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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지난해 10월 치렀던 학업성취도평가(일명 일제고사)의 시도별 결과를 공개했다. 언론들은 교과부 발표가 나자마자 앞 다퉈 결과를 분석했고 많은 양의 지면을 할애해 보도하고 있다.
 
결과 발표 후 서울교육청을 필두로 '학생 학업능력 향상'을 위한 각종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일반적인 예산 지원을 비롯해 성취도평가를 교장·교감 인사와 연계한다는 으름장까지 놓고 있는 상황이다. 교과부와 각 교육청들은 '의미 있는' 발표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몇몇 언론들은 교과부가 내놓은 자료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일부에선 이번 성적 공개로 '지역별, 학교별 학력 차이가 객관적으로 증명됐다'고 하기도 하고 '초등학생보다 고등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낮은 것은 평준화제도 탓'이라고 평준화 공격에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시골 일부 학교들의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온 것은 교장을 중심으로 한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방과 후 학교, 영어 체험 센터 등이 결합된 결과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결정적이고 의도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류①] 기초학력 미달 0% 임실의 힘? 데이터 조작과 해석 오류의 힘!
 

 

교과부 발표에 따르면 전북 임실 초등학교 6학년의 기초학력미달 학생 비율은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특히 영어와 과학, 사회는 아예 미달 학생이 한 명도 없다. 0%다. 이외 수학과 국어도 1% 미만이고 5과목 평균이 0.2%다.

 

어떻게 기초학력미달 학생이 한 명도 없을 수 있는지 데이터 자체에 대한 믿음이 가지 않았는데 대형사고가 터졌다. 결과 발표 이틀만인 18일, '임실의 기적'이라고까지 보도된, 그 미달자 0%란 수치가 조작됐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임실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서 임실교육청으로 보낸 보고서에는 미달자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번 사태는 일제고사를 실시한 영국과 미국 등의 사례에서 이미 예견된 것으로써 교과부의 발표 자체가 심각한 신뢰성의 타격을 입혔다. 그런데 이런 데이터 조작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교과부의 임실 학업성취도 해석은 심각한 오류가 있다.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많은 언론들은 '임실의 기적'이 지역교육장과 학교장을 중심으로 모든 학생들이 오후 6시까지 의무적으로 방과 후 학교를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임실에 영어과목의 기초학력미달 학생이 한 명도 없는 것은 임실교육청이 주도해 영어체험학습센터와 영어생활관을 운영하며 전 학생이 연 2회, 2박3일씩 원어민에게 지도를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사실상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방과 후 학교를 실시하고 학교별로 영어체험센터와 영어생활관을 운영하라는 무언의 압력이다.

 

'데이터 조작' 의혹이 아니더라도, 교과부가 내놓은 자료만 놓고 봐도 좀 이상하다. 전북 임실은 기초학력미달 학생 수도 낮지만, 보통학력이상 학생의 비율 역시 현저하게 낮다. 5과목 평균 전북의 보통학력이상의 비율이 81.1%인데 임실은 79.7%로 오히려 전북 평균보다도 못하다. 기초학력미달이 적은 순으로 전국 통계를 내보면 임실이 전국에서 1위이지만, 보통학력이상의 비율이 높은 순으로 전국 통계를 내보면 국어는 129등, 사회는 4등, 수학은 117등, 과학은 68등, 영어는 99등, 전체 평균은 70등으로 결코 내세울만한 성적이 아니며 전북 지역 평균에도 못 미친다.

 

같은 교육청인데, 임실 중학생은 성취도가 왜 낮지

 

기초학력미달과 보통학력이상을 가중치 1과 -1로 보정하여 종합적으로 평가해 보면 임실의 학업성취도 평균은 전국 180개 지역 시군구교육청 중에서 국어는 105등, 사회는 1등, 수학은 97등, 과학은 45등, 영어는 65등, 5과목 합계 평균은 50등으로 그저 그런 평범한 성적이다. 교과부는 이를 무시한채 자기 입맛대로 기초학력미달학생만 부풀려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한 것은 임실 지역 중학생의 학업성취도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관할청이 똑같이 임실군교육청이고 고등학교는 전북교육청이다. 똑같은 교육청 산하 임실 지역 초등학교의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타난 것이 신뢰성이 있으려면 중학교 역시 비슷한 분포를 나타내야 한다. 그러나 똑같은 교육청에 의해서 똑같은 정책이 실시되고 있는 임실 지역 중학교의 학업성취도 분포는 초등학교와는 판이하다.

 

임실 지역 중학교의 학업성취도 결과가 국어 147위, 사회 86위, 수학 148위, 과학 135위, 영어 167위로 나타나는 등 거의 전 과목에서 전국 100위권 밖이며, 전체 과목 평균은 180개 지역 중에서 146위로 거의 꼴찌에 가깝다.

 

교과부의 주장처럼 오후 6시까지의 의무적인 방과 후 학교 참여, 영어체험학습센터와 영어생활관이 임실군 학업성취도의 비결이라면 초등학교에서는 방과 후 학교와 영어체험학습센터가 효과가 있는데, 중학교로 올라갈수록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러면서 학력, 특히 영어 과목의 학력이 167위로 현저하게 떨어져버린다. 교과부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틀 천하'로 끝이 나버린 '임실의 기적' 사건을 놓고 볼 때, 혹시 사교육비 논란에서 면피하기 위해 MB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의무적 방과 후 학교와 영어몰입교육 등 영어교육활성화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조작된 데이터를 내놓은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임실 사건이 보도되면서, 언론에선 '임실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런 데이터 조작이 이루어진 것을 아닐까'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서 교과부는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오류②] 성취도 하락 원인이 평준화?

 

 

 

이번 결과 발표 후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하향평준화 현상을 확인했다"며 "학력을 상향 평준화하는 정책을 펴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풀어보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성취도가 낮아진 이유는 '평준화'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학업성취도 하락의 원인이 평준화 탓이라는 주장 역시 의도된 거짓말이다. 이번 교과부의 일제고사 성적 공개는 오히려 평준화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학업성취도가 높고, 기초학력미달 학생의 비율이 더 낮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고등학교 평준화 여부가 중학교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 하에 중학생들의 학업성취도로 간접 비교를 해보면, 경기도 평준화 지역의 평균 학업성취도가 국어, 사회, 과학, 수학, 영어 등 모든 과목에서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보다 높다. 기초학력미달 학생 비율도 평준화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 평균보다 훨씬 낮다. 전과목 합계에서도 보통이상학력 학생 비율은 평준화 지역 대 비평준화지역 비가 57.5% vs. 49.4%로 8%나 높고, 기초학력미달 학생 비율은 10.9% vs. 14.0%으로 평준화 지역이 오히려 더 낮다.
 

 

제주도 역시 경기도와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제주도의 경우 제주시는 평준화 지역이고, 서귀포시는 비평준화 지역이다. 그런데 학업성취도 결과에서는 모든 과목에서 평준화지역인 제주시가 비평준화인 서귀포시보다 학업성취도가 높고, 기초학력미달 학생 비율도 낮게 나타난다.

 
하향평준화 때문에 학업성취도가 낮다는 교과부와 서울교육청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오히려 평준화 지역 학업성취도가 비평준화 지역보다 높고, 기초학력미달 학생 비율은 더 낮다는 것이 통계를 통해 나타나는 진실이다.
 
중학교의 경우 기초학력미달 학생 비율이 낮은 순으로 전국 석차를 매겨보면 강원도가 영월, 태백, 정선, 강릉, 동해, 삼척 등 6개, 경북이 청송, 봉화, 울릉, 고령, 영주, 영양, 포항, 청도 등 8개로 강원과 경북 2개도가 전국 상위 20개 중 14개를 차지했다. 교과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주장하는 지역별 학업성취도 분석으로는 이들 시골 중학교가 대도시보다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타난 것에 대한 해명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런 세세한 자료는 분석해놓지 않았다. 그냥 서울 강남이, 부산 해운대구가, 경기도 성남이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왔다는 것만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전북 임실을 내세워 시골학교라도 교육청과 교장, 교사가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고 다른 학교와 교사들을 다그치고만 있다.
 
학교별, 교사별 무한 경쟁시대로
 

교과부와 서울시교육청 등 교육당국은 이번 학업성취도 결과 공개를 바탕으로 학교별, 지역별 학력 차이가 분명히 드러났다면서 학업성취도 결과에 따라 학교와 교장, 교사들에 대한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승진과 전보에 연계시키고 학교 평가에도 반영하고 예산 지원에도 참고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어느 교육청에서는 지도교사 실명제를 이야기하면서 교사들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하겠다고 한다. 이제 모든 것은 교사와 학생, 학교의 탓이 되어버렸다. 임실을 예로 들며 아무리 시골이라도 교사와 학교만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고 한다.
 
교과부와 교육청 등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며 오직 학교와 교사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학업성취도 결과 공개로 인해 학교들과 교사들은 앞으로 무한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번 공개로 인해 한 가지 더 우려되는 것이 있다. 바로 대학입시와 관련된 것이다. 최근 고려대가 입시에서 고교 등급제를 실시했다는 의혹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고려대뿐 아니라 연세대 등 이른바 명문 대학들이 외고와 특목고 학생들을 우대해 왔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들 대학들은 이번 학업성취도 공개를 계기로 '지역별, 학교별 학력 차이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다'면서, 이를 학교등급제 정당화의 명분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아무 관련 없어 보이던 학교 등급제라는 현대판 신분제도가 일제고사 학업성취도 공개에 의해 합법화의 명분을 얻은 것이다.

태그:#일제고사, #성적공개, #평준화, #학교등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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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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