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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 할래요?”

 

고재욱 가옥은 크게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남향하고 있는 안채는 지금 잣세 교수의 거실 겸 서재로 쓰이고 있고, 서향하고 있는 사랑채는 부엌과 주방 등 살림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잣세 교수와 만난 시간이 1시 20분쯤으로 해가 서쪽으로 조금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잣세 교수가 나에게 “시간이 있으면 차 한 잔 할래요?”하고 물어 본다. 나는 바로 “네, 주시면 마시지요”하고 대답을 한다. 그러자 잣세 교수가 나를 사랑채 마루로 안내한다. 사랑채 마루로는 따뜻한 남도의 봄 햇살이 가득 비쳐들고 있다. 잣세 교수는 먼저 우리 식의 둥근 상을 하나 내 오더니 그 위에다 접시를 하나 갖다 놓는다. 접시에는 인절미와 초콜릿, 건포도가 놓여 있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들어가 차를 준비한다.

 

 

나는 건포도를 하나 맛본다. 인절미도 하나 먹어 본다. 그러나 차 맛을 버릴 것 같아 초콜릿은 그대로 둔다. 잠시 후 잣세 교수가 유리로 된 찻주전자와 찻잔을 가져 온다. 찻잔은 약간 투박해 보이면서도 소박하다. 그곳에 국화를 넣어 우려낸 차를 따른다. 그러자 찻잔 안이 연한 노란색으로 변한다. 한 잔 또 한 잔 국화차를 음미하면서 우리는 대화를 시작한다.

 

우리가 처음 만난 인연을 이야기하자, 그때 일은 기억하지만 나를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고 잣세 교수는 말한다. 나는 명함을 주면서 지방의 문화단체와 함께 창평의 대보름 동제에 참여하기 위해 왔고 현재 외국어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자 잣세 교수도 나에게 명함을 주면서 자신은 현재 한양대학교 국제문화대학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로 있다고 말한다.

 

 

수인사가 끝나자 우리는 공통의 주제인 가르침과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각자 전공이 뭐고 지금 몰두하는 일이 뭔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다. 잣세 교수는 조선시대 가사와 시조 등을 연구했고, 나는 독일 표현주의 시를 연구했음을 밝힌다. 사실 상대방 국가의 대표적인 시가를 연구했다는 점에서 서로 상통하는 점이 있다.

 

나는 “이곳 창평이 송강 정찰의 고향으로 선생님이 제대로 터를 잡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래요, 이곳이 참 따뜻하고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지요”하고 맞장구를 친다. “평화롭고 살기 좋은”이라는 표현을 놓치지 않고 내가 “그래서 이곳이 슬로 시티가 되었고, 그런 인연으로 제가 이곳을 찾았답니다”하고 덧붙인다. 이제 대화는 서서히 삶과 문화로 옮겨진다.  

 

"술은 어때요? 담근 것들이 있는데"

 

 

우리는 삶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삶이란 것이 자아구조와 문화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 두 가지 구조는 연관성이 있어서 서로 영향을 끼치죠. 자아구조가 조금 더 개인적이라면 문화구조는 좀 더 사회적입니다.”

 

이야기가 점점 진지해진다. 잣세 교수가 “술 한 잔 어때요? 담근 것들이 있는데” 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나도 술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잣세 교수는 먼저 복분자주를 가지고 온다. 복분자주는 최근에 상용화된 우리의 전통술이다. 사실 포도주 못지않은 게 복분자다. 요즘 신의 물방울이니 해서 과장을 하고 있지만 포도주가 복분자주보다 특별히 나을 게 없다. 요즘 고창은 복분자주 때문에 경제가 좋아졌다고 한다.

 

 

복분자를 우리는 작은 술잔에 따라 마신다. 맑은 차에서 짜리한 술로 변하니 몸에서 느끼는 감이 다르다. 이제 이야기는 문화에 대한 수업으로 이어진다. 잣세 교수는 학교에서 문화를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미국적 시각과 유럽적 시각을 비교 분석하면서 이들의 장단점을 알려주는 것이다.

 

미국적 시각은 물질주의적이고 표피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실용적이고 사회학적이어서 현실감이 있다. 이에 비해 유럽적 시각은 내면적이고 철학적이다. 그러면서도 문학적이고 예술적이다. 그러므로 다분히 사변적이면서도 인간적이다. 인간의 모습을 한 문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잣세 교수는 수업을 영어로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전달 즉 상호 의사소통에서 조금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요즘 영어 강의가 전반적인 추세이니 그것을 따를 수 밖에. 잣세 교수는 독일어와 우리말이 훨씬 더 편한 사람이다.

 

꽃에서 시작, 열매를 거쳐

 

 

복분자 술을 마시고 나자 잣세 교수는 또 다른 술이 있는데 한 번 마셔보지 않겠느냐고 물어본다. 나는 마셔보자고 화답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잣세 교수가 안채로 들어간다. 잠시 후 그는 두 개의 병을 가지고 온다. 하나는 목이 긴 하얀 유리병이고 다른 하나는 양주병이다. 모두 주황색을 띠고 있다.

 

그런데 병 안에 든 열매의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열매의 이름을 알 수가 없다. 그러자 잣세 교수가 열매가 작은 것은 산수유고 열매가 큰 것은 꽈리라고 말한다. 그래, 산수유로는 술을 담글 수 있을 것 같은데 꽈리로 술을 담갔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

 

잣세 교수는 술의 종류가 바뀌었으니 잔을 씻어야 한다면서 복분자 마시던 술잔을 깨끗이 씻어 온다. 바로 옆에 주방이 있지만 앉아서 대접만 받기가 조금 미안하다. 이제부터는 산수유주와 꽈리주를 맛볼 차례다. 한 잔씩 맛을 보니 술에 씁슬한 맛이 있는 게 독특하다. 복분자가 달았다면 이 술들은 쓴 듯한 뒷맛이 있다.

 

이야기는 다시 문화로 돌아간다. 문화가 영어로는 컬춰(culture)고 독일어로는 쿨투어(Kultur)인데 이 용어가 경작하다(cultivate)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문화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경작이라면 농사짓는 일를 말한다. 그러니 문화라는 것이 이처럼 일과 경제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옛말에도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라고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먹고사는 경제가 예절과 관습 같은 문화를 이루는 토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다시 우리나라 경제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잣세 교수 왈 “한국, 정말 경제적으로 선진국 되었어요. 부자 나라예요.” 30년 전을 비교하면서 몇 가지 예를 든다. 나도 맞장구를 친다. “그런데 문화적으로는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미국적 사고방식 때문인지 너무 목표 지향적이에요. 경제 때문에 문화가 희생된 면이 있어요.”

 

맞는 말이다. 우리가 지난 30년 동안 경제개발 한다고 문화적인 것을 등한시했고, 소위 미풍양속과 전통을 많이 파괴했으니 말이다. 이제야 전통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되찾고 유지하려고 하나 이미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번에 찾은 창평의 삼지천 마을도 전통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과거를 되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슬로 시티로 지정도 받고 대보름 동제도 열고 때에 따라 이벤트도 벌이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과연 그러한 행사에 대해 얼마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경제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웰빙과 여유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뿌리까지 내려가면서 모든 것을

 

오늘은 잣세 교수가 아주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산수유주와 꽈리주를 마신 다음 파슬리 뿌리주와 계수나무(Lorbeer)주를 가지고 온다. 이들은 앞에 마신 것들보다 도수가 높아 30도쯤 된다고 한다. 꽃과 열매에서 시작된 대화의 매개체가 식물의 뿌리까지 내려간다. 계수나무는 서양에서 명예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대화가 이제는 식물에게로 옮겨간다. 나는 갑자기 괴테의 시 ‘은행나무 잎(Gingo Biloba)’이 생각이 나서 그 모습을 그려 잣세 교수에게 그 의미를 설명한다. 은행나무 잎은 잎 뿌리가 하나지만 잎 끝에서 잎이 둘로 갈라진다. 하나이면서 둘이 되는 것을 괴테는 삶의 본질로 보고 있다. 동양사상으로 이야기하면 태극에서 양과 음이 나온 것과 같다.

 

잣세 교수와 나는 술을 마시며 끝없이 대화를 이어나간다. 중간에 갑자기 사람이 와서 전남 도지사가 대보름 동제에 왔다가 이곳으로 잣세 교수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알린다. 나는 그럼 그때까지만 있으면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도지사는 오질 않는다. 아마 행사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나 보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이제 내온 술을 거의 다 마셨다. 사람도 좋고 기분도 좋고 대화도 진지해서 그런지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다. 1시간 20분쯤 지난 것 같다. 그때 전화가 온다. “할로 디어크. ...” 이웃 대덕면에 살고 있는 독일인 동료 빈도림씨가 전화를 한 것이다. 잣세 교수는 한참 대화를 이어가다가 3시 반에 둘이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준비를 하고 가야하니 이제 헤어져야 할 것 같다. 아쉽지만 우리는 작별을 고한다.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 작품 전시집을 두 권 준다. 하나는 빈도림과 잣세 교수가 공동으로 연 전시회 카탈로그이고, 다른 하나는 잣세 교수 단독으로 연 전시회 카탈로그이다. 우리는 이 카탈로그를 보면서 잠시 그림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아쉬운 작별을 한다.

 

 

1시간 반 동안 우리는 신선이 된 것처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신선에 대해 잣세 교수와 나눴던 대화 일부를 소개한다.

 

“신선을 독일어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Unsterbliche(죽지 않는 사람).”

“신선이라는 개념으로는 좀 부족하군요.”

“그래요, 정신적인 면이 부족한 편입니다.”

 

잣세 교수는 이곳 창평에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신선처럼 아주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진정한 슬로 시티즌(slow citizen)이다.


태그:#베르너 잣세, #국화차, #술, #문화,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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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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