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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시에서 충북 단양군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크게 3개로 나뉜다. 첫 번째가 죽령이요, 죽령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이동을 하면 두 번째 고치령이 나온다. 세 번째가 가장 동쪽에 위치한 마구령이다.

영주에서 가장 알리고 싶은 관광지가 '죽령 옛길'이라면, 가장 숨기고 싶은 관광지가 바로 오늘 오르는 '고치령(古峙嶺)'이다. 고치령 고갯마루나 마락리 인근에 있는 빈집을 얻어 한 달 쯤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고개를 넘는 내내 들었다.

마락리 가는 길
 마락리 가는 길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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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강원도와 충청도, 경상도를 오가던 상인들이 넘던 이 고갯길은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 위치한 좌석교회 앞에서 출발하여 해발 760m 고치령을 넘어 산 아래 마을인 단산면 마석리의 옥대초등학교의 마락 분교가 있던 마락청소년야영장까지만 가면 끝이 난다.

위리안치지
 위리안치지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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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고치령 도보여행 길은 역사와 문화의 고장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위치한 금성대군 위리안치지(錦城大君 圍籬安置地)에서 시작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길을 내 나름대로 '금성대군 길'이라고 이름을 정했다. 세종대왕의 아들이며, 수양대군의 동생인 금성대군은 사육신들의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유배지를 떠돌다가 마침내 흥주도호부(순흥의 옛 이름)로 옮겨 오게 된다.

금성대군 신단
 금성대군 신단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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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폐위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소백산 너머 영월군 청령포 적소에 안치되어 있었다. 금성대군은 조카인 단종의 복위를 위해 순흥부사 이보흠 등과 고을의 군사들과 선비를 모으고, 영남의 선비들에게 격문을 돌려 단종의 복위를 꾀하게 된다.

그러나 밀고로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면서 그에게 동조하던 흥주도호부 지역의 수백 명 선비들과 가족은 물론, 흥주 30리 안에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죽임을 당했다. 이 사건을 영주지방에서는 '정축지변'(丁丑之變)이라고 하여 특별히 기억하고 있다.

이후 흥주도호부는 폐부가 된다. 당시 죽음이 얼마나 처참했던지 사람들이 죽고서 흘린 피가 죽계(竹溪)를 타고 십여 리를 흘러 이웃한 안정면 동촌리에서 끊어졌다 하여 현재도 이 마을을 사람들은 '피끝 마을'이라고 부른다.

위리안치는 중죄인의 거주지를 제한하기 위해 집이나 움막의 둘레에 탱자나무 울타리를 치거나 가시덤불로 에워싸서 외인의 출입을 금한 형벌로 요즘으로 말하자면 가택연금이라고 할 수 있다. 금성대군 위리안치지는 바로 금성대군이 순흥면 내죽리에 안치되어 있던 장소이다.

정축지변 이후 200년이 지나 숙종조에 순흥도호부는 환복이 되었고, 이후 매년 봄, 가을(음력 2월, 8월) 향사가 열리는 금성대군 신단, 조선 유학의 중심이자 선비를 훈육하던 민족교육의 산실인 백운동 서원(소수서원) 등이 만들어져 과거의 영화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 

고치령을 논하면서 금성대군과 단종복위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바로 복위운동의 중심에 순흥이 있었고, 그 순흥의 군관민이 금성대군의 밀사가 되어 단종이 있던 영월 청령포까지 오가던 길이 바로 고치령이기 때문이다. 고치령이 단순히 보부상들이 물류를 위해 넘던 고개를 넘어 '단종애사'의 슬픔을 간직한 한(恨)많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 한 많은 길을 오늘 다시 금성대군과 함께 걸어 보기 위함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태백산과 소백산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곳이 바로 고치령이기 때문이다. 영주사람들은 북쪽 영월에서 죽은 단종을 '태백산 신령이 되었다'라고 믿고 남쪽 순흥으로 유배되었다가 안동에서 죽은 금성대군을 '소백산 신령이 되었다'라고 믿는다. 그들 조카와 삼촌 사이에는 죽어서야 만날 수 있었던, 육신은 넘을 수 없었던 고개 고치령이 있다.

사람들은 소백과 태백 사이의 양백지간(兩白之間)에 산신각을 짓고 금성대군과 단종이 영혼이 되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다. 아담한 산신각에는 태백산 신령인 단종과 소백산 신령인 금성대군이 함께 모셔져 있다. 요즘도 영주인들은 정월 열 나흗날이면 어김없이 산신제를 지내니 그들의 넋을 달래기 위함이다. 

금성대군 신단 옆에는 순흥의 흥망과 정권의 성쇠를 지켜본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역모의 죄로 흥주도호부가 폐부가 될 것을 예견하여 문종 1년(1451년)에 고사한 이 나무는 인조 21년(1643년)에 되살아났으며, 그 기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숙종 8년(1682년)에 순흥부로 환복되었다. 이 신기한 은행나무 압각수(鴨脚樹)는 지금도 금성단을 바라보며 묵묵히 서 있다.

은행나무
▲ 압각수 은행나무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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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리안치지와 금성대군 신단을 둘러보고 나서 뒤편의 순흥향교와 이웃에 위치한 소수서원, 선비촌(http://www.sunbichon.net), 선비문화수련원(http://www.sunbi.info)을 주마간산으로 본 이후 고치령의 길목이 있는 931번 지방도를 따라 늦트재를 넘어 단산면으로 갔다. 늦트재 인근의 단산면 단곡리에는 금성대군의 신위를 모신 서낭당이 있다. 

선비촌에 있는 선비상
 선비촌에 있는 선비상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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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산면에 접어들면 영주지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많던 사과 과수원과 인삼 밭은 줄고, 포도나무가 즐비하다. 20년 전부터 포도재배를 시작하여 현재 100여 농가가 포도마을을 이루고 있는 이곳의 포도는 유기농재배에 당도가 높아 지역에서는 인기가 높다.

선비문화수련원
▲ 선비문화 선비문화수련원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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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단산포도마을(http://dansan.invil.org)에서는 매년 9월에 단산포도축제를 열고 있으며, 2년 전부터는 포도와인 '쥬네뜨'(JUNETE)를 출시해 시판하고 있다. 쥬네트는 소백산 아래 단산면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州(고을)+에네뜨(정직, 프랑스어)의 합성어로서 '단산고을에서 생산되는 정직한 와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단산포도주 쥬네트
▲ 포도주 단산포도주 쥬네트
ⓒ 햇빛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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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를 마시며 <단산면 쥬네트 와인>이라는 제목의 시를 한 편 써 보았다.

사랑하는 자는 행복하다.
사랑과 속삭이면 더욱 행복해진다.
자신에게 맞는 와인을 찾아 마음 편하게 즐기는 와인 한잔은 달콤~한 사랑을 더해준다.
와인이 있어 사랑은 곱디고운 날개를 단다.
사랑엔 눈을 감고, 와인엔 눈을 뜨세요.

포도마을과 인근 단산면 사무소를 둘러보고, 단산중학교에 올랐다. 20년 전 이곳에 근무하던 조선미 선생은 내가 "고치령을 넘을 계획"이라고 편지를 보냈더니 '염장을 지르는 군'이라는 제목의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다리 건너면 영춘인 그 곳, 마락리, 그해 89년 담임으로 걸어서 그 마을에 가정방문을 갔었어요. 봄에, 진달래가 핀 계절에, 걸어갔다 걸어오는 데, 고치령 너머, 눈 맛이 시원하고 좋았어요. 마락분교, 그 때, 거기서 그네를 탔었는데,'라고 말이다.

단산중학교
▲ 학교 단산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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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사대를 졸업한 조 선생은 자신의 고향 마을이며, 모교였던 단산중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다가 전교조 가입 건으로 그해 89년 여름 해직되어, 한참 동안 해직교사로 지내다가 결혼 직후 복직하여 예천, 경기도 안산, 수원을 거쳐 현재는 화성시에서 국어교사로 교편을 잡고 있다.

자신도 다시 가고 싶은 길인 고치령을 나 혼자 넘으니 심통이 난 듯하다. 단산중학교를 나와 전진하다 보면 단산교회가 나오는데, 교회 옆에 크게 고치령과 마락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계속 가면 단산 저수지가 나오고, 저수지 앞에서 바람을 맞으며 잠시 땀을 식힐 수 있다. 저수지를 돌아서면 고치령의 초입인 좌석교회가 나온다.

사천
▲ 사천 사천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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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부터 상좌석과 연화동으로 갈라지는 길이 있기는 하지만, 안내판과 사천 물길을  따라 계속 전진하면 고치령 길목이 나온다. 고치령 정상까지는 대략 도보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마락리의 청소년수련장까지는 넉넉잡아 3시간은 걸어야 한다.

마락리 가는 길
 마락리 가는 길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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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화장실도, 가게도, 식당도 하나 없는 고갯길이다. 물론 도보로 가는 사람이나 차를 타고 넘는 사람도 만나기 힘들다. 산은 깊고, 숲도 하늘을 가리고 있어 무섭기까지 하다. 숨이 차고 힘이 들지만, 묵묵히 앞을 향해 걷는다. 중간에 빵도 하나 먹고 물도 마셔보지만 후회가 될 정도로 힘이 든다.

고치령 길
 고치령 길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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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어렵게 고치령 정상에 올랐다. 우측 태백산 측 도로 옆에 자그만 산신각이 보이고, 도로를 가운데 두고 좌측에는 포도대장군과 단산대장군이 소백지장 장승을 모시고 있고, 우측에는 태백천장을 가운데 두고 양백대장과 항락 장승이 둘러 서 있다. 

고치령의 장승
 고치령의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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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령에서는 매년 정월에 단산면발전협의회 주관으로 지역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소 태백 양백지간 시산제'가 열리고 있다.

산신각
▲ 산신각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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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쉰 다음 하산을 한다. 길은 좌석부터는 외길에 포장과 비포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폭이 3미터 정도는 되어 걸어 다니기에는 편하다. 마락리까지 내려가는 길에는 간간히 폐가가 보이기도 하고, 독농가가 보이기도 한다.

마락리의 폐가. 이런 곳에서 한달 쯤 쉬고 싶다.
 마락리의 폐가. 이런 곳에서 한달 쯤 쉬고 싶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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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령을 넘어서 내리는 비는 단양군의 맨 우측에 위치한 의풍리로 흘러서 남한강으로 들어간다. 마락리는 경상북도에서도 몇 안 되는 한강수계다. 이웃한 부석면 남대리와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저 멀리 속리산 넘어 상주군 화북면 운흥리와 함께 경상도 땅에 한강물이 흐르는 지방이다. 능선을 따라 시도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은 때문이다.

고치령에서 한 시간 정도 내려오니 조그만 마을 마락리가 보인다. 집은 몇 채 없다. 조그만 분교가 있던 곳은 27년간 운영을 하다가 지난 1991년 졸업생 147명을 배출하고는 문을 닫고 현재 마락청소년수련장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작고 초라한 것이 그 쓰임새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빈약해 보였다.

마락 청소년 수련장
 마락 청소년 수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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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 많지 않은 산촌이지만, 그나마 있는 집도 하나같이 낡은 옛집이고 골짜기 논밭들도 많이 묵었다. 물이 많지 않아서인지 밭이 대부분이다.

마락리(馬落里)는 영남의 절해고도로 '마을 골짜기 말굽이 바위에서 순흥, 단산과 단양, 영월을 오가던 보부상 행렬의 말들이 자주 떨어져 죽었다'라고 하여 그렇게 불리고 있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 이곳은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중에 하나이다. 영주 인근에는 풍기읍 금계리, 부석면 남대리 등이 있다
▲ 의풍리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 이곳은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중에 하나이다. 영주 인근에는 풍기읍 금계리, 부석면 남대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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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를 따라 마락리 서낭당을 지나 30분 정도 북쪽을 향해 더 걸으면, 길은 마침내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로 들어서니 이곳이 바로 정감록의 십승지 중에 하나인 의풍이다. 의풍은 사방 어느 길을 가든 큰 고개를 넘어야 하는 오지 마을이다. 의풍리의 학교와 교회, 보건소 등을 잠시 둘러본 이후, 김삿갓의 무덤과 문학관이 있는 영월군 노루목까지는 북쪽으로 30분 정도를 더 걸으면 닿을 수 있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무덤이다. 강원도 영월 땅에 있다. 인근에 문학관도 있어 관광지로 좋다
▲ 김삿갓 무덤 방랑시인 김삿갓의 무덤이다. 강원도 영월 땅에 있다. 인근에 문학관도 있어 관광지로 좋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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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길은 여기에서 끝을 낸다. 단종이 있던 영월군 청령포까지 길은 더 있지만, 도로가 잘 되어 있어 도보여행에 의미가 없고, 고치령을 넘어 금성대군과 단종이 만나려했던 마음만을 받아서 고개를 도보로 무사히 답사를 한 것만으로 만족하며 여행을 끝낸다. 장정 걸음으로도 7~9시간 가깝게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가는 길은 쉽지 않지만, 역사와 함께하는 '금성대군 길'을 더듬어 보는 것은 사회 문화적으로 좋은 의미가 될 것 같아 추천한다.

영주
▲ 영주가는 길 영주
ⓒ 영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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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길안내: 서울에서 영주까지 버스로 2시간 30분 걸린다. 다시 영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순흥의 소수서원으로 가는 시내버스는 40~50분마다 있는데 30분 정도 소여 된다. 소수서원 앞에서 ‘금성대군 길’ 도보여행을 시작하여 고치령을 넘어 마락리에 닿으면 길을 돌아가는 것이 첫 번째 방법으로 영주나 풍기에서 하룻밤 정도를 유숙하고, 다음 날 영주시를 더 둘러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단양의 의풍까지 가서 지역을 둘러보고 단양으로 나가는 방법이 있고, 세 번째는 영월의 김삿갓 문학관과 묘소까지 둘러보고, 길을 연장하여 영월읍까지 가서 청령포를 보는 방법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숙박은 단양이나 영월에서 하면 된다. 길이 멀고 험하여 당일치기 여행에는 약간 무리가 있을 것 같다.



태그:#고치령, #금성대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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