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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신남동 버스정류장에서 부녀자를 유인하는 현장검증을 하는 가운데, 모자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1일 오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신남동 버스정류장에서 부녀자를 유인하는 현장검증을 하는 가운데, 모자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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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사건 피의자 '얼굴'을 둘러싼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이런 흉악범의 얼굴은 공개해 세상에 폭로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반대 주장은 물론, 일부 언론을 통해 피의자 얼굴이 공개된 이후 후폭풍(?)까지 만만치가 않다.

경찰은 이에 발맞추어 흉악범 얼굴 공개에 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연쇄살인범과 유아성폭행범을 공개 대상으로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 1월 31일 <중앙일보>가 "흉악범의 인권보다는 사회적 안전망이 우선"이라며 피의자의 사진을 전격 공개한 순간부터 이러한 논란은 충분히 예견되었다.

흉악범의 인권보다는 사회적 안전망이 우선?

<조선일보>가 지난 31일 연쇄살인 용의자 강씨의 얼굴을 공개한 기사.
 <조선일보>가 지난 31일 연쇄살인 용의자 강씨의 얼굴을 공개한 기사.
ⓒ <조선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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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피의자의 사진은 물론 가족관계와 군 경력을 필두로 심지어 고교 생활기록부까지 뒤져서 지면에 공개했다. 그리고는 감정을 듬뿍 담아 "그는 인간의 몸을 빌린 사악한 악마였다"라고 적었다(난 정색을 하고 말하는 <중앙일보>와 <조선일보>가 사실 더 무섭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연쇄살인범에 분노하고 있던 시민들은 더욱 거칠어졌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은 물론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몰려가 테러 수준의 싸구려 욕설과 험악한 악다구니를 배설물처럼 쏟아냈다. 이것이 <중앙일보>가 말한 '사회적 안전망'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피의자의 얼굴 공개 여부를 두고 분노에 차서 뜨겁게 달아오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피의자 얼굴 공개 여부가 아니다. 주목할 것은 그가 그토록 무서운 살인을 했다는 사실이고, 그에 따른 법의 심판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미네르바가 누구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이버 상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논점인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이성은 젖혀두고 격앙된 분노를 풀어내기 위해 멱살부터 잡고 귀뺨이라도 한 대 올려붙여야겠다며 저잣거리의 싸움판 흉내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 연쇄살인죄에 대한 법적 처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의 얼굴 공개 여부가 쟁점이 되는 것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일이다. 논점 일탈이다.

죄 지은 자는 '법'이 심판하리라

분명히 말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자는 그에 따른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나 역시 연쇄살인 피의자의 범죄 행위를 옹호하거나 두둔할 생각은 없다. 죄 없이 억울하게 죽어간 피해자들의 넋과 그들의 가족이 겪고 있을 무서운 슬픔의 고통을 어찌 위로할 수 있을까. 대신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 숙연해질 뿐이다.

그러나 격앙된 감정을 앞세운 충동적 행위들로 인해 본질은 외면되고 분노만 남아 외연을 확대한다면 이는 모두에게 불행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가해자의 인권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감정상으로는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겠지만 가해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법과 질서의 권위도 온전해진다. 그래야 법을 앞세워 개인을 억압·통제하려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감정적으로 분풀이를 해도 된다는 생각은 무법천지의 조폭세상을 만들수도 있다. 연쇄살인범이든 아동성폭행범이든 그들의 인권은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 그보다 가볍고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인권도 보장받을 수 있다. 감정을 앞세운 마녀사냥식 인민재판은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 뿐이다. 감정의 회오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후회만이 남는다.

연쇄살인의 충격으로 달아오른 감정을 이제는 누그러뜨릴 때가 되었다. 이성을 회복하고 냉정하게 사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더불어 누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든 그들 역시 '사악한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하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태그:#연쇄살인,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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