼의 화려한 외출인 셈이다. 스님이 준 사과를 두발로 버티고 서서 덥석덥석 받아먹는 모습이 귀엽다.

사과를 몇 개 먹었으니 이제 나무 오르기 시범을 한번 보이라고 스님이 신호를 보낸다. 이를 지켜보던 슬비와 예슬이도 나무에 오르는 곰을 볼 수 있겠다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하지만 곰은 그 자리에 누워버린다. 이제 배가 불렀으니 배 째라는 식이다. 지켜보던 관광객들의 웃음보가 터진다.

일요일 오후 '화려한 외출'을 한 지리산 반달곰. 왼쪽은 대웅전 앞에서 사과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반달곰이 탑 주위를 돌며 탑돌이를 하는 것 같다.
 일요일 오후 '화려한 외출'을 한 지리산 반달곰. 왼쪽은 대웅전 앞에서 사과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반달곰이 탑 주위를 돌며 탑돌이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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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의 짧은 외출이 끝났다. 곰은 먹이를 먹고 있을 땐 온순하기 그지없지만, 배가 부르거나 먹이가 떨어졌을 땐 난폭해진다는 게 스님의 얘기. 먹이에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유다. 아이들도 서운한 마음을 금세 다잡을 수밖에.

어느새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려 한다. 파랗던 서쪽하늘도 주홍빛으로 물들어간다. 노을이 붉어가면서 가슴도 뭉클해진다. 산속의 어둠은 일찍도 찾아온다. 구불구불 길을 내려오는데 벌써 어둑어둑해진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 예슬이는 스님의 마지막 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5월엔 새끼곰 몇 마리를 데리고 와 대웅전 앞마당에서 놀 수 있도록 풀어놓을 것이라는 것을…. 그땐 우리에 갇혀있는 반달곰뿐 아니라 절 마당에서 뛰노는 새끼곰까지도 같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다시 문수사에 오자고 보챈다. 절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그 순간부터.

'화려한 외출'을 한 지리산 반달곰이 문수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고봉스님이 건네주는 사과를 받아 먹고 있다.
 '화려한 외출'을 한 지리산 반달곰이 문수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고봉스님이 건네주는 사과를 받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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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반달곰의 외출. 왼쪽 사진은 우리를 나온 반달곰이 고봉스님이 유인하는대로 따라가는 모습이다. 오른쪽은 스님 옆에서 반달곰의 움직임을 재미있게 살펴보고 있는 슬비와 예슬이.
 지리산 반달곰의 외출. 왼쪽 사진은 우리를 나온 반달곰이 고봉스님이 유인하는대로 따라가는 모습이다. 오른쪽은 스님 옆에서 반달곰의 움직임을 재미있게 살펴보고 있는 슬비와 예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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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문수사, #반달곰, #지리산, #고봉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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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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