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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입구에 설치된 정광호의 구리선으로 만든 '달항아리'와 뒤에 프랑스작가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의 조각이 보인다
 갤러리현대입구에 설치된 정광호의 구리선으로 만든 '달항아리'와 뒤에 프랑스작가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의 조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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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강남(대표 도형태)에서 신년 첫 전시회로 '화가와 달항아리전'이 2월 10일까지 열린다. 부제는 '화가들이 사랑한 달항아리'다. 이번 전에는 김환기, 도상봉, 구본창, 강익중, 박영숙 등 근현대화가, 도예가, 조각가, 사진가 등 16명의 작품 80점을 선보인다.

오랜 세월 만들어진 다양한 장르의 달항아리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관객입장에서는 참 즐거운 일이다. 잠시 삶의 시름을 내려놓고 고향의 달처럼 정답고 포근한 항아리를 보면서 삶의 여유와 활력을 되찾으면 어떨까싶다.

조선백자는 고려청자에 팝아트 옷을 입힌 격 

강민수 I '달항아리' 53×54cm 2008. 도상봉 I '정물(부분화)' 캔버스에 유채. 72×90cm 1967(오른쪽)
 강민수 I '달항아리' 53×54cm 2008. 도상봉 I '정물(부분화)' 캔버스에 유채. 72×90cm 1967(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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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강민수(1971~)의 달항아리는 안온하고 둥근 맛이 좋고, 음영의 미묘한 뉘앙스를 잘 살린 도상봉(1902~1977)의 달항아리는 그 투박한 질감이 좋다. 엉뚱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조선백자는 고려청자에 팝아트 옷을 입힌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조선백자는 고려시대인 12세기 순(純)청자에서 상감청자로 옮겨가며 그 절정을 꽃 피우다가 16세기에는 분청자(분청사기)로 분화된다. 그리고 17세기에는 명나라에서 유래한 청화백자가 등장하고 드디어 18세기에 와서 하얀 달빛을 닮은 백자의 전성시대가 온다. 

조선백자가 이런 예술품이 되는 데는 무려 600년 이상의 긴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렇기에 그 흰색은 그냥 흰색이 아니다. 삼원색이 합쳐야 흰색이 되듯 이 세상의 모든 색이 다 합쳐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백자의 흰색은 '모든 색의 통합'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도자기는 생활 속에 멋과 여유를 주다

도자기나 책이나 과일그릇이나 수석을 올려놓고 즐겨 보는 4층사방탁자. 그 중 도자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도자기나 책이나 과일그릇이나 수석을 올려놓고 즐겨 보는 4층사방탁자. 그 중 도자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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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물체에는 색과 형태가 있다. 달항아리는 흰색에 보름달 모양이다. 이 두 가지 조형요소는 오묘하다싶을 정도로 궁합이 잘 맞는다. 그렇게 군더더기 하나 없는 도자기를 빚으려면 잘 만들어야 한다는 욕심마저도 버려야 했을 것이다. 

달항아리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부자가 되지만 '4층사방탁자'에 무화과 담긴 그릇과 같이 놓으니 더 보기 좋다.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서 멋과 여유를 찾게 해 준다. 요즘 같은 불황기에 사람들 마음을 다독이는데 더없이 좋은 처방이 되리라. 

우주를 품은 여인인가 하늘을 향한 기원인가   

정광호 I '달항아리(The Pot 020776)' 구리선 76×76×77cm 2002. 김덕용 I '달항아리' 목판에 혼합재료 119×119cm 2007(뒤)
 정광호 I '달항아리(The Pot 020776)' 구리선 76×76×77cm 2002. 김덕용 I '달항아리' 목판에 혼합재료 119×119cm 2007(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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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호(1959~)는 '비조각적인 조각'이라는 개념을 두고 작업을 하는 조각가다. 이건 구리선으로 만든 도자기다. 달항아리가 옷을 벗고 속살을 드러낸 여인 같아 매혹적이다. 조선백자에 이런 신선한 감각을 접목시켜 참신하게 보인다.

김덕용(1961~)은 달항아리 사랑을 그의 절절한 시(우주를 품은 여인의 자태일까/ 하늘 우러른 기원의 숨결일까/ 깊은 밤 달을 품다)로 고백한다. 목판에 혼합재료를 써서 그런지 그의 항아리는 두툼한 질감에 중후한 맛이 나 의젓하고 듬직하다. 

어머니의 품 같은 달항아리, 한국미의 원류 

강익중 I '달항아리' 나무판에 템페라와 폴리머(polymer) 177×177cm 2008. 구본창 I '달항아리(Vessel_01)' C-프린트 154×123cm 2006(아래 오른쪽). 권대섭 I '달항아리'
 강익중 I '달항아리' 나무판에 템페라와 폴리머(polymer) 177×177cm 2008. 구본창 I '달항아리(Vessel_01)' C-프린트 154×123cm 2006(아래 오른쪽). 권대섭 I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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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달항아리는 다양한 조형으로 구현되어 어머니의 품 같은 푸근한 맛을 내고 있지만 그 공통점은 역시 위에서 보듯이 갸우뚱한 비정형적인 선에 있다.

나무판에 템페라와 폴리머로 만든 강익중(1960~)의 달항아리는 2008년 근작으로 그 질감의 촉촉함이 사람들 손에 닿을 것 같다. 그는 항아리를 "어머니의 어머니요, 형제요, 어릴 적 동네에서 본 하늘이요, 사람들의 소박한 꿈이 담긴 것 5천년 이야기"라고 고백한다.

사진작가 구본창(1953~)은 달항아리 작업을 하면서 어떤 깨달음이 온 모양이다. 그 과정을 "외형보단 내면에 흐르는 감정을 파고들고자했다"고 적어두었다. 권대섭(1954~)의 도자기는 또한 그 선이 오붓하고 그 색은 신기하고 고요하다. 

김환기 화백의 유별난 달항아리 사랑
 
김환기 I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캔버스에 유채 61×41cm 1956. '항아리와 매화가지' 캔버스에 유채 40×58cm 1958
 김환기 I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캔버스에 유채 61×41cm 1956. '항아리와 매화가지' 캔버스에 유채 40×58cm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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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화백은 그림뿐만 아니라 문장에도 빼어나다. 그의 수필집을 읽다보면 달항아리가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그는 50년대 후반기 한국전쟁의 악몽을 씻으려 했는지 귀신에 홀린 듯 미친 듯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를 소재로 한 그림을 즐겨 그린다. 

게다가 상반신과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손에 매화향이 나는 항아리가 들려있어 은은한 에로티시즘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것도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속으로 스며들어 더 매력적이다.

조선백자, 최대이윤 내는 우리미술의 종자돈

갤러리에서 대여한 조선시대의 보물급 달항아리 중 하나로 중후함과 후덕함이 넘친다
 갤러리에서 대여한 조선시대의 보물급 달항아리 중 하나로 중후함과 후덕함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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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도자기는 갤러리 측에 의하면 개인이 소장한 보물급 조선백자로 이번 전을 위해 대여한 것이란다. 청백색의 풍만한 허리선이 이루다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한국적 곡선미의 극치라는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멋진 도자기를 이윤을 가장 많이 내는 우리문화의 대표적 아이콘이자 종자돈으로 보면 어떨까. 이런 심미안이라면 우리가 평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얼핏 보면 비슷해도 그 모양과 색채는 다 달라  

고영훈 I '생명' 드로잉 162×128cm 2002(왼쪽 작품). 그 외에도 박영숙, 양구, 박부원, 강신봉 등의 도자기도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고영훈 I '생명' 드로잉 162×128cm 2002(왼쪽 작품). 그 외에도 박영숙, 양구, 박부원, 강신봉 등의 도자기도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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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달항아리들을 보면 다 비슷해 보이나 실은 다르다. 왜냐하면 작업할 때 흙의 질량이나 물기, 햇빛과 바람 등 자연조건 그리고 작가의 심경까지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왼쪽에 보이는 고영훈(1952~)의 두 작품은 드로잉인데도 진짜 도자기처럼 보인다.

2층 전시장에 전시된 여러 달항아리들을 보니 복덩어리 같은 달덩어리들을 여기저기서 두둥실 춤을 추는 듯하다. 우리네 삶에도 복과 행운이 그냥 굴러들어올 것 같다.

도자기의 세계화를 향한 끝없는 도전

이수경 I '번역된 도자기' 도자기파편 에폭시 24K금 120×52×10cm 2007.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된 '번역된 도자기' 2006(위). 이번 전에는 그의 작품이 출품되지는 않았다
 이수경 I '번역된 도자기' 도자기파편 에폭시 24K금 120×52×10cm 2007.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된 '번역된 도자기' 2006(위). 이번 전에는 그의 작품이 출품되지는 않았다
ⓒ 김형순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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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여기서 도자기의 세계화를 생각해보자. 이런 도전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 몸을 던져 맹렬하게 작업하는 작가가 있다. 그가 바로 이수경(1963~)이다.

그는 원래 회화를 전공했지만 2001년 알비솔라 국제도자기비엔날레에 갔다가 거기 도예가들이 백자사진만을 보고 조선자기를 만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귀국 후 이천 등지에서 유명도공들이 깨버린 도자기를 모아붙이는 콜라주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세계미술시장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그의 작품은 2007년 '스페인아르코아트페어'에서 한국작품 중 배병우의 '소나무(4만2천유로)'에 이어 2번째로 높은 3만8천유로에 낙찰되었다. 그리고 작년 파리에서 열린 '루이비통展'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하긴 누가 깨진 도자기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새로운 것은 언제나 기존의 틀을 깨야 가능하다. 그는 이렇게 높은 벽을 뛰어넘었다. 어쨌든 그의 이런 도발은 주변작가들에게 큰 자극을 주고 영감의 샘이 되리라.

덧붙이는 글 | 갤러리현대강남 02-519-0800 www.galleryhyundai.com 지하철 3호선 압구정동역 2번출구
2월 1일(일요일) 오후 2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달항아리 강연이 전시장에서 열린다.
전시기간 중 일요일점심 때는 나물과 오곡밥도 맛볼 수 있다.



태그:#달항아리, #김환기, #구본창, #강익중, #도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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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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