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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복날의 손수레 15

    

"서점을 한 학기 동안만 할 건 아니잖아."

 

선호의 말에 효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예. 다른 방법을 선택하려구요. 한 학기 부지런히 해보고 나서 아르바이트 동생 두려구요. 돈을 빌리기는 해도 넉넉하지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르바이트를 둘 수는 없어요. 저 혼자서 먼저 서점을 꾸려나가 본 다음에 아르바이트 동생을 둬야 할 것 같아요."

 

"그 일이 쉽지 않겠구나. 도매상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해주겠지만, 이미 도착한 책을 정리하려면 책 나르고 하는 일도 더러는 해야 할 텐데…"

"예, 각오하고 있어요."

"단단히 마음먹어야 할 거다. 새책방을 겸한 헌책방이다 보니 여간 정성이 아니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말야."

 

선호는 배다리 부근에 있던 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초등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부근에 있던 꿈나무초등학교에는 특별활동 글짓기부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그 종합사회복지관에서 글짓기를 배우라고 권해주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가서 또 전철로 몇 역을 이동해야 할 만큼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선호는 늘 바쁘게 뛰어가곤 했었다. 90분 수업이라고는 해도, 강의 전에 여러 시간 강의 준비를 해야 하고, 또 강의가 끝난 뒤에도 학생들의 글을 숙독한 뒤 첨삭해 주고 평가해 주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1주일에 한 번 가르치는데 한 달 강사료가 10만원이었으니 하루에 2만 5천원 벌이인 셈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자원봉사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지만, 시간을 놓쳐서 택시라도 타게 되면 그렇게 마음이 힘들어질 수가 없었다. 그런 날은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에 들러 오래 묵은 책들을 찾아보며 마음에 안식을 찾아주곤 했다.

 

 

 

그때 느낀 것이지만, 헌책방이 과거처럼 장사가 썩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손님이 한두 명 드나드는데, 책을 사가는 손님을 발견하기도 어려웠다. 자기가 찾는 책이 없기 때문에 그냥 돌아나가기 때문이었다.

 

"배 고프지?"

"아뇨, 아직…"

"많은 여성들이 다이어트 다이어트 그러는데, 그래도 끼니는 거르지 말아야 한다. 돈이 없어 못 먹으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살아도 살 안 빠지는 사람이 있는 법이고, 또 아무리 많이 먹고 살아도 날씬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예, 저도 살 찌고 안 찌는 건 사람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한 짐 싣고 내려왔더니 이제 허기가 지는구나. 뭐 먹으러 가자. 그래, 어디로 갈까?"

 

효진은 대답 대신 볼우물이 들어가는 얼굴로 수줍게 웃었다.

방금 1만 5000원을 벌기는 했지만, 가진 돈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에 선호는 어디 좋은 음식점에 갈 처지도 못 되었다. 갈 만한 곳이라곤 김밥 전문점밖에 없었다.

 

"고개 아래쪽 모래내시장 입구로 가자."

"예."

"거기 가면 모서리에 김밥집이 있는데, 이것저것 음식을 잘 만든다. 일하는 아줌마들이 손이 빠르니까 음식도 빨리 나와."

"예."

 

두 사람은 고물상에서 나와 걸음을 옮겼다.  

 

"그 집에서는 김치찌개를 3000원에 팔고 뚝배기불고기를 4000원에 팔지. 다른 김밥집보다도 500원은 싸게 팔더라. 양이 적지도 않고 반찬이 크게 떨어지지도 않는데 말야. 불고기 좋아하면 뚝배기불고기 먹자. 그래도 든든하게 먹는 게 좋지."

"뚝배기불고기요?"

"그래."

 

"정말 싸네요. 한 4500원 하면 조금 싸구나 할 텐데 4000원이라니까 너무 싼 것 같아요."

"박리다매겠지. 김밥도 두툼한데 그거 1000원 받아갖곤 남는 것도 없을 것 같더라."

"편의점에서 파는 조그만 삼각김밥이 700원이니까 정말 남는 게 없을 것 같아요."

"김밥 속에 들어가는 재료비가 이것저것 많이 들지. 그 집에선 시금치 대신에 오이를 넣어주는데 내 입맛엔 그게 더 맞는 것 같아."

 

"그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을까요?"

"물어보니까 그것도 박리다매라고 하더라. 많이 사 가거나 사 먹으니까 좀 남는 장사래."

"그런 식당을 분식집이라고 부르는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분식은 거기서 파는 음식의 일부분일 뿐인데요."

 

"그래. '분식(粉食)'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란 뜻이 맞지. 과거에는 라면, 빵 등이 분식에 해당되었는데, 요즘에는 분식점 등에서 파는 값싼 음식을 말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지. 김밥, 떡볶이, 라볶이, 라면, 순대, 어묵탕, 튀김 같은 걸 분식이라고 부르는 식이 되어 버렸지."

"그럼 잘못 쓰이고 있는 거잖아요."

 

"글쎄 말이다. 잘못된 말을 쓰는 사람들이 이긴 격이 되었지."

"과거에 분식을 장려하던 시절이 있었다면서요? 속이 쓰릴 때 약국 가면 밀가루 음식 먹지 말라고 하던데요."     

 

"우리나라에서 쌀이 부족하던 1960년대에는 정부에서 분식을 장려하기도 했지. 언제 백과사전에서 본 기억대로라면, 분식점의 효시는 1961년 동성로에서 문을 연 미성당이고, 뒤이어 1963년 같은 상호의 미성당이 남산초등학교 맞은편에 나타났다고 하더라. 이 두 미성당이 마침내 지역의 분식 문화 전파자가 되었다고 하지."

"예."

 

[계속]

 

덧붙이는 글 | 2004년 말에 초고를 써놓고 PC 안에 묻어두었던 소설입니다만,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그 시절의 세상 이야기와 최근의 달라진 세상 모습을 고려하여 많은 부분 보충하고 개작해 가며 연재한 뒤에 출간하려고 합니다. 선호의 눈을 통해, 가난하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질 것입니다. 이 소설은 실화 자체가 아니라, 소중한 우리 삶의 여러 실화를 모델로 한 서사성 있는 창작입니다.


태그:#모래마을, #모래내시장, #헌책방, #배다리, #분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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