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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 26일에 예정되어 있던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개최가 2006년 3회 시상식부터 꾸준히 후원해왔던 문화체육관광부의 갑작스런 예산 지원중단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결국 선정위원회 측은 3월로 연기해서라도 시상식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문광부 전략컨텐츠산업과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민간 시상식은 자발적 운영이 좋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지원금 교부 신청서가 늦게 들어왔고, 다른 지원 사업들과 함께 검토하다 보니 행사가 임박한 시점에 결정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광부 측은 "지원 취소 이유는 핵심 사업 지원을 위한 예산배정 때문"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에 대해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 사무국은 "지난해 12월 담당부서와 논의를 했고 1월, 담당자가 요구한 자료들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음악산업진흥 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그래미', '한국의 빌보드'를 만들고 '대중음악전용관'을 짓기로 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이런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유인촌 장관이 음악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1275억 원을 투입하기로 약속해 놓고 몇 천만원의 대중음악상에 대한 지원을 끊어 버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올해로 6회째 맞는 한국대중음악상은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이를 극복해가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규모 시상식인지라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던 그 몇 천만원을 주지 않는다면 시상식 자체가 힘들어 진다.

 

베이징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에는 수억 원을 우습게 주면서 대중음악상에 대한 지원은 야박하게 끊어버리려고 한다. 대중음악상 하나로 위기에 빠진 음악산업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상 하나도 지키지 못하면 음악산업은 더욱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된다. 한국의 그래미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문광부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공신력 있는 대중음악상을 뿌리채 흔들겠다는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음악산업에 대한 국가 지원, 간접적이어야 한다

 

나름대로 성과를 내면서 성장해 온 한국대중음악상을 갑자기 지원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에 혹시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음모론적 의구심이 든다. 문광부는 독자적으로 대중음악상을 기획하고 있으며 그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다른 민간 시상식 죽이기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 말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대중음악상을 관리하는 구조가 된다. 하지만, 대중음악상을 국가에서 관리할 명분이 전혀 없다. 음악이 중요하긴 하지만 물, 수도, 도로 같은 공공서비스 영역도 아니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민영화 논리에도 어긋난다.

 

문광부가 독자적으로 '한국의 그래미'라는 새로운 상을 만들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기존에 잘 진행되는 상을 지원하면서 고칠 것은 고쳐나가면서 발전시키는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대중음악에 대한 국가지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지원은 좀 더 간접적인 형태가 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음악계의 자율적인 운영을 지원하며, 그들 스스로가 대중음악상의 권위와 선정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문화정책의 모습이 아닐런지. 국가가 나서서 직접적으로 어떤 음악에 상을 주는 것은 음악예술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대중음악산업을 살리려는 계획에서 국가의 영역과 민간의 영역은 확실히 구분되어야 한다. 국가는 불법 음악시장을 단속하는 동시에 합법적인 음악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다시 말해, 음악시장의 큰 틀을 관리하는 영역을 맡아서 해야 한다. 음악상을 시상하는 일은 민간에 맡겨야 한다. 음악인의 음악성과 기여도를 확인하는 장은 음악인들의 손으로 이뤄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국가가 개입하면 국가가 원하는 음악만 인정받는 등 음악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할 소지가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음악을 만드는 데 치명적이다.

 

음악산업 죽은 뒤 근사한 음악상 만들면 뭐하나

 

대중음악상을 통해서 음악산업을 살리겠다는 논리도 지극히 관료주의적 접근이다. 음악산업이 살아나야 음악상이 의미가 있지 아무리 근사한 음악상이 있어도 음악산업이 다 죽은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산업논리에 따라서 한류가 인기가 있으니 지금 인기있는 음악인들에게 상을 몰아주려고 상을 만드는 것이라면 이것 또한 위험한 발상이다.

 

유인촌 장관이  '음악산업진흥 중기계획'을 발표한 장소가 바로 'SM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에브리싱 노래연습장'이라고 한다. 국가의 중대계획을 발표한 장소가 특정 음악기획사가 운영하는 사업장이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문광부가 추진하려는 한국의 그래미의 미래에 대해 또 하나의 걱정을 불러 일으킨다. 혹시 돈이 되는 음악만 밀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음악의 저력은 문화적 다양성에서 나온다. 그 문화적 다양성에는 아이돌도 있고, 언더도 있고, 트로트도 있고, 국악이나 다른 음악장르도 있다. 음악상에서조차 음악적 다양성을 거부하고 특정 음악만 밀어주게 된다면 음악의 미래는 더욱 더 불확실해질 것이다. 문화산업의 다양성이 사라지면 그 길로 음악산업은 더 큰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장르의 영화가 인기가 있자 그것만 죽어라 만들다가 관객들에게 외면당한 홍콩영화의 실패를 통해서 이를 깨달아야 한다.

 

현재 한국의 주류음악시장에서 장르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청소년 취향 위주로 음악시장으로 줄어든 문제가 있다.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의 음악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고 지금처럼 쪼그라든 시장을 강화하는 방식이라면 음악산업의 위기는 극복되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다양한 음악이 생산될 수 있는 음악산업의 저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지금의 한류는 금방 꺼지고 말 것이다.

 

음악산업에 대한 공허한 구호만 남발하는 문광부

 

 

이외에도 국가가 음악산업을 위해 지원해줘야 할 영역은 많다. 변화된 소비자들의 취향과 시장을 반영한 새로운 저작권법으로 음악생산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신인 음악가들 양성을 위해서 음악교육에 더 투자해야 하며, 이들이 지속적으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기본 복지도 신경 써줘야 한다. 이런 보다 거시적인 영역을 국가에서 지원해줘야지 자신들이 나서서 민간상을 주고 나서는 것은 정작 해야 할은 게을리하고 잘 진행되는 일을 망치는 것이다.

 

한국판 그래미에 그나마 가장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는 한국대중음악상에 대한 지원을 끊으면서 어떻게 공신력 있는 상을 만들겠다는 논리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문화부는 음악산업에 대한 기초적인 투자는 없이 공허한 구호만을 남발하고 있다. 며칠 남지도 않은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의 지원을 갑자기 끊는 것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도리가 아니다. 이렇게까지 약속을 어겨가며 문광부가 얻으려했던 것은 한국의 그래미를 만들기 위한 명분이 아니었을까.

 

한국대중음악상이 죽어야만 한국의 그래미를 만들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 익을 수 있다. 문광부는 아이돌이나 주류음악보다 언더 음악인을 조금 더 인정해 주는 한국대중음악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주류 상업음악을 인정하는 음악상을 새로 만들려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안음악상을 죽일 필요는 없다. 상업음악상과 대안음악상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공생의 정책이 필요한 건 아닐까.

 

대중음악산업을 살리는 정책은 내놓지 않고 열심히 잘 하고 있는 기존의 단체를 파괴시키는 것은 무슨 재개발 논리인가. 한국 대중음악상은 허물어져가는 건물이 아니라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튼튼한 건축물이다. 이걸 해체시켜서 무얼 새롭게 짓는단 말인가. 한국대중음악상을 비롯한 다양한 상의 공정성과 권위를 높이고 더불어 성장할 수 방향을 찾아야 한다. 문화정책을 포함한 현정부의 모든 정책은 대운하와 비슷하다. 있는 것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쓸모가 그리 많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를 자꾸 만들어낸다. 한국대중문화상을 파괴해서 이상한 상을 만들지 않을까 두렵다. 불필요한 파괴와 개발논리로 문화산업이 더 힘들어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태그:#한국대중음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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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기자는 미국 포틀랜드 근교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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