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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마다 개교기념일이 있을 것입니다. 학교가 세워져서 문을 연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이 날은 또한 학교마다 각각의 사연들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의 생일이랄 수 있는 개교기념일은 그런 개교의 의미와 사연들은 어느덧 묻혀버리고 학교 구성원들에게 다만 하루 쉬는 날쯤으로만 인식되어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합천 적중의 원경고등학교는 개교기념일마다 특별한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적중면 일대를 감싸 안고 있는 미타산을 등반하는 것입니다. 미타산은 학교 주변에 너르게 펼쳐져 있는 적중과 초계 지역 벌판을 완전히 원을 그리며 둘러쳐 있는 산들 중에서 가장 높은 주산으로 원경고등학교를 바로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경고등학교는 미타산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가 첫 부분에 "태백 정기 이어 받은 미타산 자락 / 푸른 숨결 가득한 가야 옛 벌" 이라는 구절이 나올 정도로 각별한 산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염불의 문구인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에서 산 이름을 따온 것을 보면 불연이 깊은 합천 지역과 원경고등학교의 깊은 인연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 물통을 들고 힘차게 산을 오르는 거야. 산 앞에서 고개 숙인 남자는 누구?
 자, 물통을 들고 힘차게 산을 오르는 거야. 산 앞에서 고개 숙인 남자는 누구?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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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원경고등학교는 해마다 3월 17일 개교기념일이 되면 미타산을 전교생과 전 선생님들이 등반하며 학교 개교의 의미를 새기게 하고 있습니다. 개교 1주년부터 시작된 미타산 등반은 벌써 12번째로 이어져 이제 학교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개교기념일 미타산 등반은 그동안 좋은 날씨를 만나지 못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꼭 비가 전날 내려서 등산길을 미끄럽게 하였고, 심지어 눈까지 내리기도 하고, 강한 바람이 불거나 꽃샘추위가 와서 몸을 움츠리게 하였지요.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도 날씨가 좋았습니다. 황사도 동해안으로 빠져나가 주었고 날도 따사로워 등반하기에 참 좋았습니다.

학교 이름을 새긴 리본 달기도 하였습니다. 등산길에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학교 이름을 새긴 리본 달기도 하였습니다. 등산길에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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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타산 등반의 전통을 세워주신 전임 교장 선생님께서 퇴임하신 벗들과 함께 먼 곳으로부터 와서 아이들을 격려하며 함께 산을 올라 그 의미를 더해주었습니다.

아침 식사에 미역국이 나왔습니다. 생일이니까요. 출발하기 전에 한 자리에 모여 미타산 등반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보고 나서, 학교 차와 선생님들 차에 아이들을 나누어 태우고 등산로 들머리까지 이동하였습니다.

오이 두 개를 베낭에 꽂고 올라가는 전임 교장 선생님의 뒷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오이 두 개를 베낭에 꽂고 올라가는 전임 교장 선생님의 뒷모습이 재미있습니다.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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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학교에서 나누어진 물 한 통과 오이 한 개를 가지고 산을 올랐습니다. 다소 더워진 날씨 덕분에 땀이 났습니다. 올라가다 보니 등산을 잘 하지 못하고 엄살을 피우는 한 여학생을 한 여 선생님이 데리고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 선생님. 못 올라가겠어요. 잠시만 쉬었다 가요."
"조금 전에 쉬었거든."
"죽을 것 같아요. 도저히 못 가요."
"그렇게 자주 쉬면 더 올라가기 힘들다. 꾸준히 올라가자."
"아, 뭣 땜에 산을 올라요. 노는 날인데."

아이는 끝없이 투덜거렸고, 선생님은 계속 웃음을 잃지 않고 아이를 설득해 갔습니다. 칭얼대는 모습에 자칫 짜증이 날 수도 있을 텐데, 아이를 부드럽게 부추기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누구나 고통은 있어. 그러나 참을 줄 아는 힘이 중요한 것이야. 진득하게 참으면서 나아가는 힘을 가진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야."

아이의 뒤를 밀며 일러주는 선생님의 따뜻한 가르침이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미타산을 한 번 오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 가슴속에 말없는 교훈이 스며들지 않을까요?
미타산 정상에서 모두 함께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아이들 뒤로 황사가 물러간 파란 하늘이 있습니다.
 미타산 정상에서 모두 함께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아이들 뒤로 황사가 물러간 파란 하늘이 있습니다.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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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미터 미타산 정상에 올라 아이들은 벌판의 한 중심에 서 있는 학교를 보며 감탄하였습니다. 야, 저기에서 우리가 사는구나! 이런 깨달음이 있겠지요. 힘겹게 오른 산 정상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학교를 관망하며 개교기념일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이 바로 이 날 행사의 핵심이었습니다.

원경고등학교 예쁜 여 선생님들. 아름다운 미소가 봄날 같습니다.
 원경고등학교 예쁜 여 선생님들. 아름다운 미소가 봄날 같습니다.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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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선생님들은 가지고 온 간식거리를 내어 나누어 먹고 놀다가 맨 후미가 도착하자 학년별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들이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1학년 어떤 아이가 할아버지라고 불렀던 전임 교장선생님과 벗들도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노란 산수유 꽃이 활짝 피어, 가슴 벅찬 아이들의 청춘을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원경고등학교 아이들이 봄이 오는 길목을 밟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산 중턱에 한껏 피어난 노란 산수유꽃. 아이들의 가슴 벅찬 청춘도 저 꽃 처럼 피어나겠지요.
 산 중턱에 한껏 피어난 노란 산수유꽃. 아이들의 가슴 벅찬 청춘도 저 꽃 처럼 피어나겠지요.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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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타산, #개교기념일,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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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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