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금정산 하산 길, 달빛 마주보며 숲길을 걷다.
▲ 달빛 산행 금정산 하산 길, 달빛 마주보며 숲길을 걷다.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작은 것이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비추니

밤중에 밝은 빛이 너만한게 또 있느냐
너는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윤선도 선생의 ’오우가‘중, ’달‘에대한 시)

범어사 앞 주차장에 도착했을 땐 7일 오후 3시 40분이다. 오후 늦게 산행을 나선 까닭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산할 시간이다. 범어사를 찾은 사람들과 등산을 끝내고 하산하는 사람들로 범어사 주변은 붐비고 있다. 오후 3시 50분, 범어사를 지나 범어사 계곡 암괴류를 지난다.

금정산 가는 길, 암괴류를 지나며

‘바위덩어리가 흘러내린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암괴류는 범어사에서 북문으로 오르는 길에 바위들로 이루어진 계곡을 말한다. 이 길은 금정산 등산할 때면 하산 길로 자주 이용해 오던 길이지만 등산 할 때 지나가기는 처음이다. 범어사에서 북문을 통과해 금정산 고당봉에 이르는 등산로는 비교적 넓고 완만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는 길이다.

 범어사 암괴류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하산길로 자주 이용해오던 암괴류를 올라가면서, 새삼스럽게 이 암괴류가 꽤 넓고 길다는 것을 실감한다. 올라갈 때 보는 것과 내려갈 때 보는 것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암괴류를 지나면서 우리와는 반대로 하산하는 많은 사람들과 맞닥뜨린다. 그랬다. 보통 때 같으면 금정산에 올랐다가 이 시간쯤이면 우리도 언제나 하산할 시간이다.

늦은 시간에 등산길에 나섰으니 혹시 일몰은 볼 수 있을까, 기대가 된다. 한참을 오르고 또 오르는 길에 해는 설핏 기울어 잘 보이지 않는다. 너무 늦어서 어두워지지는 않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랜턴은 준비해 오긴 했지만 한 밤중에 둘만의 산행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돼 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다보니 쉬어갈만 한데조차도 우린 그냥 통과한다.

고당봉에서 내려다 본...
▲ 금정산 고당봉에서 내려다 본...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땀이 나도 쉬지 않고 간다. 행여나 우리처럼 늦은 시간에 올라가는 사람이 있나 둘러보아도 하산 하는 사람들만 보일 뿐이다. 겨우 암괴류를 지나고 호젓하고 넓은 길을 걸어 북문에 이른다. 바위틈 사이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 들으며 잠시 앉아 있을 틈도 없이 올라온 길, 어느새 4시 40분이다.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을까

금정산 고당봉(801미터) 정상이 멀리 조망된다. 고당봉 정상 위에 몇몇 사람들 움직임이 보인다. 걸음에 여유를 부려보지만 역시 마음이 바빠 걸음이 빠르다. 흙먼지 풀풀 날리던 흙길은 며칠 전에 비가 와서인지 촉촉하다. 가끔 하산하는 사람들이 이제 산으로 가는 우리가 걱정되는지 ‘지금 가서 언제 내려오려고 가십니까?’ 하고 묻는다.

북문을 지나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고당봉 정상에 도착, 오후 5시 15분이다.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경계에 위치한 금정산은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산으로 언제 찾아와도 넉넉하게 사람들을 끌어안는다. 크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데도 찾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그 품은 넓고 아늑하다.

고당봉...기암괴석 위에 앉은 까치 한 쌍...
▲ 금정산 고당봉...기암괴석 위에 앉은 까치 한 쌍...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화강암의 풍화로 인한 기암절벽이 많은데다, 넓고 호젓한 흙길, 물과 숲이 울창하여 남성적인 역동성과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두루 느낄 수 있어 언제나 새롭다. 늦은 오후, 고당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금정산은 옅은 안개에 싸여 뿌옇다. 뒤쪽에 보이는 낙동강 물빛은 안개에 싸여 희미하고 바람은 많이 순해진 것 같다.

예전처럼 살을 에는 바람은 아니다. 정상 근처 바위에 앉은 두 남자는 아까부터 계속 뭘 끓여먹는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해가 기우는데도 금방 일어날 폼들은 아니다.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을까 기대도 해 보았지만 안개에 가려 있어 흐려진 노을빛  던지고 있다. 혹시나 시간이 지나면서 멋진 노을빛을 볼 수 있을까,고당봉 위에 한참을 서 있어보지만, 해가 지면서 점점 추워진다.

해는 지고...희미한 안개 속에서 노을이 물들다...
▲ 금정산 고당봉 해는 지고...희미한 안개 속에서 노을이 물들다...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고당봉...해가 지고...하산을 서두르는 바쁜 발걸음...
▲ 금정산 고당봉...해가 지고...하산을 서두르는 바쁜 발걸음...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붉게 타오르는 노을은 볼 수 없는데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산을 내려가게 되지 않을까 싶어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제 막 하산하려고 바위를 건너는데 막 정상에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카메라를 꺼내고 삼각대를 설치하는 것을 본다. 이 시간에 혼자서 산행을 오는 것을 보니 산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인 모양이다.

하산 길, 달빛 마주 보며 걷다

우리는 금정산 고당봉을 등 뒤로 하고 올라왔던 북문 쪽 반대방향인 고당봉 뒤편으로 내려간다. 5시 35분이다. 바위들을 넘고 가파른 철계단을 지나 바위 구간을 지나 숲길로 내려선다. 숲에는 어둠이 빨리 찾아든다. 사배고개 쪽 길로 향한다. 모두들 하산한 것일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괜시리 마음이 급해진다.

고당봉 뒷쪽 계단길...
▲ 금정산 고당봉 뒷쪽 계단길...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가파른 계단길로 내려가다...
▲ 금정산 가파른 계단길로 내려가다...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얼마쯤 갔을까. 내려 가다보니 우리보다 한참 먼저 내려갔던 젊은 사람 둘이서 앞에 걸어가고 있어 반갑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천천히 걷는다. 또 얼마쯤 가다보니 한 쌍의 남녀가 우리 뒤에 걸어오고 있다. 앞에 두 사람, 뒤에 두 사람, 그리고 우리 두 사람...세 쌍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는 숲길에 점점 어둠이 찾아들고 있다.

창백하게 하늘에 떠 있던 달빛이 점점 생기를 띠기 시작한다. 우리 뒤에 오던 이들이 앞질러 간다. 맨 뒤에서 우리는 멀리 앞에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손잡고 걷는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달빛은 하얗게 더 하얗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언제였던가. 이런 달빛 속을 걸어본 것은...까마득히 오래된 것 같다. 문득 오래된 기억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하산 길...어두워지는 숲 길을 걷는 사람들...
▲ 금정산 하산 길...어두워지는 숲 길을 걷는 사람들...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마을에 교회가 없었던 어린시절, 면소재지까지 걸어서 교회에 가려면 공동묘지가 있는 산 고개를 언제나 넘어 다녔다. 교회 행사가 있어 저녁에 교회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던 날 밤, 무서움을 떨쳐내며 언니와 함께 넘었던 그 고갯길이 떠오르고, 정월대보름날 밤 달집 태우기를 하던 동네 사람들...별이 총총 달빛이 환한 여름밤, 파도소리 들으며 옥상에 올라앉아 달빛을 받아 일기를 쓰기도 했던 사춘기시절도 떠오른다.

앙상한 2월의 나뭇가지 사이로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생기를 띠는 달빛 보며 걷는 길...
▲ 달빛 산행 앙상한 2월의 나뭇가지 사이로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생기를 띠는 달빛 보며 걷는 길...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달빛을 받아 더욱 희게 빛나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밤, 들길을 걸어 새벽송을 돌던 기억...달빛에 얽힌 추억들이 호젓한 숲길에 말을 걸어온다. ‘저만치 앞서가는 님 뒤로 그림자 길게 드린 밤, 님의 그림자 밟으려 하니 서러움이 가슴 에이네~님은 나의마음 헤일까 별만 헤듯 걷는 밤, 휘황한 달빛 아래 님 뒤로 긴 그림자 밟을 날 없네.’노사연의 ‘님그림자’ 노래도 떠오른다.

2월의 앙상한 나무들, 그 높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달빛을 마주보며 걷는 길은 추억인 듯 애달프다. 도심 한가운데서 보던 달빛과 이 한적한 숲길에서 보는 달빛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곧 보름이렸다. 남편과 함께 손잡고 달빛 속을 걷는다. 낮은 빨리 사라지고 저녁이 깃을 넓게 벌리면서 밤은 조용히, 그러나 어김없이 짙게 물들여 놓았다.

밤이 깊을수록 달빛은 시리도록 더 하얗게 빛을 낸다. 범어사에 도착하니 저녁 6시 30분이다. 범어사는 어둠에 깊이 묻히고 석등이 여기저기 불을 밝히고 있다. 적막감이 감도는 범어사를 벗어나 주차장에 도착(6:40), 먼저 내려가던 두 팀은 이미 보이지 않고 주차장에는 이제 막 하산한 듯한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달빛은 소리도 없이 우리를 따라와 머리 위에 높이 떠 있다.

달빛산행

( 1 / 25 )

ⓒ 이명화

산행수첩
1.일시:2009년 2월 7일(토).맑은 뒤 약간 흐림
2.산행기점:범어사 앞 주차장
3.산행시간:3시간
4.진행:범어사 앞 주차장(오후3:40)-범어사(3:50)-북문(4:40)-금정산 정상(고당봉 801미터, 5:35)-하산(5:35)-하산(6:30)-범어사앞 주차장(6:40)


태그:#달, #금정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