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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법부는 강풍에 휩싸여 있다.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원장 당시 '촛불재판'을 담당하던 형사단독판사들에게 재판진행을 '독촉'하는 이메일을 수차례 보낸 것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압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놓고 '자진사퇴'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신영철 대법관과 이용훈 대법원장은 '압력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특히 이 대법원장은 "판사들이 그 정도로 압박을 받았다고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압력이라고 느낀 판사가 있다면 그 판사는 판사 자격이 없다는 논리로 해석된다.

 

이번 파문의 핵심을 정확히 진단하려면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는 간단하다. 사법 수뇌부들처럼 말하는 자가 듣는 자의 입장을 헤아리는 게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 인사권자와 그 대상의 관계 즉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지'에 주목해 바라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번 파동이 '압력'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는 재미있는 소재가 있어 소개한다. 하나는 TV광고다. 또 하나는 이번 사건과 유사한 법원에서 일어난 일인데 지난 2006년 4월 사법부를 강타했던 판사가 법원직원들을 '감금'했다는 논란이다.

 

사장의 "김 부장 입사한 지 몇 년 됐지"에 김 부장은 벌벌

 

 

먼저 TV광고를 소개한다. H보험사가 내보내는 TV광고를 보면 한 사무실에 두 남자가 나온다.

 

사장의 집무실처럼 보이는 이곳에 중년의 한 신사는 셔츠 차림의 편안한 복장으로 화초를 다듬고 있고, 한 사람은 정장 차림으로 반듯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다.

 

사장과 부하직원임을 쉽게 연상케 한다. 그런데 사장처럼 보이는 중년의 신사가, 커피를 마시던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김 부장 입사한 지 몇 년 됐지?"

 

그러자 커피를 마시던 남자의 표정은 곧 심각하게 굳어지며 몸도 움츠려든다. 이어 손에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떨어뜨리는 장면과 함께 재미있는 문구가 흘러나온다. 김 부장의 머릿속 생각이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45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올게 왔구나. 고작 마흔 다섯인데"

"애들 학원비" "대출이자" "어머니 병원비" "애들 대학도"

그러더니 "여보 미안해"라고 말한다.

 

이 광고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차치하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이 장면을 연출한 것일까' 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요즘 40~50대 직장인들이 소위 '회사에서 언제 짤릴지 모른다'는 명퇴에 대한 심적인 부담을 항상 갖고 있어 '노심초사'하는 것을 이용한 발상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직장인들이라면 대부분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사장은 그저 "김 부장 입사한 지 몇 년 됐지"라고 말한 것뿐이다. 하지만 김 부장의 머릿속에는 무려 45가지 생각이 떠오른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 인사권자인 사장의 말 한 마디는 부하직원에게는 이렇게 엄청난 심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재판'을 담당하던 형사단독판사들에게 이메일로 사실상 재판을 독려한 것에 대해 사법부에서 '압력'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 사법부 수뇌부들의 시각은 보통 사람들과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신 대법관은 "법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압력이라고 하면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더욱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이 대법원장은 6일 출근길에서 기자들에게 "판사들이 그 정도로 압박을 받았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또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그거 가지고 판사가 압박받았다고 하면 되겠느냐" "그런 정도의 판사들이어서 되겠어?"라고 압력이 아니었음을 강력히 피력한다.

 

이 대법원장의 말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압력이라고 느낄 정도의 판사라면 판사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MB정권에 맞서 촛불시위를 하다 기소된 피고인들의 재판을 담당하던 형사단독판사들에게 법원장이 수차례 메일을 통해 재판진행을 재촉했다면 '과연 압박으로 느끼지 않는 게 정상일까'하는 의문이 든다.

 

더욱이 법원장은 소속 법관들의 근무평정을 하는 인사평정권자이고, 특히 당시 신영철 법원장은 대법관으로 유력하게 물망에 올라 있던 시기였기에 '압력'내지 '압박'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일선 판사들은 사법부 수뇌부 시각과 달라

 

 

그런데 이 같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시각과는 달리 일반 법관들의 시각에는 온도차가 나고 있음을 사법부 수뇌부는 인식해야 한다.

 

울산지법 송승용 판사는 지난 2일 법원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은 바로 법관의 계층적인 서열구조와 승진제도, 그리고 이로 인해 비롯된 법관의 관료화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 "형사수석부장판사가 동등한 동료법관에 불과하다면 단지 선배 법관의 조언에 불과한 것이지만, 형사수석부장판사가 법관에 대해 평가하거나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압력이 되는 것"이라고 꼬집은 부분은 주목할 대목이다.

 

형사수석부장판사에 대한 부담이 이정도 일진데, 대법관이 유력한 실세 법원장이 몇 차례에 걸쳐 직접 지시를 내렸다면 과연 '압력'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회사 사장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부하직원은 상상하기 힘들 것인데, 특히 서열구조와 승진제도가 엄격한 법관구조에서 대법원장의 의중까지 거론하며 내리는 법원장의 지시는 엄청난 무게가 실린 메시지임이 분명하다.

 

서울남부지법 김영식 판사도 3일 법원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법관) 근무평정 등의 사법관료화가 바로 오늘날 사법행정작용이 개개 재판에 간여할 수 있게 만든 근거가 된 것"이라며 "법관이 외부의 압력에 의해 재판을 했다면, 그것은 아무리 사소한 재판이라 하더라도, 재판 자체가 무효"라고 강조한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판사가 "서울중앙지법 파문을 간단히 넘길 수 없다. 동료법관들마저도 법원행정처의 진상조사를 신뢰하지 않는 듯하다"라고 말한 부분은, 일반 법관들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것으로 심각하게 문제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돼 의미심장하다.

 

특히 서울서부지법 정영진 부장판사는 6일 법원내부게시판에 "사법권 독립은 누구보다도 법관들 스스로 지키는 것인 만큼 법관들이 침묵으로만 일관할 수는 없다"며 "법관은 '판사회의' 구성원으로 사법행정에 관해서도 의견표명을 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법관들이 목소리를 낼 것을 촉구한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특히 강조돼야 할 점은 서울중앙지법 소속 법관 근무평정권자이던 신영철 대법관이 법관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을 거론하면서 판사들의 형사재판에 개입하고자 했음에도 다수의 판사들이 이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소신을 지켰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분명 정 부장판사는 '압력'으로 판단한 것이다.

 

2006년 4월 판사가 직원 '감금' 논란 판박이

 

 

또 하나 사건을 소개한다. 지난 2006년 4월 법원에서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할 판사가 법원공무원 3명을 감금(?)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

 

서울남부지법 A(47,여)판사는 4월14일 야간 당직을 맡아 영장을 발부하면서 본인의 착오로 검사가 신청한 구금장소를 잘못 기재한 것이 발단이 됐다. 검찰이 다음날 구금장소를 정정해 다시 발부해 줄 것을 요청하자 A판사는 14일 야간당직자와 15일(토) 일직당직자 등 3명을 판사실로 불러 책임을 추궁하며 반성 차원에서 사실확인서를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잘못이 없었던 법원직원들이 거부하자, A판사는 판사실에서 나가지 못하게 해 법원직원들은 점심도 못 먹고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결국 A판사의 요구대로 사실확인서를 쓰자 A판사는 이들에게 나가라고 했다. 법원직원들이 판사실에 갇혀 있었던 시간은 무려 7시 30분간이었다.

 

이 사건은 법원공무원들을 들끓게 했다. 법원공무원들은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할 판사가 법원 내에서 법원직원들을 불법감금하고 인권을 유린했다"고 주장하며 "A판사를 엄정히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감금'이 논란이 됐다. 법원공무원들은 '감금'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법원행정처는 감금이 아니라고 맞섰다. 이번 '압력' 논란과 유사한 사건이었다. 정말 판박이다.

 

당시 서울남부지법 고위관계자들은 취재에 나선 기자에게 "이런 불미스런 일이 생겨 참 안타깝다"고 말하며, 또한 법원공무원들이 밝힌 진상조사결과에 대해서도 '감금'이라는 표현을 제외하고는 7시간 30분 동안 판사실에서 나오지 못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서울남부지법 송봉준 공보관은 "법원노조는 감금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여성 판사 혼자서 남성 직원 등을 감금할 수 있겠느냐"고 감금을 부인했다.

 

대법원 변현철 공보관도 기자에게 "감금은 위력 등이 있어야 하는데 여성 판사가 3명을 감금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다만, A판사가 사실관계를 계속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렇게 주장한 것 같다"고 감금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법원공무원들은 입장은 전혀 달랐다. 법원공무원들은 업무에 있어 판사면 모두가 똑같은 판사지 여성판사와 남성판사가 따로 있을 수 없고, 판사가 나가지 말라고 하는데 어떤 법원직원이 그 말을 거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이는 판사의 지위에 따른 당연한 '위력'이기에 법원직원 3명이 화장실도 못가고 점심도 굶으며 7시간30분이나 감금돼 있었던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취재 당시 판사실에서 나오지 못했던 한 남자직원은 "위력이라는 부분은 상대적인 개념이어서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지만, 판사라서..."라고 말했었다. 판사의 입장에서 보면 위력이 아닐지 모르지만, 판사의 지시를 받았던 직원 입장에서는 충분히 위력이라는 말로 해석된다. 그러기에 판사실에서 나오진 못한 것.

 

당시 판사실에 함께 있었던 한 여성 직원은 당시 사건이 확대된 것에 놀란 듯 눈시울이 붉어지며 연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간혹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는데 심한 스트레스로 신경이 예민한 상태라고 동료 직원들이 전했었다.

 

당시 법원노조 곽승주 위원장은 "법원에서 재판을 하는 법관이 법원조직원을 지시의 대상으로 보고, 7시간이나 감금한 것은 통탄할 일"이라며 "국민을 섬기겠다는 대법원장이 법원직원조차 챙기지 못하고 있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공무원들은 처음에는 A판사의 진솔한 사과와 법원행정처에게 처벌을 주장했으나, 사건의 확대를 원하지 않던 법원행정처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건은 일파만파 확대됐다.

 

이로 인해 사법사상 최초로 대법원청사에서 법원공무원들이 대법원장 규탄대회를 개최한데 이어 서울법원종합청사 중앙로비에서 삭발식을 거행했고, 급기야 서울중앙지법에서 촛불시위로 이어지며 사법부는 일대 회오리에 휘말렸었다.

 

나중에 진화에 나선 대법원은 2006년 5월16일 전국 법원장과 사무국장들은 대법원에서 긴급 연석회의를 갖고, 서울남부지법에서 발생한 A판사가 법원직원을 감금했다는 논란에 대해 법원행정처의 진솔한 유감표명이 있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사과를 표명해야 했다.

 

이 사건은 뒤늦게 A판사가 법원내부게시판에 사건의 진위와 사과를 담은 글을 올리고, 법원행정처가 미온적이나마 문책성 전보인사를 단행했었다.

 

각계 반응... 자진사퇴 촉구는 물론 탄핵 목소리

 

그렇다면 외부의 반응은 어떨까.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목소리는 신영철 대법관의 행동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자진사퇴 촉구는 물론 '탄핵' 목소리도 쏟아졌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5일 성명을 통해 신영철 대법관의 행동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법원장이 재판에 간섭하고 진행을 강요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법원장이 나서 유죄선고를 독촉한 것이고, 이는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며 "법원장 이전에 법관으로서의 최소한의 자격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법원장이 촛불재판을 맡고 있는 법관들에게 '재판을 진행하라'며 압력을 행사하는 메일을 보낸 것은 담당 법관들에게 사실상 유죄 선고를 독촉한 것과 같다"며 "국회는 헌법에 따라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발의해야 한다"고 탄핵을 촉구했다.

 

민주당도 논평을 통해 "법원장이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개입한 것은 법관독립을 스스로 훼손하는 '사법자해행위'로 사법부의 존재이유인 법관의 독립을 스스로 파괴하는 법관은 법관자격이 없다"며 "신 대법관은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도 논평을 통해 "법관의 독립을 명백하게 위협하고 침해한 중대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신 대법관이 대법관직에서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국회에서 탄핵을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성명을 통해 "신 대법관이 촛불집회 관련 담당판사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촛불집회 참가자에게 유죄판결을 하라는 내용에 다름 아니고, 소신에 따라 재판하려는 법관에 대한 명백한 압력행사"라고 주장했다. 

 

특히 "신 대법관의 행위는 법관의 양심을 짓밟은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마저 유린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랐다.

 

대법관 출신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6일 '당 5역 회의'에서 "재판 진행에 관해 사법 감독관인 법원장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역임한 박재승 변호사는 6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건 명백히 재판에 대한 간섭이고 압력으로, 법원장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유신시절의 형사법원장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심지어 법원가족인 법원공무원들조차도 등을 돌린 상태다.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은 5일 대법원 정문 앞에서 신영철 대법관 사퇴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신영철 대법관이 당시 법원장으로서 판사들에게 보낸 대내외비 서신을 통해 압력 의혹이 사실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 참으로 침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한탄하며, "이번 사법파동의 중심에 있는 신영철 대법관은 가려지지 않는 책임을 손바닥으로 가리려 하지 말고 즉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대법원이 이번 신영철 대법관 파동에 대해 다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압력' 논란도 과거 법원에서 겪었던 '감금' 논란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말하는 자' 입장이 아닌 '듣는 자' 입장에서 판단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로이슈, #신영철, #이용훈, #법원노조, #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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