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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사 대웅전과 7층석탑
 청원사 대웅전과 7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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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절 청원사

안성은 경부고속도로와 중부 고속도로 사이에 있다. 이 중 청원사는 경부 고속도로에 가까운 안성군 원곡면 성은리에 있다. 청원사에 가려면 양성면에서 만세 고개를 지나 천덕산으로 들어가야 한다. 절 입구에 성은 저수지가 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갔기 때문에 이곳 저수지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까지 걸어서 간다. 승용차는 절 입구까지 들어갈 수 있다.

10여분을 걸으니 다리가 나오고 그 옆에 '이 뭐꼬' 비석이 있다. 스님들이 즐겨 화두로 삼았다는 그 '이 뭐꼬'이다. 다리를 지나 약간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절이 보인다. 가장 먼저 천덕청원사(天德淸源寺)라고 쓴 요사채가 보인다. 천덕은 절의 뒷산 이름을 따서 쓴 것이고, 청원사는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 내려 붙여진 것 같다.

그런데 자료를 보니 청원사는 창건 당시 산에 푸른 안개가 끼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자와는 맞지 않는다. 요사채를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바로 앞에 대웅전이 나타난다. 마당에서 한 단의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지어졌는데 크지 않으면서도 웅장한 맛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다포계 양식이다.

대웅전에 안치된 석가모니 지불(紙佛)
 대웅전에 안치된 석가모니 지불(紙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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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안을 들여다보니 스님의 염불이 한창이다. 스님 옆에서는 열심히 기도를 드리며 절을 하는 신도들의 모습도 보인다.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나는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자세히 본다. 그런데 가운데 부처님의 상호와 수인이 여늬 부처님과는 조금 다르다. 표정이 근엄하지 않고 수인도 약간 자유분방하다.

이 부처님이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이라고 한다. 지불은 대개 한지로 만든다. 한지를 삶아 종이죽을 만든 뒤 그것을 말린다. 이 종이죽에 풀을 섞어 원하는 모양을 만든 다음 건조시킨다. 건조된 불상에 칠을 해서 부식을 방지한다. 그래서 지불을 건칠불(乾漆佛)이라고도 한다. 이들 지불에는 다시 금칠을 하게 되는데 그 때문에 겉모습은 금동불과 별로 다르지 않다.  

대웅전 앞의 칠층석탑은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

청원사 석탑
 청원사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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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6호인 칠층석탑이 있다. 3단의 바닥돌 위에 1층의 기단(基壇)을 올리고 그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부족하고 길다는 인상을 준다. 전체적인 체감율이나 기단부 안상의 조각기법 등을 볼 때 조선 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7층 석탑 옆에는 훼손된 2층의 작은 탑이 보인다. 이 탑의 부재를 보면 왼쪽에 있는 7층 석탑의 부재와 뒤섞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아마 대웅전 앞에 두 기의 석탑이 서 있었을 것이다. 이 두 기의 석탑이 훼손되어 방치되었다가 나중에 복원하는 과정에서 뒤죽박죽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문화재 복원에서 우리가 항상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눈을 맞으며 선정에 든 선원
 눈을 맞으며 선정에 든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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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웅전 뒤로 돌아가니 스님들의 선방인 불식선원(不識禪院)이 보인다. 지식을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마음만으로 수행하는 선원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것 같다. 선원 앞에는 하얀 눈이 쌓여 머리 속에 있는 모든 지식을 하얗게 만들고 있다. 공부나 수행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환경이 받쳐 주면 더 잘될 것 같다.

절을 보고 주차장으로 나오니 주차장 밑으로 성은 저수지가 보인다. 그런데 이 저수지는 낚시터로 이용되고 있고, 그 때문에 물가로는 자동차 의자가 눈을 함빡 뒤집어 쓴 채 서 있다. 건너편으로는 조사(釣士)가 하나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뭐가 좀 잡힐까? 세월을 낚는 것은 아닐까? 차림으로 봐서는 고기를 낚으려는 것 같다. 산사 아래 낚시터라, 청원사 주변에는 뭔가 조화롭지 못한 모습이 눈에 띈다.

서운산 북쪽 석남사 가는 길

석남사 가는 길
 석남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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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사를 보고 우리는 서운산 자락에 있는 석남사로 향한다. 석남사 가는 길은 안성 시내를 지나 325번 지방도를 따라 이어진다. 이 길은 배티 고개를 넘어 진천군 백곡면으로 이어진다. 배티 고개는 충북과 경기를 이어주는 꽤 높은 고개이다. 이 고개 주변은 골이 깊어 1830년대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은거해 살기 시작했다.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온 천주교 신자들이 배티 고개 아래 삼박골(현재: 진천군 백곡면 용덕리)에 교우촌을 형성하고 살았다고 한다.

차는 배티고개를 넘기 전 상중리에서 우회전 골짜기를 따라 들어간다. 버스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길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따라 먼저 석남사로 향한다. 석남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그 아래로 영산전과 금광루가 있고 그 사이에 3층 석탑이 두 기 있는 유서 깊은 절이다. 신라 문무왕 20년(680) 석선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니 13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석남사 경내에 들어가려면 먼저 2층으로 된 금광루(金光樓) 아래를 지나야 한다. 그런데 금광루 2층에 늘어뜨려진 주련이 참 쉽다. 한글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효심천심불심 언제나 이 마음, 수행도 봉사도 나날이 즐거워.' 효심을 강조하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석남사에는 '부모은중경'을 새겨놓은 탑이 있다. 그것도 한글로.

금광루의 한글 주련
 금광루의 한글 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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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루 1층 계단을 올라 마당으로 나오니 마당 위 저만치 높은 곳에 대웅전이 보인다.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니 금광루 1층이다. 이곳의 주련 역시 한글로 쓰여 있다. '서운산 아래 금광루에서 부처님 광명 다시 빛내리.' 이 얼마나 이해하기 쉽고 명쾌한가 말이다. 금광루에 올라보니 석남사 사적기까지 한글로 적혀 있다. 대중들에게 다가가려는 석남사 주지 스님의 노력에 고개가 숙여진다.

금광루 꽃살문 1
 금광루 꽃살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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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루 꽃살문 2
 금광루 꽃살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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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루의 꽃살문도 최근에 만들었지만 그 기하학적 무늬가 예사롭지 않다. 가운데 세 쪽의 문에는 창문살을 원형으로 구성하고 그 안에 여섯 개의 꽃잎을 장식했다. 그리고 양쪽에 있는 두 쪽의 문에는 원형의 작은 꽃무늬를 여섯 개의 꽃잎이 감싸고 있다. 그런데 이들 꽃잎은 이웃의 꽃잎과 포개져 있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영산전과 대웅전

석남사 영산전
 석남사 영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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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루를 나와 계단을 오르니 두 기의 탑이 나타난다. 두 탑이 유사한듯하면서도 다른 모습이다. 기단부의 모습도 다르고 탑신의 모습도 조금 다르다. 이들 탑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지 않아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이들 탑 오른쪽에는 보물 제823호인 영산전이 있다.

영산전 16나한(좌측)
 영산전 16나한(좌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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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16나한(우측)
 영산전 16나한(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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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에는 일반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그분의 생애를 그린 여덟 폭의 팔상도를 안치한다. 그런데 석남사 영산전은 팔상도 대신 나한과 나한도를 안치했다. 가운데 불단에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불단의 좌우에는 ㄱ자형으로 불단을 이어지게 만든 다음 좌우에 8기씩 16나한을 봉안했다. 이들 16나한은 다른 곳과는 달리 금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나한상 뒤로 나한도가 그려져 있다.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다포계의 팔작지붕이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모습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 단청을 새로 해 화려하다.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영조1년(1725)에 법당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석남사 대웅전
 석남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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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을 보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 가장 높은 곳에 대웅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은 원래 영산전 앞에 있었는데 1978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고 한다. 대웅전은 영산전을 수리하면서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옹정4년 을사(1725) 3월 일'이라는 대웅전 기와 명문을 통해 확인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다포계 양식을 하고 있다. 법당 안에는 석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마애여래입상

마애불 가는 길
 마애불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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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법당을 보고 우리는 주차장으로 내려온 다음, 그곳에서 서운산 정상쪽으로 7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마애불로 향한다. 오전에 내린 눈으로 길 주변이 하얗다.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붙어있는 적갈색 단풍과 하얀 눈이 잘 어울린다. 우리는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산으로 오른다. 잠시 후 산길에서 조금 벗어나 가파른 길을 올라가니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이 나타난다.

이 부처님은 암벽에 돋을새김 한 고려 초기의 마애불이다. 머리 부분이 비교적 크게 표현되었고 상대적으로 다리 부분은 짧게 표현되어 날렵하거나 시원해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부처님이 우둔하고 비대해 보인다. 두 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렸으며, 오른손은 검지만을 펴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머리 주변에는 3줄의 선으로 둥글게 광배를 양각했다.

마애여래입상
 마애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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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는 양 어깨를 감싸며 흘러내려 배 부분에서 U자형을 이뤘다. U자형 가사 위로는 매듭이 지어졌는데 아주 세련되어 보인다. 그러나 종교적인 측면에서나 예술적인 측면에서 수준 높은 작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경기도 유형재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석남사 마애여래입상의 높이는 5.3m이다.

석남사는 스님들이 생활불교를 실천하는 절로 유명하다.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는 평범한 진리에 따라 스님들이 농사도 짓고 작업도 한다. 이날도 스님들은 리어카를 끌면서 흙을 옮기는 등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러면서도 우리 회원들이 대웅전을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니 흔쾌히 응한다. 낮은 자세로 수행하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스님들의 모습이 참 좋다. 

덧붙이는 글 | 지난 3월3일 청원사와 석남사를 다녀왔다. 이날 전국적으로 눈이 왔다.



태그:#청원사, #석남사 영산전, #서운산, #석남사, #마애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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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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