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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는 일'을 멈춘 지 몇 달이 지났다. 그 좋은 일이 뭔가하면, 바로 새 책을 받고 읽은 뒤 소감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다. 출판사는 자연스러운 홍보가 되어 좋고, 나는 온라인에 독후감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걸 보는 게 좋았다. 게다가 무료로 받아 본 책들 가운데 주변 사람들에게 더 필요하다 싶은 책들은 선심 쓰기에도 좋았다.

서평 쓰기 3년, 내가 깨달은 것은...

카페에서 보낸 서평단 당첨자 및 이벤트 쪽지.
 카페에서 보낸 서평단 당첨자 및 이벤트 쪽지.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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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터넷에 서평을 쓰기 시작한 것은 한 선배를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 들여 쓴 책을 펴낸 뒤에 '돈' 들여 광고할 여력이 없어 홍보에 애를 먹고 있던 선배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쉽고 도움이 될 만한 일은 인터넷 서평 쓰기였다.

억지스럽지 않게 내가 본 느낌을 솔직하게 쓴 기사는 수천 명이 읽게 됐고, 판매와 연결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블로그에 스크랩되어 인터넷에 떠다녔다. 이후 선배는 새 책이 나올 때마다 후배인 나에게 빼먹지 않고 선물했다. 그러나 이제는 선배의 책이 나오면 서점에 가서 직접 사 보고 괜찮은 것만 기사화한다. 그게 선배에 대한 도리라는 것을 깨닫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동안 서평을 쓰면서 공짜 책도 많이 받았고, 덕분에 많이 읽었고, 적지 않은 원고료도 받았다. 언제부터인가는 굳이 이벤트에 신청을 하지 않아도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편집자들이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정성스러운 쪽지 편지와 보도자료가 책과 함께 왔다. 프로들에게 인정받는 것 같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받은 책들은 이벤트에서 받은 책보다 더 세심하게 읽게 되고, 그러다 보니 서평도 잘 쓰려고 애쓰게 됐다.

그런데, 공짜로 받은 책 가운데는 서평을 쓰기 민망한(?) 책들도 있었다. 할 수 없이 고민 끝에 소개하기 곤란한 책들을 따로 모아 돌려보냈다. 해당 출판사의 담당자가 당황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꼭 서평을 써 달라는 것은 아니었다"고 했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서평 쓰는 일을 줄였다. 내가 쓴 글이 선량한 독자들의 지갑을 공략하는 수단으로 쓰일 일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외려 가벼웠다.

엄마 서평단 모집에 댓글 수백개... 장난 아니네

한 육아카페 공지사항 게시글 내용. 서평이벤트가 많이 보인다.
 한 육아카페 공지사항 게시글 내용. 서평이벤트가 많이 보인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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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엄마들이 자주 가는 육아 정보 카페는 각종 기업의 홍보 이벤트로 북적인다. 몇 천 원짜리 유아용품부터 수백만 원짜리 수입 유모차까지 이벤트에 걸리는 상품은 늘 다양하고, 체험 이벤트에 참여하는 엄마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글 하나에 수백 개씩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며 '다들 어쩌면 그렇게 부지런하신지' 혀를 내두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처럼 책이나 보려는 사람들은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책 서평단 모집에도 열혈 엄마들이 몰리고 있다.

그 치열한 경쟁을 지적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경쟁이 치열해도 먼저 사용한 사람의 후기가 정직하다면 괜찮다. 하지만 무료 이벤트에 당첨되어 사용 후기를 쓰게 되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의 홍보맨으로 활동하게 되면, 제품이 불만족스러워도 본전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불평하지 않게 된다. 더구나 기업체에서 후기를 검토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칭찬 일색으로 쓸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고 만다. 그래야 다음 번 이벤트나 다른 기업 제품도 체험해 볼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한 온라인 서점에는 약 2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대표적인 북 클럽이 있다. 네이버나 다음 카페에 비해 회원 숫자는 적지만, 활동 면에서는 십만 명 이상을 자랑하는 대형 카페에 뒤지지 않는 내실 있는 클럽이다. 이곳의 최대장점은 엄마들의 솔직한 리뷰와 독후활동 소개, 소모임 활동, 주제별 칼럼니스트 활동, 출판사 탐방 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점이다. 하지만 이 카페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간 책 비평했다가 글 삭제 요구 받기도..."

이 카페에서 활동해온 A씨는 출판사 평가단과 네이버 카페 등 다양한 곳에서 서평 활동을 해 온 베테랑이다. 외동아이를 키우면서 사회성을 길러주고 싶었다는 그는 30개월 무렵부터 영어 소모임 활동을 시작으로 10여 년째 다양한 활동으로 아이와 소통하는 엄마다.

A씨는 이 카페에서 활동하면 약간의 사례를 받는데, "뭔가 찜찜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줄 책을 사곤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엄마들이 출판사가 원하는 리뷰만 쓰게 되면 결국 다른 엄마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게 되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서 "문제가 있는 책에 대해 따끔한 서평을 올렸다가 해당 출판사로부터 글 삭제 요구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출판사 입맛에 맞는 서평만 쓰게 되는 세태를 꼬집었다.   

뭐든 지나치면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인터넷 서평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홍보 광고비를 많이 쓸 수 없는 출판사 처지에서는 몇 십 권의 책을 활동적인 블로거들에게 선물함으로써 어렵지 않게 입소문 마케팅을 할 수 있어 좋고, 엄마들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가정경제에 약간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활동이기에 좋다. 하지만 자유로운 글쓰기 대신 칭찬 일색의 후기만 더해진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블로거 서평의 공신력이 떨어질 것은 자명하다.

발자국 없는 눈밭을 걸을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내 발자국이 뒤에 따라 오는 이에게 길이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평도 그렇다.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리브로, 인터파크 등 인터넷 서점에 등록된 독자리뷰를 보고 책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는 출판사의 소개 글보다 같은 독자 처지에서 올려둔 리뷰의 힘이 훨씬 세다. 그러한 특성을 이용해 몇몇 블로거들에게 무상으로 책을 제공하고 책에 대해 '뻐꾸기'만 날리게 하는 것은 돈을 지불하고 책을 사주는 진성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독자여, 좀 더 까탈스러워져라

건강한 독자가 건강한 출판문화를 만들 수 있다.
 건강한 독자가 건강한 출판문화를 만들 수 있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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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혹은 약간의 택배 비용만 내면 공짜로 새 책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일이 분명하다. 출판사로서도 그만두기 어려운 행사일 것이다. 경기가 나빠져 책을 사 보는 일도 전에 비해 더 주저하게 되는 요즘, 애써 눈감기 전에는 그만두기 어려운 서평 이벤트.

다음 독자에게 마음의 빚을 지지 않기 위해서는 독자 자신이 조금 뻔뻔하다 싶을 만큼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주례사 서평'으로 출판사의 영업 활동에 일익을 담당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 문제이지만, 전체 출판계의 미래를 위해서는 결코 옳거나 좋은 일이 아니다.

건강한 독자가 건강한 출판문화를 만들 수 있다. 초대권만 밝히는 공연이 그 질을 답보하기 어려운 것처럼, 제값 주고 보는 독자,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는 '까탈'스러운 독자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좋은 책이 나온다.

세종로를 지나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문구가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이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럴수록 더 좋은 책 문화를 위해 독자 스스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공짜 책에 줄서서 맘에도 없는 극찬을 하는 순간, 정작 정당하게 돈을 지불한 독자는 '서평에 낚였다'며 마음을 닫을지도 모른다. 공짜 책에 서평 쓰기 전, 한 번쯤 내 글을 보고 지갑을 열 이웃의 얼굴을 떠올려 볼 일이다.


태그:#서평, #출판사, #강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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