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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친구가 칡이 먹고 싶다고 칡 캐러 가자고 살살 꼬드긴다.

"요즘 칡은 알배서, 속이 꽉 차,  달고, 맛있다."
"칡 캐다 뭐하게?'
"칡 캐서 술 담그거나 말려서 칡차로 마시면 얼마나 좋은데, 그리고 애들도 먹이고….'
"애들, 하기야 봄 칡이 좋기야 하지…. 그런데 땅은 다 녹았을까? 녹았다 해도 꽤 힘들 텐데….?"

친구의 달콤한 유혹에 결국 '돌아오는 일요일에 가자!'고 술김에 약속을 했고, 제 정신을 찾은 그 다음날부터 친구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 휴대폰 전화벨이 울려 발신자를 보니 친구다.

"내일 칡 캐러 가는 거 알지, 10시까지 조그만 톱 하나 준비해서 집 앞으로 나와라"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친구와의 약속을 잊고 있던 터라 일요일은 다른 약속을 잡아놓고 있었는데……. 일방적인 약속도 아니고 동의하에 한 약속이라 꼼짝없이 칡 캐러 가게 되었다.

다음날 오전 10시 친구의 확인 전화가 왔다. "갈 준비 되었지? 빨리 우리 집으로 와~" 그렇게 우리는 칡을 캐기 위해 출발을 했다.

우리가 칡을 캐기 위해 간 곳은 측도라는 섬이다. 친구는 측도가 칡이 많아 칡도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농담 삼아 말했다.

영흥면 선재리에 속한 측도 이름은 ‘가까운 곳에 있다’란 뜻이 담겨져 있다.
측도는 간조 시에는 570여 미터 정도 길이의 모래와 자갈로된 길이 선재도와 연결되어 보도나 차량 등으로 왕래할 수 있으며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이 섬 이름의 유래는 주변에 물이 맑아 고기가 노는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으며 바다 밑을 그대로 들여다보면서 측량할 수 있다고 하여 '측도'라 했다고 한다.
▲ 측도 영흥면 선재리에 속한 측도 이름은 ‘가까운 곳에 있다’란 뜻이 담겨져 있다. 측도는 간조 시에는 570여 미터 정도 길이의 모래와 자갈로된 길이 선재도와 연결되어 보도나 차량 등으로 왕래할 수 있으며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이 섬 이름의 유래는 주변에 물이 맑아 고기가 노는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으며 바다 밑을 그대로 들여다보면서 측량할 수 있다고 하여 '측도'라 했다고 한다.
ⓒ 김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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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빠진 모랫길을 달려 측도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펴보던 친구가 측도로 칡 캐러 와 본 지가 7~8년 정도 되었는데, 그 사이 외지 사람들이 섬의 토지를 사들여 산을 허물고, 건물을 짓고, 새 길을 내어 칡 있는 곳으로 가는 산길이 가물가물하다고 했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몇 번 왔던 기억이 있지만 칡이 있는 정확한 위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군것질 거리가 넉넉하지 않았던 섬마을 동네 아이들은 구멍가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력으로 입안의 빈곤함을 달래기 위해 솥단지 하나 들고 갯벌로 가서 고동을 잡아 삶아먹고, 해안가 산 아래 비탈진 곳에 빨갛게 익은 뽀루수열매를 따먹으면서 심심한 입안을 달래곤 했다.

특히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는 봄이 오면 동네 아이들과 함께 봄 햇빛이 잘 드는 산비탈에서 자라는 큼직한 칡을 캐 잘게 토막 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껌처럼 질겅거리며 씹다가 단맛이 빠지면 버리고 또 한 입 가득 물고 단물을 빨아먹어 입안이 칡 향기로 가득했던 행복한 추억이 있다.

친구와 옛 기억을 떠올리며 길이 없어진 산 속을 30여 분 헤매다 어린 시절 칡을 캐던 장소를 찾아냈지만, 외지 사람들이 펜션을 짓는 바람에 산의 일부가 깎여나가고, 일부는 밭으로 일구어져 있었다.

칡이 많이 자라던 장소가 밭으로 변했고, 펜션에 놀러온 가족들이 봄나물을 뜯고 있다.
▲ 봄나물 칡이 많이 자라던 장소가 밭으로 변했고, 펜션에 놀러온 가족들이 봄나물을 뜯고 있다.
ⓒ 김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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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편의와 이기 때문에 아름다웠던 섬의 모습이 변해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숨통 막히는 도심을 벗어나 행복한 웃음소리를 내며 봄나물을 뜯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달랬다.

그들을 지나쳐 비탈진 산을 내려가던 친구가 "찾았다"고 소리친다. 마치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칡넝쿨 사이로 겨우내 떨어지지 않았던 칡 열매가 매달려 있다.
▲ 칡 열매 칡넝쿨 사이로 겨우내 떨어지지 않았던 칡 열매가 매달려 있다.
ⓒ 김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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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바른 산비탈에 칡넝쿨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어 사람이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자라 있었다. 낫으로 그곳을 정리하고 그 중 가장 큰 넝쿨을 잡아 우리는 땅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칡뿌리를 캐기 시작했다.

딱 걸렸어! 굵기가 크니 칡도 크겠지...
▲ 칡줄기 딱 걸렸어! 굵기가 크니 칡도 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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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잘 드는 양지라 땅은 잘 파졌다. 친구는 "야! 이 정도면 누워서 떡 먹기다~ 칡넝쿨이 내 팔목만하니까 칡도 상당히 굵을 거야…" 굵은 칡이 나올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열심히 땅을 파헤치자 진한 흙 내음이 코끝을 찌른다.

기름진 흙, 오염되지 않은 흙 속에서 자라는 칡이 얼마나 클까? 기대에 잔뜩 부풀어 칡뿌리가 모습을 나타내기를 기다렸다.

칡과 한 판 승부를 벌리고 있는 친구... ‘그 넘 참 실하네....??’ 만족해 한다.
▲ 칡 칡과 한 판 승부를 벌리고 있는 친구... ‘그 넘 참 실하네....??’ 만족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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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드러낸 칡, 두 갈래로 나뉘어져있다.
▲ 칡 모습을 드러낸 칡, 두 갈래로 나뉘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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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얼어 있던 흙이 잘 파여 손쉽게 칡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을까? 문제가 생겼다. 호미 한 번 찍을 때마다 호미가 흙 속에 박혀 잘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칡뿌리 주변 나무들의 잔뿌리가 칡을 둘러싸고 사방으로 뻗어 있었기 때문에 호미가 뿌리에 걸려 빠지지 않은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힘껏 호미를 내려찍으면 땅 속에서 '깡'하고 소리가 난다. 돌 때문이다. 잔뿌리를 낫으로 끊기도 하고, 호미를 이용해 끊어가며, 돌을 골라내며 땅을 파던 친구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이거 한 뿌리만 캐서 집에 가자……. 힘들어 죽겠다!" 흙을  헤치던 친구가 호미를 던지며 하는 말이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점퍼까지 벗어 던지고, 땀 번벅이가 된 얼굴을 장갑으로 닦아 내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좀 쉬어 기왕 맘먹고 왔는데 한 뿌리 가지고 되겠어!" 내던진 호미를 주워 땅을 팠다. 그러나 호미질 몇 번에 '헉헉~' 거친 숨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냥 집에서 쉴 걸…….'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붉은 흙 속에 묻혀 있는 굵은 칡뿌리를 보면서 다시 힘을 내서 파내려 갔고, 몇 번을 친구와 호미를 주고받으며 칡을 캤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어 준다.
▲ 산비탈에서 바라본 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어 준다.
ⓒ 김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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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가까이 네 뿌리의 칡을 캤다. 얼굴은 땀으로 세수를 한 듯 물기가 흥건하고, 갈증이 났다. "이젠 더 이상 못 캐겠다. 하늘이 노랗고, 현기증까지 난다. 오늘은 그만 하자!" 친구와 함께 쓰러지듯 자리에 앉아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바다를 한 동안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시원해 먹어봐"하며 칡을 잘라 건네주었다. 흙이 묻어 있는 칡을 이빨을 이용해 껍질을 벗기자 투명한 칡즙과 작은 알맹이 같은 것이 먹음직스럽게 드러났다. 입안 가득 칡을 물고 씹으니 진한 칡 향이 입안에 퍼지고, 시원한 칡즙은 식도를 따라 내려가면서 타는 목마름을 잊게 해주었다. "그래, 이 맛이야!"

땀방울의 결실, 힘은 들었지만 기분은 최고입니다.
▲ 칡 만세! 땀방울의 결실, 힘은 들었지만 기분은 최고입니다.
ⓒ 김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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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칡의 가운데 부분은 풍부한 수분과 함께 동글동글한 흰 알맹이(녹말 또는 갈분)가 눈에 보인다. 다른 부분은 씹다가 칡 액만 빨아먹고 버리는 데 비해 그 부분은 씹다가 삼켜도 될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했다.

칡의 환상적인 맛에 매료되어 허겁지겁 흙이 묻은 칡을 제대로 씻지도 않고 먹느라 입 주위가 온통 붉은 흙으로 번벅이 된 것도 몰랐다. 갈증이 멎고, 배가 부른 후에야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우리는 한참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때 우리의 기분처럼 봄 햇볕이 무척이나 따스했다.

비록 굵고, 큰 칡을 많이 캐지는 못했지만 봄철에 캐는 칡이 몸에도 좋고, 그 효능도 좋아 봄철 가족들 보양식으로 최고의 식물이자 식품이라고 생각해 고생길 마다하고 동행한 길이었기에 몇 뿌리 되지 않는 칡을 자루에 담아 어깨에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봄철의 칡과 효능에 대하여 정리해봤다.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봄 햇빛이 여과 없이 들어오는 해안가 산비탈 흙속에서 자란 칡은 오염되지 않은 토양의 수분을 흡수해 칡뿌리에 저장을 해두었다가 봄이면 새싹이 나면서 뿌리에 있던 수분과 영양분이 줄기와 꽃으로 나가기 때문에 제철을 놓고 여러 의견이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금이 칡을 먹기에 제일 좋은 시기라 생각한다. 그리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면 수분이 부족한 칡은 단맛이 나기보다는 쓴맛이 많이 난다.

칡이 지니고 있는 효능을 보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어 고혈압, 동맥경화, 고지혈증, 협심증 등에 좋으며 두통을 완화시켜주고 피로회복에도 좋다고 하고, 숙취해소뿐 아니라 갈증해소 및 소화불량, 변비, 설사나 해열에도 좋고, 술을 자주 드시는 분은 칡즙을 꾸준히 복용하면 음주량을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또한 칡은 조기감기에 효과가 있으며, 위장과 간장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중금속을 내포한 황사가 심한 봄철, 칡즙을 마시면 체내에 있는 중금속을 배출시켜준다.

칡에는 식물성 에스트로겐 함량이 대두보다 10배 석류보다는 625배 이상 많아 갱년기 여성분들의 폐경을 지연시켜주어 골다공증예방에 효과적이라고 하며, 또한 어린아이의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주고 탄수화물, 무기질, 비타민C 등 각종 영양소를 다량 함유한 알칼리성식품에 속하며, 아토피나 여드름 등 피부미용에도 좋고 당뇨병이 있는 분들은 칡즙을 꾸준히 복용하면 혈당이 조절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칡은 우리나라의 산과 들 어디에서나 자생하고 있다. 때로는 칡이 무성하게 자라 숲의 햇빛을 차단하여 다른 식물과 어린 나무들이 자랄 수 없도록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칡은 공해에 찌들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토양의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하면서 자라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품고 있다. 그래서 칡은 "흙속의 진주"이자 웬만한 보약, 산삼보다도 낫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봄철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의미에서 칡차, 칡즙 등 칡을 이용한 식품을 선물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U뉴스와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측도, #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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