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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죽이지 않고 먹을거리를 만드니 '바른 농사'다. 바른 농산물에 제값으로 고마움을 표하니 또한 '착한 밥상'이다. 이렇듯 순리로 따지자면, 도시민과 농민이 상생하는 길은 멀지 않다. 헌데 그놈의 돈이 '웬수'다. 유통 거품, 그로 인한 심리적 거리감도 상당하다. 친환경마크를 믿지 못하겠다는 도시인, '눈'으로 먹는 소비자가 안타깝다는 농민. 연중기획으로 '바른 농사'와 '착한 밥상'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나주시 영산포 초등학교 급식실
 나주시 영산포 초등학교 급식실
ⓒ cric.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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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 밥상만은 '착했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음식물 사고에서 적어도 학교 급식만은 빠졌으면 좋겠다. 허나 역시 '돈타령'에서 막힌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언제 그 많은 돈을 다 번단 말인가. 멀쩡한 보도블록만 덜 뜯어내도 될 것 같은데, 어른들의 '우선순위'는 참으로 이상하다.

참 이상한 나주시, 재정자립도 바닥 수준인데...

전라남도 나주시는 더욱 이상하게 보인다. 2008년 지자체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는 53.9%다. 나주시는 10.9%로 바닥 수준이다. 전남 평균 21.4%에도 훨씬 못 미친다. 그런데도 나주시는 관내 122개 모든 교육시설에 친환경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나주시의 '우선순위'는 아무래도 다른 모양이다.

덕분에 영산포초등학교는 여러 번 매스컴을 '탔다'. 친환경급식의 모범 사례로 알려지면서 밥을 싹싹 긁어먹거나, 고추를 된장에 '팍팍' 찍어 먹는 아이들 모습이 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그 비결을 듣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견학 러시'가 이어졌다. 그들은 어떤 답을 얻고 돌아갔을까.

나주시 이창동에 있는 영산포초등학교를 지난 19일 찾아간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정작 양택승(60) 교장은 "나주시에서 우리 학교는 특별한 곳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무슨 특별한 급식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고, 눈에 띄는 아이들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는 오히려 '조급증'을 탓했다.

"금방 무슨 표가 나나... 나주시는 다 똑같단 말이여"

양택승 교장
 양택승 교장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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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지자체 의원들과 학부모 대표들이 견학왔었다. 시의원님들이 학교급식에 관심 좀 갖고 예산 편성하시라, 그럼 학교 급식 문제 해결된다고 했더니, 학부모님들이 박수를 치더라. 사실 단체장이나 의원님들, 별 관심 없다고 본다. 항상 표를 의식하니까, 다리 놓고, 뭐 건설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하려 하지 않나. 다음 선거에 보탬이 되는 일만 하려고 하니… 급식, 뭐 눈에 띄나? 안 띄지."

비록 '표' 때문은 아니었지만, 안달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친환경급식을 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나타난 변화, 특히 '눈에 띄는 변화'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다른 도시 아이들에 비해 우리 학교 아이들은 야채 잘 먹는다. 고추도 된장 찍어 막 먹는다"는 말은 '제목'으로는 약했다. 당연하다는 듯,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급식 몇 개월 했다고 금방 무슨 표가 나나. 학교에서만 밥을 먹는 것도 아니다. 집에 가서 저녁 먹지 않나. 또 방학 빼면 1년에 180일 정도만 급식이 이뤄지는 셈이다. 뚜렷한 변화를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다. 나주시에서 우리 학교가 무슨 특별한 사례도 아니다. 나주시 다른 학교도 다 똑같이 한다. (이 대목에서 교장 선생님은 사투리를 쓰셨다) 나주시는 다 똑같단 말이여."

"농민도 살리고 아이들 급식도 좋게 하고"

물론 그렇기는 했다. 나주시는 적어도 친환경급식에 있어서는 타 지자체에 비해 월등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2003년 전국 최초로 학교급식지원조례를 '농민 출신' 시장 발의로 제정했다. 이를 토대로 친환경쌀 구입 예산의 70%는 물론, 여타 다른 친환경 식재료 구입비도 70%를 지원하고 있다.

"돈만 있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예산이 있다 하더라도 친환경농산물을 어떻게 구입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우리 나주에는 나주농산물연합사업단이 있다. 친환경농산물 계약재배부터 배송에 이르기까지 확실한 공급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덕분에 나주시 전체 학교가 똑같이 친환경급식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허투루 돈을 쓰면 안 된다. "친환경농산물 구입하라고 쓴 돈을 다 쓰지 않으면, 다음에는 시에서 예산을 줄여버린다"고 한다. 지역 농민한테 돌아가야 할 수익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가까운 지역 농민이 재배한 농산물을 먹자는 '로컬 푸드' 운동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농민도 살리고 우리 아이들 급식도 좋게 하고, 말 그대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학교 교장으로서는 만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스템에서 급식 사고가 날 일이 없지 않나. 학교장으로서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 급식사고다. 좋지 않은 식품을 써서 그런 사고 나 버리면 걷잡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큰 걱정거리를 덜었다."

나주시 영산포 초등학교 급식 모습
 나주시 영산포 초등학교 급식 모습
ⓒ cric.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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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재정이지만...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아침마다 학부모들이 학교급식 검수에 참여한다. 교장선생님 말처럼 "직접 눈으로 보는 만큼, 신뢰가 쌓일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2008년 하반기 학교급식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체 학부모 중 80%가 만족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만족은 2%에 불과했다.

"친환경급식을 원하지 않는 학부모가 있을까. 어느 교장이 안 하고 싶겠나. 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아직 희망사항에 불과하지만, 종래에는 모든 집에서 친환경 농산물로 밥상을 차려야 하지 않겠나. 그러려면 학교부터 해야 하고, 또 그래야 가정으로 번져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으로도 친환경급식이 중요하다."

- 결국 재정의 문제로 돌아오는 것 같다.

"역시 문제는 재정이지만, 나주시와 같이 한다면, 어디든 친환경급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우리 학교가 특별히 급식시설이 좋다거나 그런 부분은 없다. 돈 많은 지자체에서 친환경급식에 소극적인 것을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먹을거리만큼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는가. 똑같은 돈이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지자체장 의지에 달려있다."

- 끝으로 언론 보도에 대한 말씀도 부탁드린다.
"언론 보도도 문제 있다. 부정적인 뉴스만 너무 크게 띄운다. 원래 속성이 그렇다 치더라도, 나쁜 뉴스든, 좋은 뉴스든, 한 번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문제다. 문제를 제기하고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소비자 고발> 같은 프로그램이 드물지 않나. 우리 아이들 건강을 위해서 언론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Q. 대도시 아이들보다 야채에 친숙하기 마련 아닌가요?
A. 방현미 교사 "아이들 기호는 비슷"... 엄마도 유용할 '친환경 학교급식 레시피'
친환경 학교급식 레시피
 친환경 학교급식 레시피
ⓒ cric.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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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친환경이라고 별 다른 건 없어요. 식단이 크게 바뀌지도 않았어요. 친환경쌀로 밥 짓고, 몸에 좋은 친환경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게 하려는 정도죠. 대신 친환경교육을 하거나, 최대한 영양을 파괴하지 않은 식단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작년 농림수산식품부가 친환경급식 확산을 위해 발간한 사례집 '밥상 위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의 한 대목이다. 친환경급식 식단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건강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기호'도 고려해야 하는 영양교사의 고민이 숨어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방현미(46) 영산포초등학교 영양교사 역시 양택승 교장처럼 "우리 아이들이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니"라고 운을 뗐다. "햄 요리 해주세요"라 조르는 경우가 여전히 있고, "지금도 햄을 주면 좋아한다는 것이 솔직한 말"이란 것이다. 다만 햄 같은 가공식품을 사용하는 횟수를 줄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야채 등 다른 먹을거리에 '친숙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설명이다.

"햄이나 만두 등 가공식품은 1년에 두 세 번 정도 써요. 아이들 기호도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물론 야채에 대한 친숙도가 높은 건 사실이에요.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먹는 모습 정도는 흔히 볼 수 있어요."

마침 입이 '근질근질'하던 이야기가 나왔다. 지역 특성상 아무래도 농업에 종사하시는 분이 많고, 그래서 대도시 아이들보다 야채에 원래 친숙한 것 아니냐는 질문. 자칫 도시와 농촌의 차별 의식으로 비칠 수 있어 조심스러웠지만, 그래도 '서울 놈'다운 의심이라고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했다.

"물론 야채를 접하는 기회는 자주 있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의 기호식품이란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23년 동안 영양교사로 농촌이나 도시 여러 곳에서 근무했는데요. 기호도 조사에서 고기, 햄, 튀김 등을 좋아한다고 다 비슷하게 나오더라구요. 야채에 대한 친숙도 변화, 지속적인 교육이 중요하다고 봐요."

더불어 방현미 교사는 "가급적 가공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섭취할 수 있는 식단을 짜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식단이 단조로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떡볶이 할 때는 방앗간에 가서 떡을 뽑아온다든가, 돈가스 소스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이와 같은 노력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정보문화센터 홈페이지(www.cric.re.kr)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메인화면 중단에 있는 '센터 제작 책자' 메뉴로 들어가면, 방현미 교사 등 친환경급식 현장의 영양교사 4명이 조리법을 소개한 전자책(e-Book) '친환경 학교급식 레시피'를 무료로 볼 수 있다. 계절별로 180여개 메뉴가 수록돼 있는 만큼, 친환경식단에 관심 있는 엄마들에게도 유용한 정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태그:#친환경, #급식, #나주, #영산포, #로컬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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