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두 해 전 이맘때쯤 친정 큰 조카가 제대를 했고, 같은 해 겨울에 또 다른 친정 조카가 입대를 했다. 7남매의 첫째인 오빠가 50대를 넘기고, 두세 살 터울의 다른 형제들도, 나도 40대에 접어들면서 '군 입대'는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되었다. 고등학생인 우리 아이도 서너 해 후면 입대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군 입대'가 더 실감나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만나는 군인들에게도 예전과 달리 한 번 더 눈이 머물 때도 많아졌다. 십여 년 전, 최전방에 배치되어 손발이 동상에 걸렸다는 두 살 터울 사촌 동생의 말 때문인지 특히 손과 발에 눈이 자주 머물곤 한다.

호국 응봉사 군장병 수계식 및 위문공연-1
 호국 응봉사 군장병 수계식 및 위문공연-1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이런 내게 누군가의 "군 법당에 위문공연 갈 건데 함께 가자"는 제안은 절대 뿌리칠 수 없는 솔깃한 제안일 수밖에! 지난 일요일, '십시일푼' 봉사단체인 '가릉빈가 소리단(작곡가 오해균 이끔)'과 함께 강원도 인제 호국 응봉사로 향하는 동안 가슴이 막연하게 설렜다. 불가와 인연을 맺은 지 삼십여 년, 수많은 절에 오갔지만 군법당은 처음이라 더욱 그랬다.

"인제 가면 언제 오려고?"
"설마 원통해서 못 살겄소! 하여 도망쳐 영영 '언제'에 눌러앉겠다는 것은 아니겄지?"
"뭐가 그리 원통혀서 인제라도 가려고?"

약속이 정해진 후 두어 달 동안 몇몇 사람에게 자랑했더니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농담을 거의 모르던 사람마저 이런 장난을 서슴없이 했다. 지금이야 서울에서 두어 시간이면 뚝딱 닿는 거리라지만, 예전에는 오지 중의 오지요, 때문에 귀양처로 유명한 곳이었기에 한번 가면 언제 올지 기약할 수 없을 만큼 첩첩 산중이었다고 한다.

이런 선입견 때문인지 시속 110km가 더디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막막함도 잠시, '며느리고개'를 넘자 어느새 호국 응봉사다.

군화의 무게는?
 군화의 무게는?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조국을 위한 길이라면 무엇이 두려울까. 그래도 모자라면 이 몸도 던지리라
 조국을 위한 길이라면 무엇이 두려울까. 그래도 모자라면 이 몸도 던지리라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대웅전에서 '장병 수계법회'가 진행 중이었다. 수많은 군화들이 법당 밖을 에워싼 듯 놓여 있었다. 낡은 군화 속에 섞여 있는 새 군화에 눈이 자꾸 머물렀다. 군화를 처음 신는 날의 심정은 어땠을까? 궁금하다. 군화의 사회적, 심정적 무게도 궁금하다. 수백 명의 장병들 틈에 끼어 합장을 하고 반배를 한다고 고개를 숙이니 방석에 새긴 글자가 눈길을 끌었다.

방석의 글씨를 더듬어 읽는 순간 울컥해졌다. 일요일의 늦잠 속에 있을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조카를 입대시키고 돌아서는 순간, 몇 년에 걸친 집안의 잦은 우환으로 엄마로서 해준 것이 너무나 없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는 언니도 생각났다. 이제 불과 삼사 년 후면 아들을 군에 보내야 한다는 어미의 심정은 벌써부터 자꾸만 아리다.

비빔밥을 먹고 있는 장병들
 비빔밥을 먹고 있는 장병들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호국 응봉사 군장병 수계식 및 위문공연-정성이 가득한 비빔밥
 호국 응봉사 군장병 수계식 및 위문공연-정성이 가득한 비빔밥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일행에서 떨어져 비빔밥을 먹고 있는 장병들 주변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행군을 할 때나 수해지역 복구 등을 할 때 본 군인들은 무척 강하고 듬직해 보였는데 엄마의 심정으로 가까이서 보니 우물가에 내놓은 아이인양 마음이 영 놓이지 않았다. 몇 년 후 내 아들의 모습 같아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장병들 옆에서 서성거렸다.

"너희는 왜 밥을 안 먹고 그렇게 들고만 서 있니? 자리가 없구나? 저기 있는 쌓여 있는 의자에 앉아서들 먹어라. 그렇게 놓으면 불편하니 의자 두 개를 마주 보고 놓은 다음 놓고 먹으면 될 거 아니냐? 고추장도 좀 더 넣고 비벼먹지. 그렇게 먹으면 맛이 나니?... 고추장이나 김치가 없으면 가서 달라고 해서 가져와 먹어라."

사복을 입은 주임상사(나중에 알고 보니) 한 분이 장병들 사이를 오가며 엄마들이나 할법한 시시콜콜한 잔소리를 하며 장병들을 끊임없이 챙기고 있었다.

나물만 담아놓은 비빔밥 그릇에 먹고 싶은 만큼 각자 퍼서 먹는데 대부분의 장병들이 '저 밥을 어떻게 비벼 먹으려고?' 싶을 만큼 가득 담곤 했다. 내가 3끼에 걸쳐서도 다 못 먹을 양을 어느새 뚝딱! 저렇게 맛이 있을까? 싶다. 하기야 '부처님 오신 날'이면 유독 더 맛나고 그리운 절의 비빔밥이 아니던가!

무엇이든 맛나게 해먹을 수 있는 자유의 몸인 나도 이런데 2년 남짓 군에 묶여(?) '짠밥'을 먹는 장병들은 오죽할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시치미 뚝 떼고 다가가 "그렇게 맛있나?" 하고 묻는 순간, 이런! 한순간 "네!"하고 우렁찬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가? 뜻하지 않은, 수많은 장병들의 우렁찬 대답에 난 얼굴이 후끈해졌고 둘레둘레 밥을 먹던 녀석들은 씽긋 웃었다.

"저렇게 맛있을까요? 요즘 군대 밥 좋아졌다고들 말하던데?" 엄마처럼 장병들을 세세하게 돌아보며 잔소리를 하고, 계속 장병들을 챙기고 있는 분께 물었다.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군대 밥은 군대 밥이지요. 오죽하면 짠밥이라고 하겠어요. 옛날보다 많이 좋아지고 고기가 아무리 많이 나오고 맛있어도 이렇게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절대 따라갈 수 없거든요. 나물만 몇 개 넣고 비벼도 엄마가 정성들여 해준 밥맛이라 더욱 맛있는 것이지요."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주임원사 김현수)

장병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획일적이고 조직적인 밥만 먹다가 모처럼 엄마가 해준 밥을 맛나게 먹고 있는 장병들에게 말을 걸면 방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 같은 잔소리를 하던 주임상사님도 장병들 틈에 끼어 밥을 먹고 있었다. 밥을 거의 먹은 장병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종교가 군 생활에 위안이 되는가?"

군인 하나가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청소년기부터 불자였단다. 여자친구와 얼마 전 헤어졌단다. 부처님 덕분에 위안을 얻고 있단다. 옆에서 다른 군인이 말한다. 자기는 오늘부터 불자란다. 도움이 될 것 같아 신청, 오늘 법당에 와서 수계도 받았고 맛있는 비빔밥도 먹어서 좋단다. 또 누군가 한마디 한다.

"종교가 있는 것이 그래도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위문 공연에 참여한 탈북가수 백미경씨와 공짜 아저씨 김상경
 위문 공연에 참여한 탈북가수 백미경씨와 공짜 아저씨 김상경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넉살좋은 재담과 노래로 청중을 사로잡은 선풍기 아저씨
 넉살좋은 재담과 노래로 청중을 사로잡은 선풍기 아저씨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계룡산 지게꾼에서 여의도 방송국까지, 몇 년 전 모 통신회사 광고를 통해 일약 스타가 되어 사극에도 종종 출연했던 공짜 아저씨 김상경씨를 이렇게 만난 것은 이번이 3번째다. 지난 연말 지하철로 함께 이동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근황을 물었더니 몇 년 전부터 봉사와 위문공연으로 일상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교도소나 소년원, 요양원과 군법당이 주요 봉사처다. 얼마 전 <공짜가 좋아. 진짜가 좋아>(세광음반) 음반을 냈다. 노래를 녹음하는 모습을 직접 뵌 적이 있는데 노래를 정말 잘하신다.

"공짜가 좋아. 하지만 베풀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아. 부족해도 남에게 베풀고 사는 것,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사는 것 그게 진짜 인생이야." 이렇게 자주 말하곤 한다.

선풍기 아저씨를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가릉빈가 소리단'은 봉사자들의 십시일푼(반)으로 공연에 필요한 경비와 위문물품을 마련한다. 위문공연에 음향기기는 필수인데 경비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선풍기 아저씨는 언제나 선뜻 음향기기들을 지원한단다. 큼지막한 엿판까지 마련, 공연 틈틈이 걸쭉한 재담과 함께 장병들에게 엿을 나눠주었다.

이런 선풍기 아저씨를 "세상에서 둘도 없을 천사"라고 가릉빈가 소리단 대장인 오해균씨는 몇 번 말했었다. 때문일까? 선풍기 아저씨의 "엿 먹어라"는 애교처럼 그저 재밌기만 했다. 넉살 좋은 재담과 노래 실력은 타고 났다 싶을 정도다. 그의 한마디마다 박수와 웃음이 쏟아졌다. 화장을 하기 전 그 선량한 웃음을 찍어놓았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을!

트로트 가수이자 찬불가 가수인 정향숙씨와 선풍기 이저씨
 트로트 가수이자 찬불가 가수인 정향숙씨와 선풍기 이저씨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1등을 먹어 4박 5일간의 휴가를 얻은 팀
 1등을 먹어 4박 5일간의 휴가를 얻은 팀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위문공연을 보는 틈틈 장병들에게 엄마표(?) 잔소리를 하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입대 전까지 컴퓨터 게임에 길들여졌던 아이들이 많고 옛날과 달리 한둘 낳다보니 그만큼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다가 와서 군이라는 조직에 적응하고 길들여지려니 많이 힘든 거죠. 밖에서 풍족하고 편안했던 만큼 그만큼 많이 힘들기 때문에 장병들이 정신적 위안을 얻는다든지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어떤 통로가 필요한데 군의 성격상 사실 많이 힘들거든요. 때문에 이런 종교 시설이나 이렇게 장기자랑도 하고 함께 웃으면서 분출시킬 계기가 필요하죠. 이런 공연이 좀 많았으면 좋겠는데 여건이 부족해 기회를 많이 만들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공연이 우리 장병들에게는 큰 위안이 될 겁니다. 멀리서 와주셔서 모두 고맙습니다."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주임원사 김현수)

이번 호국 응봉사의 수계법회&위문공연에는 8개 부대가 참여했다. 가릉빈가 소리단 위문공연 틈틈 장병들의 장기자랑이 있었다. 1등을 한 팀에게는 4박 5일, 2등은 3박 4일, 3등은 2박 3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다른 때보다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이 지체될 만큼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내게는 '군대'와 관련해 구체적인 것들을 많이 생각하게 한 행사였다.

TV 등을 통해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 뉴스를 접하며 혹은 속으로 그랬다. '누구는 가지 않는 군대를 자기만 갔나? 얼마나 나약하게 키웠으면 남들 다 이겨내는데 못 이기고 자살까지 해?' 혹은 아들이 군에 입대한 후 우울증에 걸렸다는 어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자식만 군에 보냈나? 참 유별나지' 이렇게 속으로 비아냥댄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 몇 년 후 내 아들을 군에 보내야만 하는 어미의 심정으로 군장병들과 함께 몇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의 심정이 '오죽했으면!' 싶어지고 나도 모르게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장병들에게 눈이 자꾸 머물렀다. '내 아들 내 일'이 되어 마음이 자꾸 짠해지는데 어쩌랴. 아마 다른 부모들도 다들 그러겠지. 다들 그랬겠지.


태그:#군부대 위문공연, #가릉빈가 소리단, #인제, #오해균, #공짜 아저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