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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국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를 판단하는 '국민참여재판(배심제)'을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 법률포털사이트가 온라인상에서 네티즌을 배심원으로 참여시켜 최초로 시도한 '로티즌(lawtizen) 참여재판'에서 네티즌들이 무죄를 선고했다.

 

로티즌 참여재판은 법률포털사이트 로시콤(www.lawsee.com)이 지난 1월19일 <사라진 남자>편으로 첫 재판을 시작해 검찰과 변호인간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이며 지난 3월9일까지 7주 동안 진행됐고, 공판은 매주 1회 열렸다.

 

로시콤은 18일 "온라인상에서 최초로 시도된 사이버 국민참여재판에 두 달이라는 긴 재판기간과 강제성이 없음에도 22명의 배심원이 끝까지 참여해 평의한 결과 유죄 4명, 무죄 18명 의견을 냈고, 재판부가 배심원들의 평의를 존중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로티즌 참여재판은 네티즌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실제 법정에서 이뤄지고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온라인상으로 옮겨 놓은 듯 법정뿐만 아니라 재판장, 검사, 피고인, 변호인, 배심원들의 모습까지, 게다가 재판진행 절차도 그대로 재현해 눈길을 끌었다.

 

로시콤은 처음에 만20세 이상의 네티즌 회원들의 신청을 받고 평결의 무게를 높이기 위해 배심원으로 25명을 선정했는데, 재판이 7주 진행되는 과정에서 3명이 빠지고 최종 22명이 끝까지 참여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5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도가 6명, 경북지역이 4명이었다. 직업도 사무직 6명, 문화예술계 5명, 서비스직 2명, 학생 2명뿐만 아니라 교육자, 주부 등 다양했다.

 

가상사건인 <사라진 남자>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바람난 주부 '오바람'은 2008년 3월부터 내연남 '박실종'의 오피스텔에서 동거하다가 10월5일 오피스텔에서 흉기에 잔인하게 찔러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고가의 물건과 현찰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점과 강도의 소행으로 보기엔 너무 잔인하게 살해된 점 등을 들어 원한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판단해 조사하던 중, '오바람'이 별거 중인 남편 '나포기'와 이혼문제로 불화가 심했음을 알고 '나포기'를 용의자로 지목해 수사를 벌였다.

 

그런데 '나포기'의 승용차에서 범행도구로 짐작되는 흉기가 발견됐고, 국과수 분석결과 '오바람'의 혈흔이 나와 '나포기'를 살인죄로 기소한 사건.

 

하지만 '나포기'는 "사건 당일 밤 아내의 휴대전화가 걸려와 전화를 받았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이혼도장을 찍어달라는 것인지 화가 나기도 했으나 내심 걱정이 돼 오피스텔에 갔는데 아내가 살해된 것을 보고 너무 놀라 당황해 범인으로 지목될까봐 그만 흉기를 갖고 나온 것"이라며 자신은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이 사건은 목격자 등 직접적인 증인이나 증거는 없고 간접적인 증거만으로 유무죄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유력한 증인이나 참고인이 될 수 있는 동거남 '박실종'은 사건 당시부터 행방이 묘연해 변호인은 '박실종'이 범인일 가능성을 주장하며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다.

 

검사는 최후진술에서 "피고인이 사건발생 시간에 현장에 있었음이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CCTV에 찍힌 화면으로 확인된 점과 피고인의 승용차 안에서 살해도구가 발견된 점 등에서 유죄의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은 "범행도구는 오해의 소지가 있음은 인정하나, 피고인이 용의주도한 진범이라면 과연 자기가 용의자로 의심 받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살해도구를 혈흔도 지우지 않고 자신의 차에 놔뒀겠냐"며 반박했다.

 

또한 "CCTV에 찍혔을 때 입고 있던 옷을 없애거나 숨기지 않고 체포될 때까지 안방 옷걸이에 그대로 걸어둔 점, 피해자가 난자될 정도의 극심한 상처로 볼 때 피고인의 겉옷에 피가 한 방울도 안 튄 점은 피고인이 살해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무죄를 주장했다.

 

피고인 '나포기'는 최후진술에서 "물론 한때는 바람난 아내를 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하고 미워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제 딸을 낳아준 사람이고, 저는 진정으로 사랑했었습니다. 아내가 저를 떠난다고 했을 때 많이 힘들었지만 이혼하더라도 딸에게는 친엄마인데 어떻게 해칠 수 있겠습니까"라며 흐느꼈다.

 

 

이에 대해 배심원들은 평의결과 유죄 4명, 무죄 18명의 의견을 냈고, 이 사건 김태정 재판장은 "범행도구가 피고인의 승용차에서 발견된 점에서 유죄라는 의심이 가나, 범행을 부인하는 피고인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없고, 배심원들의 의견처럼 의심의 여지없이 유죄로 판단하기에는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평의결과를 존중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최초 로티즌 참여재판에서 재판장 역할을 맡았던 김태정 변호사는 "온라인상에서 최초로 시도됐는데 배심원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등 네티즌들의 참여 열기가 높아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고 평가하면서 "로티즌 참여재판에 네티즌들이 많이 참여해 그동안 시범적으로 운영돼 온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조기정착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검사 역할을 맡았던 김진환 변호사는 "사실 직업이 변호사라 변호인 역을 맡고 싶었는데 검사의 입장도 이해해 볼 겸 검사역을 수락했다. 막상 재판에 참여해 보니 검사 입장과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면도 있었던 것 같아 개인적으로도 공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의 의견과 평의결과가 상당히 합리적으로 나온 것 같아 네티즌들의 수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고 배심원들을 높이 평가했다.

 

변호인 역할을 맡았던 김태성 변호사는 "제1호 로티즌 참여재판에 참여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로티즌 법정 게시판을 통해 배심원들과 방청객들의 생각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며 "생각보다 예리한 지적이 많아 새삼 놀랐고, 우리 국민들의 전반적인 법상식이나 의식이 높아진 것 같아 법조인들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로티즌 참여재판을 기획제작한 로시콤 김일환 본부장은 "재판이 길게 진행됐음에도 22명의 배심원들이 공판진행 내내 성실히 재판내용을 확인하고, 신중한 의견을 표시했다"며 "처음 시도되는 사이버재판이고 강제성이 없다는 점 때문에 재판의 마지막 단계인 평의에 배심원의 참여율이 낮을까봐 걱정했는데 예상밖의 높은 참여율로 제작인은 물론 참여한 법조인들조차 크게 놀랐다"고 성공적으로 평가했다.

 

현재 2호 로티즌 참여재판의 소재와 시나리오를 모집 중이라고 밝힌 김 본부장은 "이번이 첫 시도이다 보니 아쉬운 점도 있으나 다음 2회 재판부터는 미흡한 점을 보완해 일반인들도 더욱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유익한 법률문화공간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니 네티즌들의 많은 참여와 호응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번 재판의 진행과정과 결과는 로시콤과 로시콤 법률구조재단(foundation.lawsee.com) 사이트에서 언제든 다시보기로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로이슈, #로티즌, #참여재판, #로시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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