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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렁바위위에 흐르는 눈물’을 아시나요?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 3.1절 기념식 행사에서 공연한 마당극 ‘두렁바위위에 흐르는 눈물’을 촬영한 동영상 입니다.
ⓒ 김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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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일 저녁. 수촌리 개죽산 봉화를 신호로 제암리 진례산에서, 고주리 천덕산에서, 조암리 쌍봉산에서 , 가재리 당재봉에서, 석포리 무봉산에서, 어은리 남산에서, 덕우리 화당산에서, 장작터 봉화산에서, 이 봉우리 저 봉우리로 뜨겁게 타올랐던 봉화 불과 뜨겁게 외쳤던 함성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식민지하에서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거족족인 3.1운동이 일어나자 제암리에서 형성된 기독교와 천도교가 수원, 화성의 민족세력과 연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했고, 학생, 상인, 농민, 노동자를 비롯한 주민들도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독립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1919년 4월 15일 이를 알게 된 일제는 이 지역 민족운동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기독교, 천도교를 근절하기 위해 제암리 교회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학살을 자행했다.

그로부터 90년이 흐른 2009년 3월1일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서는 3.1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이 나라와 민족의 자유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암리 학살사건" 현장에서 만세운동 재연과 시민걷기대회 및 3.1절 기념행사를 가졌다.

제 90주년 3.1절 행사장을 찾은 초등학생의 글.
▲ 태극기 제 90주년 3.1절 행사장을 찾은 초등학생의 글.
ⓒ 김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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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마당극 "두렁바위위에 흐르는 눈물" 공연과 "두렁바위" 영화 상영을 했다. 특히 마당극 "두렁바위위에 흐르는 눈물"은 극단 '성'이 1919년 당시 화성시 제암리 일대에서 펼쳐진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군.경이 제암리 주민 23명을 교회에 가두고 집단학살한 사건을 재연해 행사에 참석한 시민과 관객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두렁처럼 생긴 바위가 있으므로 두렁바위 또는 제암이라 한데서 제암이라는 명칭이 생겼다.[네이버백과사전]

일본이 식량으로 배급한 쌀가마니 안에는 쌀은 없고 쭉정이와 지푸라기 뿐……. 이에 분노하는 주민들 모습.
▲ 마당극 “두렁바위위에 흐르는 눈물” 일본이 식량으로 배급한 쌀가마니 안에는 쌀은 없고 쭉정이와 지푸라기 뿐……. 이에 분노하는 주민들 모습.
ⓒ 김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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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성'의 김성열 대표는 제암리 사건을 일본인에게도 알리기 위해 '동경예술좌'와 공동으로 제작했으며, 일본 극단의 배우들도 출연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3월3~4일 화성시 병점동 유앤아이센터 아트홀(031-267-8800)에서 두 차례 연장 공연한 후 일본에서 공연을 하기로 되어있다고 했다.

마당극 "두렁바위위에 흐르는 눈물"의 배경은 이렇다.

마치 90년 전의 고통이 들려오는 듯하다.
▲ 불타고 있는 예배당 마치 90년 전의 고통이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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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검거반의 보복 있었던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보병 제79연의 중위 아리타는 4월15일 오후 400여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운동을 벌이자 운동자들을 해산시켰지만 종교인들이 뜻을 굽히지 않고 운동을 계속하자 발안의 3.1운동은 그 원인이 제암리의 천도교와 기독교인에게 있다고 보고 제암리로 향했다.

극중에서는 천왕의 하사품(쌀)을 전달하기 위해 모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훈시할 내용이 있다고 속여 40세 이상 된 남자는 모두 교회로 모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자 15세 이상 모이라고 하고,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이 예배당으로 들어올 때 사람마다 키를 재어 총길이 보다 작은 아이는 돌려보내고 큰 사람들은 예배당으로 들어가게 했다.

예배당 안에서 죽어간 주민들의 이름을 불러 보지만 그들의 음성은 들리지 않는다.
▲ 제암리 주민 예배당 안에서 죽어간 주민들의 이름을 불러 보지만 그들의 음성은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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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안에 모인 주민에게 훈계하는 듯하다 기독교 교지(敎旨)를 질문했다. 주민 중 한 사람이 성서는 인간 상호간에 친밀하게 지낼 것과, 신을 경건하게 섬기고 받드는 것, 신은 최후의 심판을 가르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 답변에 헌병 중위가 "기독교도들의 행위가 그 교리에 어긋났다"며 예배당 밖으로 나가서 세 번의 날카로운 구령을 외치자 일본 군인들은 주민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출입문에 못질을 하고, 예배당을 향해 총을 발사한 다음 불을 질러 잔인하게 21명의 주민들을 학살했다. 또한 이를 지켜보던 여자 2명을 칼로 죽이고 마을 전체에 불을 지른 후 고주리에서 천도교인 6명을 사살하고 시신을 방화했다.

그날 제암리 주민들은 종파와 계급을 초월하여 모두 함께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어났고, 함께 희생되었다. 그날의 희생자들이 보여준 민족의식과 단합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의 대화합과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사명이다.
▲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그날 제암리 주민들은 종파와 계급을 초월하여 모두 함께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어났고, 함께 희생되었다. 그날의 희생자들이 보여준 민족의식과 단합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의 대화합과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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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비극이 담긴 '두렁바위위에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나라를 빼앗긴 아픔과 설움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고, 다시는 우리민족에게 제암리 사건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도 제암리 뒷산에는 그날 불타는 예배당 안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기독교인과 천도교인들의 유해가 합장되어 모셔져 있다. 우리는 그 숭고한 죽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정부는 좌우 갈등과 분열을 넘어 타협과 대화를 통해 국론을 안정시키고, 국민은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 대하여 참여와 관심으로 협력할 때 안정된 나라, 세계 속의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 화염에 무너져 내린 예배당의 잔해 속에서 애통해하며 23명의 이름을 부르는 한 배우의 음성이 집으로 향하는 내내 귓가를 맴돈다.

안정옥, 안종린, 안종락, 안종환, 안종후, 안진순, 안봉순, 안유순, 안종엽, 안필순, 안명순, 안관순, 안상용, 조경칠, 강태성, 김은희, 홍원식, 동부인 김씨, 홍순진, 김정현, 김덕용, 안경순, 안무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들의 숭고한 죽음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살펴주시고 편히 잠드소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뉴스와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제암리, #3.1절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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