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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발표됐던 중단편소설 중에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만 모은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올해 선택한 소설은 김연수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다. 소설은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하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잠을 못 잔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지 모른다. 남자에게는 코끼리가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진지하게 남자의 곁에 있는 존재다. 코끼리는 발을 들고 남자의 심장을 살짝 밟은 채 힘을 줄 것인지 말지 고뇌하는 척을 하기도 한다. 그 앞에서 남자는 무기력하다. 어느 고통을 지닌 남자의 모습이다.

 

소설은 상징적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고통을 ‘코끼리’라는 것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그 모양새가 소설의 것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다가설 듯 다가서지 않는, 안심해도 될 것 같지만 그때를 노려 괴롭히는 어느 고통에 관한 것을 그렸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코끼리가 아니더라도, 오랑우탄이나 코뿔소, 토끼, 어쩌면 메머드 같은 것과 함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이 소설의 의미는 단순히 소설의 안쪽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김연수라는 작가의 입지를 굳히는 계기도 된다. 김연수는 2년 전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하는 것과 동시에 근래에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로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이상문학상을 받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김연수가 한국 문학의 중심에 섰다는 것을 확고하게 입증하고 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수상작 외에도 우수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그 또한 한국 문학의 오늘을 바라보는 기회가 된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이혜경, 전성태, 박민규, 정지아, 조용호, 윤이형, 공선옥 등의 이름이 보인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작가는 물론 자신만의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두루 만날 수 있는 셈이다.

 

박민규의 소설 ‘龍龍龍龍’은 현대를 살아가는 마지막 무림고수들 이야기다. 세상을 호령하던 그들은 무림의 시대가 끝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일제시대가 지나가고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 독재를 행하던 시절에도 있었던 게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들이지만 그들은 세상과 ‘불협’하고 있다. 왜 그런 걸까? 자본이라는 거대한 벽에 밀려 버린 것일까? 소설 속 등장인물의 말처럼 ‘영웅’시대가 끝나고 ‘소녀’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인가?

 

박민규 소설은 다른 단편소설에서도 만났듯 엉뚱한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촌철살인의 ‘말’들이 넘친다. 이미지로 흥분하는 사회, 돈이 전부인 사회를 비꼬면서 얄팍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꼬집는 소설은 무림 고수들의 최후에 이르렀을 때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굳이 박민규의 소설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여운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만큼 ‘龍龍龍龍’은 그의 저력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2005년에 등단해 작품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윤이형의 ‘완전한 항해’는 미래사회의 어느 모습을 다루고 있다. 그곳에서는 과학의 힘으로 인간이 ‘튜닝’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다른 자아와 합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좋은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작품 속 ‘그녀’는 몇 차례 튜닝으로 완벽해진 상태다. 그럼에도 그녀는 또 다시 튜닝을 하려 하는데 이번 대상자는 좀 뜻밖의 존재다. 존재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미지의 존재다.

 

그녀는 그 존재를 알아갈수록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튜닝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한다. 이상한 일이다. 왜 갈등하는 것일까? 윤이형은 예측 성공률이 99.82%라는, 어쩌면 과학이 모든 것을 만들어가는 그 시대에서 그만의 힘으로 존재하려는 자아의 욕구를 생생하게 그렸다. 새롭게 비상하는 소설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든다.

 

그 외의 소설들도 수상작이 아닐지라도 그만의 매력으로 한국 문학의 오늘을 엿보는 계기를 준다. 하나의 작품집을 보면서 이런 것을 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올해와 내년, 어쩌면 5년 뒤의 한국 문학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이상문학상 작품집>, 올해도 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놓치기에 아까울 만큼 풍족하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2009년 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문학사상사(2009)


태그:#이상문학상, #김연수, #박민규, #윤이형, #공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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