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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은 3월 3일, 사립 일반계고교의 자율형사립고 추진과 관련한 공청회를 3월 9일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개최하니 학교당 3인 내외(이사장, 교장, 교감, 교무부장)와 자율형사립고에 관심 있는 사람의 참석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이날 공청회는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하고 용역을 맡은 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서울교육청으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은 한국교육개발원이 주제 발표를 하고, 이에 대해서 지정토론자들이 10분간의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원래 공청회(公聽會)는 중요한 정책 결정을 앞두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자율형사립고 공청회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자리라기에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먼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정토론자로 섭외된 사람들의 구성이다. 국민 세금으로 진행되는 이 공청회에 발제자 또는 토론자로 나서는 사람들은 비슷한 성향이다. 발제와 지정토론자로 나서는 9명 중에서 자율형사립고를 반대하거나 그에 비판적인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모두 자율형사립고에 대해 찬성을 넘어 적극 지지하는 사람뿐이다. 의견이 똑같은 사람들을 뭐하러 굳이 9명이나 섭외를 해서 토론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자율형사립고 찬성론자만 모인 토론회

 

'서울시 자율형 사립고교 운영 및 지정 방안 탐색'라는 제목으로 기조 발제를 맡은 김흥주(한국교육개발원 교육행정연구실장)씨는 자율형 사립고 설립을 반대할 가능성이 없다.

 

그럼 지정토론자로 나오는 사람은 어떨까? 토론자들 8명은 자율형사립고 신청 학교 이사장과 교장, 유치를 추진하는 구청장과 교육위원, 이를 찬성하는 보수적 교원단체, 학부모단체 인사들이다.

 

첫 번째 토론자인 강홍준 <중앙일보> 기자는 기사를 통해 기존 자립형사립고 뿐 아니라 이른바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자율형사립고, 기숙형공립고, 마이스터고 등 이른바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터를 충실히 보도했다.

 

두 번째 토론자 김순종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 부의장 역시 특목고 확대, 학교 선택제 확대를 찬성하고 있으며, 자율형사립고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다음 토론자인 서울특별시 사립초중고등학교 법인협의회 회장 김승제씨는 현재 국암학원의 이사장이며 이 재단이 운영하는 강남구 은광여고는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에 자율형사립고를 설립하겠다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자율형사립고에 대한 김 이사장의 의견은 따로 물어볼 필요가 없어 보인다. 다만, 1구 1자율형사립고를 표방하고 있는 서울교육청 방침상 같은 강남구의 숙명여고, 은광여고, 중대부고, 중동고, 중산고, 현대고, 휘문고 등의 학교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 1구 1자율형사립고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재고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대웅 서울특별시 구청장협의회 회장은 현재 한나라당 소속의 구로구청장이다. 자율형사립고 정책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핵심 교육정책이고 구로구청장으로서 공약 역시 국제고 유치, 특목고 설립 등이다. 자율형사립고를 전혀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인사다. 열악한 구로구의 교육 여건을 이유로 들며 낙후 지역에 자율형사립고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토론자로 지정되어 있는 윤남훈 서울시 사립중고등학교장협의회 회장은 현재 도봉구에 소재한 삼산학원 소속 정의여고의 교장이다. 이 학교 역시 자율형 사립고 유치를 희망하는 학교다.  2007년과 2008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과 민주당 안민석 의원실의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이 학교는 '법인의 재정기여도'(=법인 재정 자립도 : 학교 총예산 대비 재단전입금 비율)가 2006년 0.84%이고 2007년에는 0.76%밖에 안 된다. 그리고, 학생등록금 총액 대비 재단전입금 비율이 자율형사립고 신청을 위한 최소 자격 기준인 5%의 절반밖에 안 되는 2%대이다. 한마디로 이 학교는 재정 건전성이 좋지 못한 부실 사학이다. 이 학교가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한 것으로 보아, 자율형사립고 지정 조건을 낮추어 달라는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 토론자인 윤정일씨는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이다. 이 민족사관고등학교는 강원도 횡성에 있는 자립형사립고 시범 학교이다. 자립형사립고는 현재 전국에서 민족사관고, 전북상산고, 부산해운대고 등 6개가 시범 운영 중이며 서울에 은평하나고가 설립을 준비 중이다. 자립형사립고인 민족사관고 연간 학비가 2000만원으로 귀족학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이명균 정책연구실장과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최미숙 상임대표가 지정토론자로 나선다. 이 두 단체 역시 이명박 정부의 학교 다양화 정책을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보아, 자율형사립고 설립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의견을 이야기할 가능성은 적다.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는 자율형사립고 밀어붙이는 공정택 교육감

 

지난 2월 24일에 발표된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MB의 교육정책 지지율이 19%밖에 되지 않으며, 특히 자율형사립고에 대해서는 73.4%의 국민이 압도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인데 설립 여부와 대안 등에 대해서는 단 한 번의 공청회도 없이 자율형 사립고 설립을 기정 사실화하고 설립 기준에 대한 공청회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것도 국민 여론과 완전히 반대로 자율형사립고에 찬성하는 토론자만으로 국민 공청회를 여는 것은 큰 문제다.

 

외국어 영재 육성이라는 특별한 목적에 따라 설립, 운영되고 있는 29개의 외국어고만으로도 우리 공교육이 심각하게 영향을 받고 있는데 무려 100개에 이르는 자율형사립고라는 새로운 교육제도를 실시하려 하면서 일방적인 기준으로 공청회를 진행하겠다는 것은 의견이 다른 다수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처사다.

 

또한 새로운 학교제도를 실시함에 있어 입법부가 정하는 법률(초중등교육법)이 아닌 대통령의 행정 법률인 대통령령(초중등교육법 새행령)으로 이를 규정하는 것은 교육제도 법률주의를 규정한 헌법 31조를 위반해 위헌 소지가 높다.

 

이에 대해 한국교육개발원와 서울교육청 측은 자율형 사립고에 대한 찬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가 아니라 많은 사립학교들이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할 때 어떤 기준으로 선정할 것인지 의견을 모으는 공청회이기 때문에 비판적인 사람은 초청하지 않았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이 연구 용역은 서울교육청에서 주관한 것이고 공정택 교육감이 직접 축사까지 하기로 되어 있다. 공 교육감은 현재 부정한 선거 자금을 사용한 것과 재산신고를 누락하고 자금세탁을 한 혐의 등으로 징역 6월이 구형되어 다음날인 10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범죄 혐의로 진퇴를 고민해야 하는 공 교육감이, 서울 교육의 근본을 뒤바꿀 수도 있는 자율형사립고와 같은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또한 적절하지 않다. 서울교육청과 한국교육개발원은 자율형사립고 설립을 기정사실화하는 공정회를 중단하고, 국민의 여론을 먼저 살펴야 한다.


태그:#자율형사립고, #공정택, #공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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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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