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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초등학교 4~6학년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일제고사(진단평가)를 앞두고 학생, 학부모, 교사, 교육당국 모두 여러 이유로 긴장하고 있습니다. 경기침체 와중에도 유독 사교육비만 1조원이 넘게 증가해 작년에는 교육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라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아마 영어교육 강화와 일제고사 부활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 중 일제고사의 첫발을 뗀 것이 바로 작년 3월 6일 전국 중학교 1학년 68만 명이 본 전국연합 진단평가입니다. 시험결과 발표로 후폭풍도 컸습니다.

이 시험은 중학생이 쳤지만, 내용은 초등학교 교육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초등선생님들의 모임인 전교조 서울지부 초등위원회에서 시험지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과연 이 시험이 진단평가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을까요? 초등학교 6년 생활을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전국 진단평가를 앞두고 그 내용이 궁금해졌습니다.

교육학 상식 무시한 진단평가

진단 평가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5과목이 모두 25문제씩 총 125문항 나왔습니다. 분석 결과를 보니 모든 교과 문제가 단순 암기 문제이거나 간단하게 외울 수 있는 개념을 물어보는 문제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교육내용은 체험과 조작을 중심으로 활동내용이 많습니다. 사실 시험으로 내기 어려운 내용들이 주를 이룹니다.

게다가 진단평가는 오지선다형 문제 일색입니다. 오지선다 일변도 문제로 교과 학습 발달 정도나 기초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점은 교육당국에서 더 잘 알고 있습니다.

⑶ 교과의 평가는 선다형 일변도의 지필 검사를 지양하고, 서술형 주관식 평가와 표현 및 태도의 관찰 평가가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7차 교육과정의 평가와 질 관리)

이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학교 단위로 보는 모든 평가는 주관식 문항 또는 서답형 문항을 일정 비율 넣도록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교과부에서 4~6학년 대상으로 본 교과학습진단평가도 다른 때보다는 적지만 국어에 서답형 문제가 있습니다. 유독 중1 진단평가만 선다형일변도인 건 왜일까요?

단편 지식 위주 평가로 초등교육까지 물들까 걱정되네

  국어시험 문제 이원분류표
 국어시험 문제 이원분류표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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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신입생 진단평가는 학생들이 중학교에서 공부할 내용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은연중에 초등학교 내용을 잘 배웠는지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려면 초등학교 교육과정 내용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 결과를 보면 교과별로 영역 편중이 심해서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국어 시험의 80%가 읽기 영역에서 나왔습니다. 초등학생을 둔 부모님들은 아시겠지만,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는 2~3가지로 나뉩니다. 1~3학년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각 2, 3, 2 시간) 3권이고, 4~6학년은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각 3시간) 2권입니다. 국어교육의 각 영역을 통해 언어교육을 총체적으로 하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단평가 문항은 시험 보기 편한 읽기와 국어지식에 몰려있어 국어교육의 전체적인 면을 파악하기는 역부족입니다. 오히려 교과목표를 왜곡하고 초등학교 교육활동을 부정하게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수학과 사회, 과학 과목도 거의 단순 지식이나 이해영역의 문제에 편중되고 태도나 흥미와 같은 정의적 영역을 평가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습니다. 선다형 문제여서가 아니라 일제고사란 형식 자체가 이런 것을 하기에는 무리일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는 모든 교과, 모든 영역을 골고루 가르치게 되어 있습니다. 중학교 첫 관문에서 이런 시험을 자꾸 보게 하면 앞으로 초등학교는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학교 진단평가가 초등학교 간 경쟁을 일으키지는 않을까요? 이미 초등학교별로 올해 중학교 진단평가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교과부는 강제력이 없고 시도교육청이 알아서 한다는 식의 책임회피를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에 강력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영어는 사교육 진단 평가?

영어 25문제도 모두 시험지를 읽고 고르는 문제입니다. 보통 초등학교에서 하는 영어평가는 수업활동 중에 학생들이 하는 활동을 보고 평가하거나 일부 듣기 평가가 들어갑니다. 6학년 학업성취도 평가나 학교 수준 평가도 대부분 듣기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진단평가엔 듣기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에게 너무 급격한 변화입니다. 일부 학생들은 문제 형식부터 낯설어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등 영어 기본어휘표에 포함되지 않는 'restaurant, pardon' 등의 단어도 10개나 됩니다.  

사교육에서 영어를 배운 학생들이라면 쉬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작년에 딸이 가져온 시험지를 본 동료 선생님은 제자들이 시험문제를 어려워하겠다고 걱정했습니다. 2007년에 농촌 6학년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 아이들이 도저히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겁니다. 영어과목에서 도농격차가 크게 벌어진 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국가 잘못을 학생들에게 뒤집어씌우다니

 2008년 중1대상 전국연합 진단평가를 앞두고 많은 문제집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올해는 작년 문제를 토대로 초중등 가릴 것 없이 더 많은 문제집이 나왔습니다.
 2008년 중1대상 전국연합 진단평가를 앞두고 많은 문제집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올해는 작년 문제를 토대로 초중등 가릴 것 없이 더 많은 문제집이 나왔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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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영어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영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키우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수업활동이 주로 게임과 놀이, 역할놀이로 진행됩니다. 이렇게 해도 3학년 때는 영어 수업을 재미있어 하던 아이들이 문자 나오고 양이 많아지는 5~6학년에 가면 조금씩 영어를 포기하게 됩니다.

게다가 영어단어를 읽는 방법(파닉스라고 함)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아예 나오지도 않습니다. 내년부터 배우게 되는 2007년 개정교육과정에야 이 과정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아이들은 철자 읽는 법을 모르고 졸업했는데, 중학교 선생님들은 초등학교에 영어가 들어왔으니 당연히 이걸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은 시작부터 좌절감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고도 작년에 시험결과를 발표하면서 교육당국은 그 책임을 오로지 학생과 지역에 전가하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이 죄라면 사교육을 안 받은 것밖에 없습니다. 교육당국이 영어교육과정에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을 몰랐을까요? 이미 각종 연구를 통해 알고 있고 그래서 새 교육과정에서는 파닉스가 들어갔습니다. 적어도 진단평가 문제를 내기 전에 교과부가 이런 정도는 알려주고 초등학생들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진단도구에 대한 안내를 했어야 합니다.

무늬는 '진단평가', 실제는 '서열화 위한 일제고사'

초등학교 6학년을 보내고 중학교에 들어간 학생들이 3월 초에 참 많이 힘들어합니다. 담임선생님과 종일 같이 보내다가 과목마다 달라지는 선생님들과 많이 어려워진 교과내용, 불친절한 학교 분위기. 누구나 겪는 것이라지만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교육당국이나 학교가 조금만 신경 쓰면 학생들이 훨씬 빨리 중학교에 적응하고 공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3월부터 전국 일제고사를 봐서 학생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게 얼마나 교육적이라고 보십니까? "너를 도와주겠다"는 마음으로 지켜봐도 두려운 변화과정을 "어디 너 한 번 보자"는 식으로 세상이 눈을 부릅뜨는 꼴입니다.

그것도 학생들의 전체적인 능력과 잠재적인 가능성을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오지선다 문제로 말입니다. 이 때문에 결국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 교육단체들이 이 시험이 진단보다는 전국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부쩍 늘어난 문제지 시장은 경쟁강화가 사교육비 증가와 시험대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수준 높은 진단 도구? 능력을 보여주세요

작년 진단평가 문제를 보았을 때 수준도 낮지만, 처리결과도 나중에야 나와 그 목적과 효과가 의심스럽습니다. 또 교사들이 수업 몇 번 진행하면서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수업의 방향과 계획을 정하면 될 것인데, 그와 달리 일제고사는 소리만 요란하지 별 것 없다는 소리도 나옵니다. 올해는 시기도 늦어져 교사들은 이미 학생 파악을 어느 정도 끝내고 중고등학교는 중간고사 준비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2009년 교과학습 진단평가 목적>
- 교과학습 진단평가 도구를 보급하여 개별학생의 교과별 부진한 부분을 파악하고, 보충 지도하게 함으로써 학교의 학습부진학생 최소화 지원
-  학생들의 성취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진단 도구를 개발·보급하여 학교 현장의 평가 방법 개선 선도(서울시교육청)

이제 시험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우려를 무릅쓰고 이런 목적으로 시험을 보신다니 올해 진단평가는 선다형일변도에 단순지식이나 측정한 작년 시험문제에 비해 얼마나 수준 높은지 한번 기대해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008년 중1진단평가를 분석한 전교조 서울지부 초등위원회 보도자료를 토대로 썼습니다. 자세한 분석 내용은 첨부파일을 보시기 바랍니다. 학교와 교실에서 조용히 이뤄질 일을 자꾸 크게 벌이니 교육이 참 우스워지는 느낌입니다.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태그:#일제고사, #2008년 중1진단평가, #오지선다, #영어시험, #교과학습진단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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