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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당국이나 시장을 관리하는 쪽, 어느 곳에서도 아직 아무런 통보나 지침이 내려오지 않아서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불안하고 초조해서 요즘 입맛도 떨어지고 밤에 잠도 오지 않아요." - 숭례문 쪽 출입구서 노점을 하는 상인1

 

"용산처럼 대책 없이 내몰면 여기서 죽는 거지요, 뭐. 요즘은 장사도 잘 안 되고 죽을 지경이지만 그래도 이곳에 나와 있는 것이 집보다 좋거든요. 이곳에서 30여 년 동안 참 혹독하게 고생했는데, 그러면서 정이 들었나봐요. 그런데 그냥 쫓아내면 죽을 수밖에 없잖아요? 정말 어떻게 되려는지 무섭고 걱정스러워 아침이면 눈을 뜨지 못하고 그냥 죽었으면 싶기도 해요." - 숭례문 쪽 출입구서 노점을 하는 상인2

 

서울시는 지난 16일, 지역상권 활성화 차원에서 오는 11월까지 65억 원을 들여 '남대문시장 정비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특히 숭례문 주 출입구 쪽에 위치하고 있는 쓰레기 임시 수집장을 지하공간으로 옮기고 그 위로는 광장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보행로를 정비하고 이곳저곳에 자리 잡은 노점상들도 중간으로 모을 예정이라고 한다.

 

숭례문 출입구 도로 옆 공중전화 부스 양쪽으로는 신발과 바구니, 양말, 그리고 목재공예품과 생활용구 판매점 등 6개의 노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시장 환경개선사업 중에서도 중점 사항인 숭례문 쪽 출입구 쓰레기장 지하화와 광장 조성사업의 핵심 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다.

 

"대책 없이 내몰리면 여기서 죽을 각오"

 

"솔직히 기대가 됩니다. 우선 여름이면 냄새 나고 파리가 들끓는 가게 앞의 저 쓰레기장이 지하로 사라지면 장사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고…."

 

"진짜로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가 보다 하지 뭐, 믿을 수가 있나요? 환경개선사업 하겠다고 한 것이 언제부터인데… 한두 번 속았어야죠. 지금 대통령이 시장을 할 때도 나왔던 말인데, 말짱 헛된 말이더라고요, 하면 좋기야 하겠지만 기대는 안합니다."

 

숭례문 쪽을 제외하고 삼면에 빙 둘러 있는 가게주인들은 의견이 달랐다. 우선 쓰레기장이 사라지면 환경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동안 몇 번이나 속았다며 믿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는 상인들도 있었고 아예 관심이 없다는 상인들도 많았다.

 

서울시의 남대문시장 정비사업 소식을 듣고 서울 중구 남대문 시장을 찾은 것은 지난 18일 오후 1시경. 시장통으로 나서자 한국 최고의 재래시장답게 사람들로 북적였다. 허술한 겨울옷을 값싸게 파는 가게 앞에는 주부들과 노인들 30여 명이 몰려들어 옷을 고르느라 와글와글했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자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내걸린 '악세사리 상권 무너뜨리는 무분별한 개발업자 물러나라'란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도 개발이익을 앞세운 개발업자와 상인들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근처 가게 몇 군데에 들러 올해 안에 서울시에서 거금을 들여 시장정비사업을 한다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으니 "그건 이쪽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근처 다른 블럭 상가들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상인·시민들 무관심 속에 진행되고 있는 정비사업

 

서울시에서 사업을 벌이겠다는 곳이 숭례문 쪽 본동 상가지역이니 자신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면서 "그거 제대로 시작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언제부터 나온 얘긴데…"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상인들도 많았다.

 

숭례문 쪽으로 걸으면서 시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정비사업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묻다 보니 우리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인 관광객들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시장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 중에 30%, 아니 거의 절반은 일본인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가게 앞에 나와 호객하는 사람들도 일본말로 소리치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을 찾은 시민들의 반응은 더욱 무관심하고 썰렁했다. 50대 한 남성은 "보도는 봤는데 무엇이 얼마나 달라지겠어요? 남대문시장이 그냥 시장이지…"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도 "뭘 어떻게 정비하려는지 모르지만 그냥 이대로 놔두는 게 좋겠어요"라며 "이런 모습이 좋아서 이 시장에 오는데…"라는 바람을 밝혔다. 중림동에 산다는 이 여성은 이런 재래시장 분위기가 좋아서 남대문 시장을 찾는데 현대식으로 정비되면 이 시장에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을 걸으며 30여 명에게 이번 정비사업에 대해 물었지만, 관심을 보인 사람은 5명에 불과했다.

 

그렇게 사람을 한 명 한 명 만나며 걸어가자 곧 숭례문 입구가 나왔다. 다시 근처 가게로 들어갔다. 하지만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가게 주인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글쎄요. 그런 말 듣기는 했지만 관심 없어요. 장사도 안 되는데, 정비사업은 무슨…."

 

"설마, 그냥 내쫓지는 않겠지요..."

 

숭례문 입구 쓰레기장엔 재활용 종이박스들이 수북이 쌓여 있고 노동자 몇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다. 한쪽엔 재활용품을 분류하기 위한 자루들도 놓여 있었다. 그 쓰레기장 옆 출입구 길가엔 노점상 몇 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걸 왜 묻는데요? 그렇잖아도 마음이 심란한데…."

 

그들에게 정비사업 이야기를 꺼내자 금방 얼굴빛이 변했다. 근처 가게상인들과는 너무 다른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막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직 그 누구에게서도 노점들을 어떻게 하라든가, 어떻게 하겠다는 말을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마 또 용산처럼 죽이기야 하겠어요? 대책을 세워주겠지요. 아는 사람이 텔레비전에서 보았는데 예전처럼 그렇게 막 몰아내지 않고 장사할 곳을 마련해 준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해줄지 몰라서 걱정이에요."

 

그들은 비록 노점이지만 자리 잡고 장사하는 것이 공짜가 아니라고 했다. 전에 하던 사람으로부터 물려받을 때 만만치 않은 자릿세를 지불하고, 또 청소비며 이런저런 비용도 적지 않게 낸다는 것이다.

 

 

"30여 년 전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피눈물 참 많이 흘렸어요, 어린아이들 데리고 장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추운 겨울에는 얼굴이 얼어 터져 피고름을 흘리기도 했고요. 요즘은 장사가 안 돼서 힘들긴 하지만 이것 없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 굶어죽어요. 겨우겨우 먹고사느라 돈 벌어 놓은 것도 없는데… 설마 그냥 내쫓지는 않겠지요?"

 

정비사업 이야기를 듣자마자 슬픈 표정으로 하소연을 시작한 노점상의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시장 환경을 개선해 이용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시장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의 정비사업이 이들에게는 생존권이 걸린 절박한 문제였다.

 

시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이나 상인들의 무관심 속에 진행되고 있는 남대문시장 정비사업은 중점 정비대상 주변 상인들에게서도 기대 반 무관심 반으로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힘없는 정비대상 노점상들에게는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었다.

 

"우리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도 피눈물 흘리지 않게 배려하고 돌봐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복원공사 중이어서 가림막에 가려진 숭례문에 눈도장을 찍고 돌아서다가 문득 떠오른 노점상 아주머니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어느새 해가 설핏 기울어 시장골목에 그늘이 지고 있었다.


태그:#남대문시장, #상인들, #이승철, #환경정비, #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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