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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여성들도 모르는 여성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 내 날개옷은 어디 갔자? 이 책에는 여성들도 모르는 여성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 철수와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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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날개옷과  잃어버린 세월

여성의 사회진출과 출산율이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정말 단순하게 여성의 사회진출이 출산이나 양육의 걸림돌이 되는 것일까?

진실은 여성의 사회진출 문제가 아니라 여성에게 울트라 슈퍼우먼이 되라고 강요하는 사회가 문제다. 남성중심 사회 속 조직과 구조는 모든 것이 남성편이 위주로 되어 있다. 유사시 퇴직 순위, 출산에 의한 경력 단절, 양육의 압박 등 녀남이 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으므로 일어나는 모든 불이익과 부당함은 자연스럽게 기혼여성들 몫이 된다.

결혼한 여성들은 똑같이 바깥에서 일을 하고 들어와서도  남편을 위해 가정을 즐겁고 안락한 쉼터로 만들기 위해 청소를 해야 하고, 남편의 밥상을 차리주고 마주 앉아 미소라는 서비스를 덤으로 얹어줘야 한다.

<내 날개옷은 어디 갔지?>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여자 이야기'라는 긴 부제가 달려 있다. 일하는 여성 안미선씨는 결혼 후 출산과 양육, 가사 노동에 얽매여 살아가며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심리적 갈등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이 책이 나온 후 저자는 다시는 책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노라고 고백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주부들 역시 자신의 구질구질한 일상을 거울을 보듯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할지 모른다.

결혼과 동시에 모든 여성들은 살림하랴 애 낳으랴 자동무수리로 전락하는 반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손끝 하나 까닥하지 않는 양반으로 신분의 상승 변화를 경험한다.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가 무수리로 동동거리며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매양 부대끼며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남성들은 변함없이 사회와 유대 관계를 통해 자기 발전의 길을 씩씩하게 걸어간다. 이쯤 되면 여성들의 잃어버린 날개옷에 대한 그리움은 단순한 향수의 수위를 넘어 절박한 울부짖음이 될 것이다.

'집은 쉼이다'면서 남자가 느긋하게 깍지를 끼고 누워 있는 광고도 있지만 주부에게 그것은 그림의 개떡 같은 소리다. 집은 일터다. 집 밖에 나가야 한숨 돌릴까 집은 곳곳이 치워 달라고 손봐 달라고 소리 없이 외쳐 댄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해도 해도 제자리고, 해도 표 안 나고 안 하면 금방 욕먹는데다, 쎄 빠지게 해도 '집에서 논다'하고 남들이 싸잡아 낮춰 보는 요상스런 일이란 것이다.

칭얼대는 아기를 얼러 재우고, 그 짬에 밥을 국에 말아 바닥에 놓고 후루룩 먹었다. 아기 보면서 끼니 챙겨 먹는 것도 큰일이다. 꽃 놓고 수놓고 할 겨를이 없어 그냥 감자나 무 같은 것에 국간장만 넣고 끓여 종일 밥을 말아 먹는다. 허겁지겁 먹는데 아기가 울 때는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화가 불끈 치민다. 내가 죄인도 아닌데, 밥 먹고 화장실 가고 목욕하는 기본인 것도 맘 놓고 못 하고 조마조마하니까. 남편이 느긋하게 샤워하는 물소리가 부러울 때도 있다. 아기가 태어나자 내 시간이 사라졌다. 잠깐 나가려 해도, 천천히 밥술이라도 뜨려 해도 아기를 다른 이에게 부탁하거나 남들 편의에 따라야 한다.

"내 날개옷은 어디 갔지?" 아기 키우는 내 친구는 미장원에 가려고 몇 달을 벼르다 겨우 남편이 아기를 봐주어 집 밖에 나오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단다. "어떻게 다들 그렇게 사나 몰라." 애 키우고 살림하고 남편 눈치 보고 할 일은 다 하면서 자기 한 시간 얻기가 구차한 주부. 나무꾼이 숨겨 둔 날개옷을 찾는다면 집을 박차고 다시 훨훨 날아가고 싶지 않을까.

저 글을 읽으며 많은 기혼 여성들이 잃어버린 날개옷과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향수로 눈물샘이 열릴 것이다. 나 역시 제왕절개 수술 후 아무도 없는 빈 병실에서 화장실을  못가 눈이 퉁퉁 붓도록 울던 기억. 문화적 갈증을 채우려 겨우 한 달 된 아이를 데리고 가 아이가 잠에서 깰까 엉덩이를 토닥이며 4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던 기억. 누구 엄마라는 무명의 여인에서 내 이름 석자를 되찾기까지 10년이라는 긴 긴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자유롭게 창공을 날 듯 왜  결혼한 여성이라고 해서 남들처럼 '일'과 '삶'이라는 평행의 날개를 펼치고 인생이란 긴 항로를  멋지게 비행하고 싶은 욕망이 없을 것인가.

이 책이 여성들에게는 날개옷을 되찾기 위한 희망으로 자신을 곧추세우는 기회를, 남성들에게는 날개옷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여성들의 절박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내 날개옷은 어디 갔지?>는 안미선이 글을 짓고 장차 현실이 삽화를 그려 철수와 영희 출판사에서 출판했습니다.



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 -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여자 이야기

안미선 지음, 장차현실 그림, 철수와영희(2009)


태그:#날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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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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