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사짐 박스로 가득찬 집. 이삿짐을 넣은 포장박스가 집안 가득 놓여있다.
 이사짐 박스로 가득찬 집. 이삿짐을 넣은 포장박스가 집안 가득 놓여있다.
ⓒ 김태헌

관련사진보기


봄이다. 차가웠던 겨울바람은 온데간데없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움트는 요즘, 겨우내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이곳저곳에서 하나 둘 보인다. 그렇다. 이사의 계절 봄이 돌아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이사를 해본 건 10년 전인 98년이다. 당시만 해도 이삿날이 잡히면 친척들은 물론 부모님 친구분들 할 것 없이 너도 나도 도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근엔 대부분 포장이사이기 때문에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아무리 어수선하고 복잡한 이삿짐이라도 순식간에 척척 포장해 옮겨준다. 그들의 노하우를 훔쳐볼까.

이삿짐센터에 '일꾼'을 자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안 된다' 였다. 나처럼 경험없는 사람을 무작정 현장에 투입할 수는 없단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눈으로라도 배워보는 수밖에. 어쨌든 현장으로 향했다.

포장이사 노하우, 눈어림으로 훔치다

그러나 아뿔싸. 너무 게을렀다. 오전 9시,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5톤 화물트럭과 사다리차가 떡하니 아파트 앞마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름 일찍 현장을 찾았다고 생각했건만 이미 이사 현장은 초록색 이사용 박스로 꽉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포장이사 업체 직원들은 내가 도착하기 1시간 전인 오전 8시부터 이미 이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삿짐을 내리기 위해 사다리차가 아파트로 사다리를 올리고 있다. 위에서 본 풍경인데, 아찔하다.
 이삿짐을 내리기 위해 사다리차가 아파트로 사다리를 올리고 있다. 위에서 본 풍경인데, 아찔하다.
ⓒ 김태헌

관련사진보기


사다리차로 이삿짐을 옮겨 싣고 있다.
 사다리차로 이삿짐을 옮겨 싣고 있다.
ⓒ 김태헌

관련사진보기


잘 포장된 이삿짐 박스를 화물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잘 포장된 이삿짐 박스를 화물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 김태헌

관련사진보기


'찌~익'
'찌지직~'

여기저기서 접착테이프 뜯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안방과 작은방, 그리고 거실, 주방에 한명씩 자리를 잡고 분주히 짐을 싸고 있다.

이사에서 가장 중요한 물품 중 하나는 바로 접착 테이프와 낡은 카페트다. 장롱이나 냉장고 문과 서랍, 책상 유리 등도 접착테이프 한방으로 고정된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데에는 카페트가 필수. 요령껏 깔아야 한방에 힘 덜 들이고 나를 수 있다. 움직일 수 있는 물건들을 고정시키고 자잘한 생활용품들과 옷가지 등을 박스에 담고 포장을 마친 직원들은 이내 능숙하게 사다리차를 이용해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윙~ 10층 창문 앞으로 사다리가 올라온다.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사다리. 자칫, 사고라도 날까 두려운 나와는 달리 그들은 능숙하게 박스와 가구를 옮겨 실었다.

이날 이사를 한 한명순씨는 일반이사 대신 포장이사를 선택했다. 그동안 몇 차례 이사경험을 통해 포장이사의 편리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포장이사나 일반이사나 들어가는 비용은 비슷해요. 일반이사를 하면 이사 업체에 지불하는 돈은 적지만 이사를 도와준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면 결국 비용은 비슷비슷 하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한씨가 포장해놓은 이삿짐 박스를 다시 일일이 열기 시작했다. 어랏, 뭐가 잘못된 거지? 모르긴 몰라도,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마음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한씨가 이런 일을 벌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현관문에 붙어 있던 문 받침대가 없어졌기 때문.

한씨의 경우 세입자이기 때문에 원래 있던 문 받침 하나까지도 원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결국 싸놓은 이삿짐 안에서 문 받침대를 찾아냈고 그때서야 이삿짐을 계속 옮길 수 있었다.

오마이갓! 이사업체에서 청소까지?

포장이사는 파손방지를 위해 이삿짐을 모두 포장한다.
 포장이사는 파손방지를 위해 이삿짐을 모두 포장한다.
ⓒ 김태헌

관련사진보기


도시가스를 사용했던 거주자는 이사시에 가스벨브 점검을 받아야 한다.
 도시가스를 사용했던 거주자는 이사시에 가스벨브 점검을 받아야 한다.
ⓒ 김태헌

관련사진보기


남자 직원들이 한쪽에서 이삿짐을 옮기는 동안 냉장고 안을 청소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아주머니는 "요즘 포장이사는 이사 후 집주인들이 손을 대지 않고 이전에 살던 집과 똑같이 바로 생활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청소도 한다"고 말했다.

청소까지 해주다니…, 놀라웠다. 내집 청소를 할 때에도 묵은 때 청소는 쉽지 않은데, 남의 집 청소까지 하려면 볼 꼴 못 볼 꼴 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특히 화장실 변기라면... 윽!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는 사이 남자 직원들은 사다리차를 이용해 이삿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구슬땀을 흘리며 이삿짐을 옮기고 있는 이삿짐센터 팀장 우필순씨에게 다가갔다.

"힘들지 않으세요?"
"안 힘든 일이 어디 있나. 우리는 일거리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다른 이사 업체들은 요즘 일거리가 많이 없다고 하더라."

10년째 이삿짐 사다리차를 운전했다는 이강수씨도 우씨의 말을 거든다.

"원래 2월부터 4월이 가장 성수기인데 예전만 못 하네. 내가 이 일을 한 지 10년째인데 금년이 제일 일이 없어요. 경제가 어려우니까 이사도 잘 안 하는 것 같아."

역시 요즘은 불황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포장이사는 최저 50만원 정도가 들기 때문에 최근엔 이 금액마저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일반 용달이사를 많이 이용한다고.

새로운 거주자의 취향에 맞게 장판과 문턱이 제거되고 있다.
 새로운 거주자의 취향에 맞게 장판과 문턱이 제거되고 있다.
ⓒ 김태헌

관련사진보기


사다리로 내려진 짐을 트럭으로 옮기고 있는 모습
 사다리로 내려진 짐을 트럭으로 옮기고 있는 모습
ⓒ 김태헌

관련사진보기


3시간만에 텅 빈 집... 새 주인맞이 변신모드로

이사를 가는 한씨가 짐을 모두 뺐을 무렵, 벽지가게 직원과 리모델링 업체 직원들이 텅 빈 집안으로 들어와 작업을 시작했다. 새로 이사를 오는 집주인의 취향에 맞게 장판을 바꾸고 방 문 턱을 없애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한씨가 세 들어 살던 집에는 이 집의 원래 주인인 박수복(가명)씨가 이사를 온다. 그는 현재 분당에 전세로 거주하고 있지만 이사 가는 한씨의 전세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집 전세금을 돌려받아 한씨에게 내주고 자신은 이곳으로 이사를 온다고.

5톤 트럭에 이삿짐이 가득찼다.
 5톤 트럭에 이삿짐이 가득찼다.
ⓒ 김태헌

관련사진보기

박씨는 "직장이 좀 멀어지지만 전세금을 돌려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며 "오늘 도배 등 이사준비를 마치고 주말인 내일 이사 올 것"이라고 전했다.

한씨와 박씨가 이사를 하는 20일과 21일은 이사하기 좋다는 '손 없는 날'이 아니었다. "손 없는 날을 따지다 보면 이사비용도 더 들어 가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이사를 하면서 한씨는 집에서 100원짜리 동전 몇 개를 찾아냈다. 그 언젠가 서랍이나 장롱, 침대 밑으로 굴러들어갔을 동전들. 뿌옇게 쌓인 먼지 속에서 찾아낸 동전은 100원의 본래 가치를 훨씬 뛰어 넘는 기쁨을 가져다준다. 한씨 또한 "이렇게 생긴 동전을 보면, 복권에 당첨이라도 된 듯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시작할 땐 '저 많은 짐을 언제 다 포장하고 옮기지?'란 생각이 들었건만, 3시간만에 짐을 빼는 일이 모두 끝났다. 그리고 새로 이사할 인근 집으로 향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짐을 내리기 위해 아파트로 먼저 올라갔고 뒤이어 한씨 부부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한씨는 예전에 살던 집의 층수인 10층 버튼을 자연스럽게 눌렀지만 이내 버튼을 잘못 누른 것을 알아차리고 박장대소 했다. 이렇게 웃으며 부부는 새로운 집에 들어섰다. 포장이사 업체 직원들도 짐 내리는 손이 분주해졌다.


태그:#이사, #포장이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