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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과 논쟁과 토론하기보다는 대립과 갈등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만큼은 다른 생각을 가졌을지라도 존경받는 몇 안 되는 분이었다. 그가 '추기경'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살아온 삶이 존경받을 만하였기 때문이다.

 

알고 있듯이 김 추기경은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독재정권에게 저항했다. 그가 민주주의를 위해서 남긴 많은 말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후손들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마음에 새겨야 할 중요한 가르침이자 힘이 될 것이다.

 

물론 독재정권이 끝나고,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보여주었던 말과 행보는 더 나은 진보를 원했던 사람들에게는 혼란스럽게 했지만 독재정권을 향하여 외쳤던 '나를 밟고 지나가라'는 말은 민주주의를 위한 엄청난 힘이었기에 결코 존경을 거둘 수 없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자 언론들은 그를 기리는 특집 방송을 내보냈고, 신문들은 기사와 사설을 통하여 선종을 애도하고, 걸어왔던 삶을 되돌아보았다. 하지만 김 추기경이 민주주의를 위해 살았던 삶을 되샘김질면서 달리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보수 언론 논조가 눈에 띄었다.

 

<동아일보>는 지난 2월 17일 <'큰 어른' 김수환 추기경 '큰 빛 남기고 떠나다>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김대중 정부 이후 보수 행보를 보였다고 비판했던 세력들을 향하여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어른의 권위마저도 송두리째 부인하는 독선의 과잉"이라며 비난했다.

 

 

김 추기경은 권력을 잡은 민주화 세력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정부의 좌편향 인사들은 역사의식에 투철한 원로의 고언을 수용하지 않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추기경의 역할이 과대평가됐다”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대결과 분열이 심해지는 현상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어른의 권위마저도 송두리째 부인하는 독선(獨善)의 과잉 때문이다.(동아일보 <'큰 어른' 김수환 추기경 '큰 빛 남기고 떠나다> 2009.2.17)

 

진보세력은 김수환 추기경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과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거룩한 삶을 부인한 일이 없다. 김대중 정부 이후 국보법폐지 반대와 사학법 개정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추기경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을 뿐이다. 이를 두고 추기경이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부인했다는 말은 옳은 비판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박정희 정권에게 무릎을 꿇고, 박정희 정권에게 저항했던 기자들은 해고한 과거 삶부터 먼저 인정해야 옳다. 전두환 군부독재가 1980년 봄 광주를 피로 물들일 때 <동아일보>는 무엇을 했는지 반성함이 먼저다. 독재정권에게 저항하지 못했다면 김수환 추기경 선종으로 진보세력을 공격하는 일은 언론이 할 일이 아니다.

 

<문화일보>도 마찬가지다. 17일 "근조-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어른 김수환 추기경" 사설에서 "민주화 개화 이래 김 추기경은 한때 좌편향 집권세력"에게 쓴 소리를 했다면서 "당시 정부의 반(反)언론, 좌경화 교육, 북녘 주민 인권 외면"을 비판한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민주화 개화 이래 김 추기경은 한때의 좌편향 집권세력과 그 추종세력에 대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느냐”면서 “대한민국이 없었다면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신체의 자유도 없었을 것”이라고 질타했었다. 김 추기경의 그같은 질정(叱正)이 있어 우리 역시 당시 정부의 반(反)언론, 좌경화 교육, 북녘 주민의 인권 외면 등 국기(國基)를 흔들어온 일단의 집요한 기도에 맞서올 수 있었음을 잊을 수 없으며,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것이다.(문화일보 <근조-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어른 김수환 추기경> 2009.2.17)

 

김수환 추기경과 좌경화가 무슨 상관인가. <문화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문화일보 창간 때 특별인터뷰를 했는데 김 추기경이 “가난한 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불행한 이웃에게도 희망을 심어주는 바른 정치를 구현해 인간이 인간답게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고 말했다고 썼다.

 

그렇다면 김 추기경 이념과 사상보다는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는 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었던 분이 김 추기경이다. 그럼 지난 정부가 좌경화 교육을 시켰고, 반언론 정책을 편 일이 있는가. 지금 이명박 정권이 반 언론 정책을 펴고 있음을 <문화일보>는 언론으로서 정말 알지 못하는가.

 

<조선일보>는 김수환 추기경이 "나를 밟고 지나가라"는 말은 종교인 정치참여가 아니라고 말한다. <조선일보> 김 추기경이 독재정권을 향한 민주주의를 위한 '울림'을 종교인 정치 참여가 아니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명박 정권을 향하여 쓴소리를 외치는 일부 신부들을 향한 질타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유신과 군사정부 시대 손가락으론 민주화를 향한 길을 가리키고, 입으론 인간이 존중받는 정치의 꿈을 이야기해도 누구도 그걸 종교의 정치 참여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시대의 당연한 목소리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김 추기경은 정의를 말하면서도 나만이 정의의 사도인 양 비치는 오만을 꺼렸고, 불의를 나무라면서도 혼자만이 양심의 재판관인 양 비치는 독단을 경계할 만큼 평생을 낮게 살았다.(조선일보 <김수환 추기경이 떠난 자리 >, 2009.2.17)

 

김수환 추기경이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이 땅의 평화에 해를 끼칠 것" "나를 밟고 지나가라"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는 구약 성서 속 '예언자' 모습이고, 이명박 정권을 향하여 외치는 신부들 울림은 '정의의 사도인 양 비치는 오만'인가. 김수환 추기경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권력을 향하여 외쳤던 울림은 똑같은 예언자 삶이요, 정의와 양심을 위한 외침으로 둘 다 다르지 않다.

 

19일 만평처럼 김수환 추기경이 원하는 모든 갈등을, 하나로 묶기를 원한다면 이명박 정권을 향한 외침이 <조선일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갔던 삶을 <조선일보>가 먼저 실천해야 한다.

 

이념논쟁을 하는 세력이 누구이며, 좌파세력 운운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빈부 격착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이명박 정권은 갈수록 빈부 격차가 커지는 정책을 펴고 있다.

 

교육은 어떤가. 이미 교육은 붕괴 직전이다. 시험 한 번으로 일등부터 꼴지까지 줄세우는 비극을 잉태하는 교육 정책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조선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김 추기경은 평생을 가난한 사람, 장애를 겪는 사람,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 곁에서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기쁨을 함께 기뻐했다"고 분명히 썼다. 그럻다면 이 길을 가고 있지 않는 이명박 정권을 향하여 신부들이 일어섰다. 당연히 칭찬하고, 힘을 불어넣어야 하지 않는가.

 

김수환 추기경 선종을 통하여 정말 조선과 동아, 문화일보가 그를 기리고, 살아온 삶을 본 받기를 원한다면 늘 약자의 편에 섰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은 김수혼 추기경이 독재정권을 향하여 쓴 소리를 했던 그 시대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국가권력이 인민을 통제하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남북관계는 악화되고 있다.우리 사회가 다시 공안정국으로 회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말 김수환 추기경 선종 앞에서 그가 삶아온 삶을 본 받기를 원하다면 이념 논쟁으로 생각이 다른 세력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로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살피고, 반성이 먼저다. 김수환 추기경을 '글'이 아니라 '삶'으로 따라야 한다.


태그:#김수환, #보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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