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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양복을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양복을 수년 만에 입어 여간 쑥스럽다며...
 할아버지는 양복을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양복을 수년 만에 입어 여간 쑥스럽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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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7일)은 한려동(공화동, 수정동) 잔칫날, 어르신들을 위한 위안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할아버지(백성선·80)는 모처럼 나들이 준비에 분주하다. 설거지도 하고 집안정리도 하고 옷도 말끔하게 정장으로 갖춰 입었다.

할아버지는 혼자 산다. 할머니를 먼저 보내고 홀로 산 세월이 14년이나 됐다. 슬하에 딸 일곱, 아들을 하나 뒀지만 혼자 사는 게 맘 편하다고 한다. 딸들이 이따금씩 용돈도 보내주고 부식도 챙겨줘서 별 걱정이 없다고 말한다.

"기분 좋은 날이제, 동사무소에서 잔치가 열린다고 하니까"

할아버지는 모처럼 나들이 준비에 분주하다. 설거지도 하고 집안정리도 하고...
 할아버지는 모처럼 나들이 준비에 분주하다. 설거지도 하고 집안정리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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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혼자 사시나 봐요?"
"마누라 간 지가 14년 됐어, 혼자 살아"
"자식들은요?"
"딸이 일곱이고 아들이 하나여, 딸은 다 여의었는데 아들은 아직 못 여의었어."
"할아버지 건강하시네요."
"내 나이 치고는 건강하다고 봐야죠."
"소일거리는요?"
"나이가 팔십인디 뭔 일을 할 것이요. 그전에는 토목 일을 했어."

이웃에 사는 배효례(73)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혼자 산 지가 오래되어 외로움에 술을 좀 드시지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독거노인들은 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좋아요, 만고에 좋아요. 혼자 산께 짠하제,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여."
"혼자 산께 마음이 상해서 술을 좀 잡솨."
"할아버지, 오늘 좋은 일 있다면서요?"
"기분 좋은 날이제, 동사무소에서 잔치가 열린다고 하니까"

"여기는 도둑이 없는 동네예요, 우리도 문 안 잠그고 살아요"

옆집에 사는 김양수씨는 도둑이 없는 동네라 문단속이 필요 없다고 한다.
 옆집에 사는 김양수씨는 도둑이 없는 동네라 문단속이 필요 없다고 한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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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집은 여수 수정동 여수세관 건너편이다. 도심 속에 있다. 노인당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니도 내고, 나도 나고" 서로 어울려 술 한 잔씩 나누는 게 유일한 낙이다. 해방 후부터 쭉 이곳에서 살았다. 63년째다. 군대생활(5년 6개월)을 빼고는 이곳을 떠나본 적 없는 터줏대감이다.

"골목 일까지 손수 내가 다했어. 쌍용시멘트 공장이 들어서면서 쫒기다시피 이곳으로 밀려왔어. 그때는 군사정권이라 변변한 보상도 없이 쫒겨 왔어. 그때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어, 지금 생각하면 참 억울하기도 하고, 서글픈 생각만 들어."
"세월이 갈수록 자식들도 멀어집디다. 즈그들 살기도 바쁜께…."

할아버지는 외출하면서 집 문단속도 않는다. 옆집에 사는 김양수(50)씨는 도둑이 없는 동네라 문단속이 필요 없다고 한다. 겉모습은 도심이지만 아직 이들의 마음속에는 시골의 아름다운 정서가 그대로 깃들어 있다. 할아버지 잘 챙겨달라는 말에 "맘은 있는디 잘 안돼요"라고 말한다.

"여기는 도둑이 없는 동네예요, 우리도 문 안 잠그고 살아요."

"우리를 이렇게 생각해주니 너무 고맙소!"

할아버지는 양복을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양복을 수년 만에 입어 여간 쑥스럽다며….

전남 여수시 한려동 주민자치센터,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잔치에 왔어요. 통장이 오라고 해서 왔제"

최덕점 할머니와 어르신들
 최덕점 할머니와 어르신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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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점(86) 할머니다. 지팡이를 짚고 계시던 할머니는 30년 전 사고로 허리를 다쳐 허리가 불편하다고 한다. 백성선 할아버지는 영정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다.

"어서 오세요, 2층에 따땃하니 자리 펴놨습니다. 올라가세요."

한려동 동장(정충식)은 어르신들을 일일이 반갑게 맞이한다.

"밥 한 끼, 라면 한 봉지가 큰 힘이 됩니다. 누군가는 해야 됩니다."

여수시 한려동 주민자치센터
 여수시 한려동 주민자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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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동 동장(정충식)과 7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형은(환경공해추방운동, 청소년 선도육성 호남본부장)씨
 한려동 동장(정충식)과 7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형은(환경공해추방운동, 청소년 선도육성 호남본부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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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흥이 어우러진 잔치마당, 어르신들이 모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정과 흥이 어우러진 잔치마당, 어르신들이 모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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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을 7년째 하고 있다는 이형은(환경공해추방운동, 청소년 선도육성 호남본부장.53)씨의 말이다. 이 씨는 이 일이 마냥 즐겁다고 말한다. 

"음식이 다 맛있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생각해주니 너무 고맙소."

정순자(74) 할머니는 "할매가 싸 준께 맛있제"라며 쌈을 입에 넣어준다.

"한번 주면 정 없다는디…."

정과 흥이 어우러진 잔치마당, 어르신들이 모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여기 돼야지 고기 더 주씨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위안잔치, #어르신, #여수시 한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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