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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 식당에 욕쟁이 주인 할머니가 있어 그 욕을 먹으려고(?) 찾아가는 단골손님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할머니에게 욕은 욕만이 아닌 것. 아마도 그 할머니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질곡어린 역사의 한가운데를 지나 온 노인들에겐 욕지거리 자체가 삶인 듯하다.

 

저녁시간이 되어 한 할머니가 탄 휠체어를 밀고 식당으로 들어섰을 때다.

 

"빌어먹을 ××년? 그건 욕도 아니지"

 

“이런 빌어먹을 ××년, 지가 그런다고 눈이나 하나 깜짝할 거 같아? 지기미 ××럴!”

“어따 대고 지랄이여? 이 년이. 니가 먼저 떠들어대니까 그런 거지. 이 ×같은 할망구야. 저건 언제나 뒤져? 아이구 분해.”

“어? 니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어? 그래 어디 해보자! 아들 있다고 자랑하는 거야?”

“누가 아들 자랑한데? 어이구, 귓구녕이라고 듣지 못하면 지랄허구 떠들지나 말지. ××년!”

“…….”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한 할머니가 소매를 걷어 올린다. 한 직원이 잽싸게 달려가 일어났던 자리에 주저앉힌다. 그러나 욕지거리의 핑퐁게임은 계속된다. 잠시 분탕한 욕들이 이웃나들이를 하며 오가는가 하더니 벌써 음식들이 이리저리 나뒹군다.

 

마파두부가 몰골사납게 식탁 밑이며 의자 위로 탁구공 튀듯 한다. 콩나물은 이미 앰한 할아버지 머리위에 얹혔다. 된장국물이 주위의 사람들과 주변에 엎질러졌다. 직원들이 벌써 그중 한 할머니 귀에 대고 그만하라고 말한다. 할머니가 귀가 먹어 잘 듣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도 좀 들리는 왼쪽 귀에 대고 외친다.

 

“할머니, 그만 해요! 그런 거 아냐? 욕하지 마요.”

“왜 무시해? 지깟 것이 뭔데 날 무시해?”

“할머니 누가 무시했다고 그래. 누구도 할머니 무시한 사람 없어요.”

“무시한 거 아니면? 남은 두부 좀 더 먹겠다고 한 게 뭐 그리 잘못이야? 나만 좀 더 먹으려면 지랄들을 허구 그래. 왜 나만 무시해? 저 잡놈도 마찬가지야!”

 

할머니가 가리키는 ‘저 잡놈’은 다름 아닌 직원이다. 당뇨에 고혈압, 온갖 질병은 다 가진 할머니, 몸은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살이 쪄 지난주부터는 휠체어가 아니면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 되었다. 보행기로 더듬더듬 걷던 걸음도 이젠 휠체어로 대신한다. 그러니 어찌 직원이 그의 아무리 먹어도 차지 않는 먹성을 채근하지 않겠는가. 적당히 드시라고 말이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욕지거리뿐.

 

욕지거리 경연대회? 우리 마을이 1등이지

 

 

그렇게 자신을 챙겨주는 고마운 직원이 그녀에겐 ‘저 잡놈’인 거다. 욕을 양동이로 뒤집어 쓴 직원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자신의 일만 계속하고 있다. 다른 직원이 그 할머니 달래기에 나서서 애를 써보지만 그리 녹록하질 않다.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던 할머니도 직원을 거들어 “작작 먹어!” 했다가 그 봉변을 당한 것이다.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분이 자신에게 해코지가 된다고 생각하는 말은 어찌나 귀신 같이 잘 들으시는지.

 

우리 ‘사랑의마을’ 어르신들은 대부분 욕지거리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분들이다(?). 어디서 배운 욕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런 욕으로 인하여 상대방이 받을 충격이 무엇일지, 그런 저주로 인하여 입을 상처가 얼마나 깊을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뿜어대는 자동분사기 같은 거다.

 

욕으로 시작하여 욕으로 하루를 마감하고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 전혀 지치지 않는 곳, 내가 그네들 어르신들과 어울려 사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다. 그래서 내가 전하는 성경 말씀이 그들에게 먹히기나 하는 건지, 하루에도 수백 번씩 회의와 의심과 고뇌와 번민 사이를 들락거려야 한다. 하긴 이제는 그런 것들을 들락거리는 것 자체가 호사요 사치란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마음과 생각, 말과 행동이 거룩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보이는 여러분의 모습과 숙소에서 보이는 여러분의 모습이 같아야 합니다. 성경은 옛사람은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하지 않습니까. 옛날 가졌던 못된 습관과 말본새는 버려야 합니다. 거룩한 입으로 욕지거리를 일삼는 것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런 유의 설교를 얼마나 했던가. 그러나 우리 마을의 어르신들에게는 이런 설교(메시지)가 그저 설교(잔소리)일 뿐이다. 그들의 고된 삶이 그랬던 것을 이제와 어찌 바꿀까 하는 생각이 들 때 힘이 쭉 빠진다. 평균나이 85세, 이 지난하고 고된 세월들이 그깟 설교 몇 번으로 묻힌다면, 아마 목회 못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다.

 

빨리 죽게 기도해 달라고? 새빨간 거짓말이지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지 수분이 지난 후에도 욕쟁이 할머니가 씩씩거리고 앉아 있다. 식사할 생각도 안 하고 말이다. 내가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어르신, 그 직원이 할머니 위해서 그런 거예요. 화 풀고 빨리 진지 드세요. 그리고 앞에 할머니도 할머니 보고 그런 거 아니에요. 자, 빨리 진지 드십시다.”

“뭐가 아니에요? 내가 미워 그런 거지. 빨리 죽어야 할 텐데. 목사님, 나 빨리 죽게 기도해 줘요.”

“에이, 어르신도 그런 것은 기도하는 거 아녜요. 때 되면 하나님이 부르시지…. 자, 드십시다.”

 

그때야 못 이기는 척 수저를 드신다. 잠시 후 다시 차려진 자신의 밥상에 자기 몫을 다 드시곤, 예의 그 앙칼진 목소리로 외치신다. 전혀 기가 안 죽으셨다. 아니 더 살기등등하시다.

 

“나 밥 좀 더 줘요! 고걸 먹으라고 준 거야? 배고파 죽겠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직원들과 어르신들이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거린다. 금방 그녀의 입에서 ‘빨리 죽게 기도해 달라’고 한 것이 맞는가. 하하하. 오늘도 이렇게 하루는 기울어가고 있다. 욕으로 문을 열고 욕으로 문을 닫는 어르신들과의 하루는 왜 이리 길기만 한지. 아직 난 그들의 삶에 녹은 욕으로 점철된 인생이란 걸 모르는가 보다.

 

어르신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내지르는 큰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입에 담기 민망한 욕을 들었을 때는 얼굴은 물론 가슴조차 발갛게 물드는 걸 보면, 아직 멀었다 싶다. 그러나 내 어머니에게도 살아생전 못하던 짓들(음식을 먹여드린다거나, 콧물을 풀어드린다거나, 오물을 닦아드리는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면, 그렇게 조금씩 동화되는 것이려니 생각도 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충남 연기군 소재 '사랑의마을'이라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신앙생활을 돕는 목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른과 함께살기]는 그들과 살며 느끼는 이야기들을 적은 글로 계속 올라옵니다.
*이기사는 갓피플, 당당뉴스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랑의마을, #어른, #어르신, #노인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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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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