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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실수로 정리하고 넘어갈 문제냐. 아휴~"

 

'청와대 이메일 지침' 파문을 바라보는 한 한나라당 재선 의원의 말이다. 이 의원은 "사건의 모양새를 보면 (야당의 주장처럼) '공안통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개인의 실수로 넘어갈 문제가 아닌데 지도부가 (청와대를) 감싸려고만 든다"며 "정말 그렇게 (일단락됐다고) 생각하는 건지, 뭐라고 할 입장이 못되니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한승수 국무총리, 그리고 여당 지도부는 "(이메일을 보낸) 행정관이 사표를 냈으니 일단락됐다"며 한 목소리로 '사건 종결'을 외친다. 한 총리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박희태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도 '이메일 지침' 파문은 끝났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홍 원내대표는 "이메일 건의 유효기간은 이틀"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밑바닥 여론은 다르다. 의원들이나 보좌관들 사이에선 "지도부가 (일단락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사후대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청와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의원들 "실수로 넘어갈 문제냐" "사건 내용은 명백한 잘못"

 

친이 직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행정관 한 명의 잘못을 청와대의 기획으로 몰고가는 야당의 주장은 정치공세"라면서도 "사건의 내용은 아주 고약하고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그는 "청와대와 각 부처·기관 실무자 간에 업무 협조나 조언을 할 수는 있지만 이번 건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용산참사'를 마치 (연쇄살인 사건으로) 여론을 돌려서 해결하라는 건 (정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의 대응 방식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청와대는 사건이 터진 지난 11일 이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관계자들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공식적으로 공문을 보내거나 지침을 내린 적이 없다",  "자체 조사결과 국민소통 비서관실 행정관이 경찰청 관계자에게 개인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로 확인됐다"고 답변한 것이 전부다. 이동관 대변인은 아예 두문불출하다가 지난 19일에야 기자들 앞에 나섰다.

 

이메일을 보낸 이성호 전 행정관도 스스로 사표를 낸 것이지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이 전 행정관이 사표를 내기 전 청와대는 '구두경고'라는 하나마나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

 

"진상조사 내용 투명하게 밝히고 시스템 재정비 했어야"

 

여당 의원들조차 이런 청와대의 미심쩍은 대응이 의혹을 키웠다는 지적을 한다.

 

한 친이 소장파 의원은 "청와대 대응이 미숙하고 미흡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며 "초반에 조사내용을 투명하게 밝힌 뒤 행정관은 일벌백계하고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조치를 발표해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도 "아무리 말단 행정관이라고 하더라도 청와대라면 얘기가 다르다. 조직 전체에 그런 분위기가 만연돼선 안 된다"며 "공직 기강을 세우는 조치가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좌관들도 혀를 찬다. 여러 해째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한 중진 의원 보좌관은 "(청와대가) 처음에 깨끗하게 사과를 했어야 하는데 '꼼수'를 쓰다가 (야당에) 난타를 당하고 있다"며 "괜히 (처음에) 아닌 척하다가 사태가 커졌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당내 여론이 이런 데도 지도부는 청와대에 쓴소리를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최고위원회 참석자들에 따르면, 회의 테이블에서도 이 문제는 거론되지 않는다. 대변인들도 공식 논평을 낸 적이 없다.

 

박희태 대표나 홍준표 원내대표는 사석에서 이메일 지침 얘기가 나오면 "이미 끝난 사안"이라고 강조할 뿐이다.

 

박 대표는 19일 신년 기자회견 뒤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질문을 받곤 "당사자가 사표를 쓰고 끝내지 않았느냐"며 행정관의 사표 제출로 일단락됐다는 한승수 총리의 주장을 그대로 따랐다. "야당이 국정조사와 특검 실시를 주장하는데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이냐"는 물음에도 "청와대에서 조직적으로 (지시해서) 한 것도 아니고, 국민들이 크게 관심 있는 것 같지도 않다"고 말해 '무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홍준표 "이메일 파문은 끝났다"... 야당 "상임위서 진상 파악해야"

 

홍준표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행정관이 사표 냈으면 (파문은) 끝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홍 원내대표는 "정치권은 파도다. 현안이 있어도 뒤이어 더 큰 현안이 터지면 잊혀진다"며 "이메일 건은 (유효기간이) 이틀"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도 '청와대 이메일 지침' 파문이 끝날지는 의문이다. 민주당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회에 인사청문을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인사청문팀이 없었다"(16일)→"그 팀을 조직하지 않았다고 보고 받았으나 그게 사실이라면 그에 대해서는 저는 아는 바가 없다"(17일)→"비공식적인 준비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식적인 인사청문팀은 없다는 말씀을 드린다"(18일)고 말을 바꿔온 한승수 총리를 위증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또한 민주당은 국회 운영위원회를 열어 이 전 행정관의 지휘·책임선인 김철균 국민소통비서관, 박형준 홍보기획관에다가 정정길 대통령실장까지 불러 사건의 진상을 파헤칠 작정이다. 이에는 자유선진당도 같은 입장이어서 한나라당은 또 다시 궁지에 몰린 형국이다.


태그:#청와대이메일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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