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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입각 해결사'는 청와대가 아니라 여당이었다.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후임과 관련,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30일 오전까지만 해도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이달곤 의원의 행정안전부 장관 내정 사실을 '발설'(?)하고 말았다.

 

박 대표가 내정 사실을 발설하자, 이 대변인은 오후 브리핑에서 "제가 오버했던 것 같다"고 실수를 자인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를 속인 '양치기 소년'이 됐다"고 비꼬고 있다.

 

박희태 대표의 '발설'... "청와대 요청으로 이달곤 의원 추천"

 

박 대표는 이날 오후 1시 30분께 국회 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에서 행정안전부 장관 후임에 이달곤 의원을 추천했다"며 "훌륭한 인품과 지방행정의 전문성 등을 참각해 조금 전에 청와대 건의했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당이) 최종적인 결정권자는 아니지만 (이 의원이) 대통령으로부터 장관 임명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제서야 답을 하게 돼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이달곤 의원이 행정안전부장관에 내정됐음을 확인해주는 발언이다. 이후 청와대도 이 의원의 내정 사실을 시인했다.

 

행정안전부장관으로 내정된 이달곤(56) 의원은 동아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 하버드대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한국행정학회·협상학회 회장을 거쳐 지난해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이동관 대변인은 "솔직히 결정의 흐름이 좀 빨라졌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며 이 의원의 내정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라는 뉘앙스를 보였다.

 

하지만 박 대표의 설명은 이 대변인과 많이 달랐다. 박 대표는 "며칠 전부터 깊이 논의했다"며 "(청와대와) 계속 교감하면서 몇몇 분들 중에서 당이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청와대가) 행정안전부장관 후보로 여러 사람을 물색한 것 같은데 잘 안되고 시간이 가니까 최종적으로 당에서 논의해서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의논이 돼서 당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즉 청와대가 당에 '입각할 정치인'을 추천하라고 요청했다는 얘기다. 이는 청와대가 정치인 입각을 며칠 전부터 검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4시간여 만에 '양치기 소년' 되다... "내가 오버한 것 같다"

 

 

그런데도 이동관 대변인은 이날 오전 9시 20분께 기자실을 찾아와 "여러 차례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자천타천형 기사가 난무하고 있어 정리를 해드리는 게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정치인 입각은 없다. 지난번 박희태 대표와 만날 때 이번에는 개각폭도 적고 지금 경제부처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이미 밝히신 바가 있다. 물론 행정안전부장관 인사가 다시 유턴하는 바람에 그런 의견개진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쨌건 현재로서는 그 원칙과 방침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거듭 밝힌다."

 

단호한 어투였다. 하지만 박 대표의 '발설'로 인해 이 대변인은 4시간여 만에 '양치기 소년'이 되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이 대변인은 이와 관련 "어디 보니 (내가) 허언했다고 비판했는데 비판한다면 겸허히 받겠다"며 "본뜻은 그런 게 아니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또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말한 것과 관련) 내가 오버한 것 같다"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이 대변인은 "솔직히 말하면 오전까지 (김무성 의원 등 박근혜계) 특정 인물을 두고 혼선이 계속돼서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얘기한 것"이라며 "국회의원 신분을 갖고 있지만 당내 최고의 행정전문가의 성격이 강하다"고 해명했다.

 

'이달곤 내정자가 행정전문가이지 정치인은 아니다'라는 변명인데, 이는 '눈가리고 아웅하기'에 불과하다.   

 

특히 이 대변인은 '박 대표가 행정안전부장관의 내정 사실을 발표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의미는 설명 안해도 다 알텐데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쓰면 되는 것 아니냐"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이 대변인은 '어떻게 장관 내정자를 당에서 발표하나, 앞으로도 그럴 수 있나'라는 추가 질문에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니까…"라고 말을 얼버무렸다.


태그:#이동관, #박희태, #이달곤, #행정안전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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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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