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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조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최저임금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주요 골자는 지역별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60세 이상 근로자의 최저 임금을 당사자 동의하에 감액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4천원.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월 83만6000원(44시간은 90만4000원)이다. 

이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자 노동계와 야당은 물론 국가인권위조차 재검토를 요구했다. 하지만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은 또다시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이 발의한 최저임금법 일부개정안에 대해 최저임금 생활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오마이뉴스>는 그들을 찾아 나섰다.   

#. 장면 1 - 대학교 환경미화원 "돈 없이 나이만 먹은 죄"

대학교에서 청소 업무를 하고 있는 홍아무개씨
 대학교에서 청소 업무를 하고 있는 홍아무개씨
ⓒ 김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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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고무를 입힌 목장갑을 끼고 쓰레기 봉지를 묶고 있던 홍아무개(68)씨는 최저임금개정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돈 없이, 나이만 먹은 게 죄"라는 푸념이 이어졌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홍씨는 "최저임금이 감액되면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며 "왜 자꾸 없는 사람들 돈을 깎으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지금 돈으로도 살기가 힘든데"라고 말했다.

현재 홍씨는 작은 단칸방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용역업체를 통해 월 75만원 정도를 받고 있지만 이 돈으로는 생활이 빠듯하다. 최근 부쩍 오른 물가와 각종 공과금, 병원비와 약값 등을 빼면 오히려 돈이 부족해 자식들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라고 한탄한다. 하지만 자식들의 형편도 그리 좋지 못해 매번 용돈을 받기는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

그는 학교 환경미화가 주업무지만 가끔 학교 행사나 교수실 이사 등 잡무에도 동원된다고 한다.

홍씨를 인터뷰하는 동안 다른 구역에서 청소를 마친 김아무개(여, 62)씨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관심을 보였다. 최저임금법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역정을 냈다.

"아휴, 지금도 나는 60만원을 받는데 이 돈으로 그것들(국회의원)한테 와서 생활해 보라고해. 지들은 몇 억씩 해 처먹으면서 왜 자꾸 없는 사람들 돈만 깎아 내려고 그러는 거야."

김씨도 홍씨처럼 청소가 주업무이지만 여자의 경우 무거운 짐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용역업체에서는 월급을 더 적게 준다고 했다.

지금도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은 하루 10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이중 2시간은 휴식시간이지만 그 시간마저 학교에서 일을 하거나 대기상태다. 결국 임금을 줄이기 위한 형식적 휴식 시간인 셈이다.

#. 장면 2 - 지하철 청소부 "사람 하나 죽어야 정신 차린다"

서울 지하철역을 청소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지하철 청소원 서울 지하철역을 청소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김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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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역 구석에 마련된 용역 사무실 문을 열자 새우잠을 자고 있는 김아무개(65)씨와 박아무개(55)씨가 보였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김씨가 "무슨 일이냐"며 얼굴을 찌푸린다. 휴식시간을 방해받았다는 것이다. 그 휴식시간이라는 게 9시간 근무 중 30분씩 2번.

하지만 최저임금개정안에 대해 설명하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던 처음과 달리 "사람 하나 죽어야 정신을 차린다"며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어야 일이 풀리는 나라"라고 말하면서 뉘었던 몸을 일으켰다.

김씨와 박씨는 주말을 제외한 낮 12시부터 밤 9시까지 지하철역과 화장실 등을 청소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대가 바뀌어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새벽근무도 하고 있다. 넓은 지하철 역과 화장실 등을 청소하려면 허리가 아파도 쉬지 못하기 때문에 휴식 시간만 되면 허리를 바닥에 대고 눕는다고 한다.

이렇게 밤을 새가며 청소를 해도 김씨가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75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개정안이 통과돼 최저임금을 감액하자고 하면 돈을 덜 받고라도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여기는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아저씨 돌아가시고 혼자 벌어서 사는 노인네들도 많거든. 그런데 그 사람들 돈을 더 깎겠다고 하면 그거는 안 되지. 근데 또 막상 깎자고 하면 해달라는 대로 해줘야지 어떻게 해? 안 그러면 다 잘라 버릴 거 아냐."

박씨도 근심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60세 이상 노동자에게 임금을 적게 줘도 된다면 60세와 나이차이가 적은 자신이 해고 1순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60세 임금 감액에 50세는 해고?

서울 상암동 한 건물.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에서 걸레를 빨고 있던 A(50대)씨에게 최저임금문제를 물었다. 그러자 이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CCTV가 없는 건물 구석으로 기자를 데리고 갔다.

"여기는 다 CCTV가 있어서 잠깐이라도 딴 짓하면 바로 사람이 내려오거든요. 그래서 이야기하려면 이리로 와야 해요."

그의 말대로 10분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용역업체 직원이 내려와 그를 찾았다.

이런 감시를 받으면서도 그는 아이들 학비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아들만 둘인 A씨는 "대학 학비를 대려면 청소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또 "법이 통과되면 50대보다 돈을 덜 줄 수 있는 60세 이상으로 근로자들을 모두 바꾸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했다.

이런 걱정에도 A씨는 새벽 5시까지 회사에 나온다. 6시가 정상 출근 시간이지만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청소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이보다 보통 1시간은 일찍 와야 한다. 또 한 명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구역을 내주기 때문에 퇴근 시간 안에 일을 끝내려면 근무시간을 스스로 늘려야 한다고 했다.

하루 10시간을 근무하지만 점심시간과 30분씩 2번 있는 휴식 시간을 빼면 8시간을 일하게 된다. 물론 임금도 8시간 일한 만큼만 나온다. 게다가 일을 빠진 사람의 월급은 깎지만, 빠진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에게는 수당도 없다. 용역업체가 빠진 사람의 일당을 챙기는 것이다.

 #. 장면 3 - 아파트 경비원 "깎으라면 깎아야지..."

아파트 경비원이 쓰레기장을 정리하고 있다.
▲ 아파트 경비원 아파트 경비원이 쓰레기장을 정리하고 있다.
ⓒ 김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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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의 A 아파트 경비초소에서 근무 중인 경비원 김아무개(67)씨는 좁은 초소에서 24시간 근무하며 110만원을 받는다. 24시간 중 5시간은 휴식시간이지만 딱히 갈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초소에서 근무한다.

또 다른 서울 관악구 B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홍아무개(65)씨는 최저임금개정안의 내용을 듣자 "노인들을 도와주지는 못하면서 100만원 돈을 더 깎겠다는 것이냐"며 화를 냈다.

"지금 용역업체에서 주는 돈이 105만원이에요. 그런데 이걸 여기서 더 깎자고 그러면 어떻게 해? 마누라랑 둘이서 이 돈 가지고도 살기가 힘든데."

그는 세금을 떼고 정확히 102만원이 실제 수입이라고 했다. 아파트 관리비, 식비, 통신비 등 각종 공과금을 내면 남는 게 전혀 없다고 했다.

"점심 식사비를 줄이려 밥도 경비실 한쪽에서 직접 해먹고 있다"는 홍씨는 "생활비도 빠듯해 자식들에게 생활비 일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김씨도 용역업체에서 임금액을 낮출 것을 요구하면, 임금을 낮추서라도 일을 계속해야 한다. 당장 생활비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이 때문에 다른 일자리도 찾기 힘들어 일단 적은 수입이라도 계속 얻으려면 해 달라는 대로 해줘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깎자는데 안 깎으면 바로 짤리게? 깎으라면 깎아야지. 지금도 65살 넘은 사람들은 근로계약을 6개월마다 해요. 65살 넘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르겠다는 소리거든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월급 깎자는데 안 깎고 버티면 어떻게 되겠어?"

홍씨의 경우 오전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6시까지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하고 있고 이 중 6시간은 휴식시간으로 정해져 있어 실제 근무를 하더라도 시급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 야간의 경우에도 주간 시급을 적용해 월급을 계산하고 있었다.

또 관악구 C 아파트에 근무하는 박아무개(61)씨. 그는 급하게 어디론가 뛰어 가고 있었다. 화장실을 갔다가 경비초소로 뛰어가는 것이다. "초소를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안 되기 때문에 급하게 가는 것"이라고 했다.

박씨의 근무조건도 홍씨와 같았다. 올해로 3년째 경비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는 "60세 이상 임금을 줄인다고 무엇이 달라지냐"고 물었다.

"임금 줄이면 아파트에서 경비원을 더 쓴답니까? 아니면 청소하는 사람들을 더 고용한데요? 아니면 우리한테 월급 덜 준다고 그 돈으로 사람을 더 쓸 것 같아요? 결국 못 사는 사람들 월급만 더 깎이는 거에요."

<오마이뉴스>가 최근 만나본 50~60대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개정안 소식을 전해듣고 분노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기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했다. 자조 섞인 분노인 셈이다. 

김성조 의원실 "일자리 늘어날 것" 낙관... 인권위 "최저임금제 취지 역행"

이에 대해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의 지속적 상승으로 중소기업의 부담이 가중돼 최저임금법 위반과 취약계층의 고용기회 축소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근로자와 상호 협의하게 하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김 의원이 입안한 법의 내용은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조차 국회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권위는 작년 12월 18일 지역별 최저임금제 도입, 최저임금 감액적용 대상 확대, 숙식제공비용의 임금공제, 최저임금 결정방식 변경 등 최저임금법 일부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는 조항들이 최저임금제도의 취지에 역행한다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어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면 저소득 취약계층이 더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며 "중소기업들의 부담 완화 문제는 정부 지원책을 통해 해결해야지, 최저임금을 낮춰 저임금 근로자들에게 기업의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2006년 현재 45%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며 "이는 OECD 평균치인 13%의 3배 이상 되는 것으로 고령자의 빈곤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최영미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 사무처장은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80세까지 왔고 퇴직연령도 차츰 연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60세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감액한다는 것은 고령화 사회를 역행하는 것"이라며 "현재 60세 이상 근로자가 받고 있는 최저임금은 결국 최고임금"이라며 최저임금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김태헌 기자는 <오마이뉴스> 9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최저임금법, #김성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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