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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타고 싶고, 환율 무서워 해외여행은 부담스럽고…."
"다른 상품은 적자였는데, 제주여행이 효자 상품이었죠."


대학생 이가영(가명·22)씨는 이번 겨울 방학 때 미국으로 단기 어학연수 겸 여행을 가려고 했었다. 최대한 저렴한 방법으로 가려고 바쁜 학기 중에도 서울 종로와 강남에 있는 유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또 틈만 나면 인터넷으로 비행기 티켓과 현지에서 묵을 숙소를 알아봤다. 이씨는 조금이라도 비용에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면서 학교생활을 병행했다.

 

하지만 환율이 오르면서 어학원 수강료와 숙박비 등 현지에서 체류하면서 사용할 생활비가 늘어났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벌었던 돈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이씨는 결국 미국행을 포기했다. 모아둔 돈의 일부로 개강 전에 친구들과 국내 여행이라도 갈까 생각 중이라고 한다. 이씨는 "많이 아쉽죠.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미국은 다음에 가도 되는 건데 굳이 무리해서 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포기하고 가까운 데라도 놀러 가려구요"라고 아쉬워했다. 

 

 

2008년 제주도 관광객 5년 만에 500만명 돌파

오는 2월 말 결혼을 앞둔 직장인 윤동혁(가명·28)씨는 신혼여행지로 제주도를 선택했다. 신혼여행이라 특별히 해외로 나갈까 생각했지만 이제 사회생활 1년차인 윤씨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혼살림을 차릴 전셋집 계약금으로 1억2000만원이 들었고, 예식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신혼여행은 결국 국내로 가게 된 것이다. 윤씨는 "그래도 신혼여행이니까 비행기도 타고 멀리 떠나는 기분이라도 내고 싶어서 제주도로 간다"면서 "신부한테는 미안하지만, 다음에 더 좋은 곳으로 가기로 하고 신부와 좋은 추억을 쌓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해외로 가는 일정을 포기하고 국내로 발길을 돌린 경우가 이씨와 윤씨만의 경우가 아니다. 2008년 제주도 관광객이 580만명을 돌파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관광객 유치 목표를 달성한 것은 2003년 이후 5년 만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발표한 입도현황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582만2000명으로 전년 대비 7.2% 증가하였다. 이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 동안 관광객 평균 증가율 2.6%를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서, '제주방문의 해'였던 2006년과 비교할 때에도 약 1.4% 높다.

 


서울에 본사를 둔 A여행업체 한 관계자는 "빠져나가는 해외여행 수요를 잡기 위해 이벤트도 벌여보고 패키지 구성도 가격을 최대한 다운시키는 쪽으로 바꿔보았지만,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기불황으로 영세 여행업체가 문을 닫는 상황에까지 이른 가운데, 제주여행만큼은 나홀로 호황이다.

"비행기 타고 기분은 내고 싶은데"... 제주 신혼여행 시장 부활 

제주관광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경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엔화와 달러의 원화 대비 환율이 계속 폭등하면서 해외여행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국내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관광지식정보시스템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출국한 내국인은 1199만6094명으로 전년 대비 10% 감소했다.

 

그 가운데 관광을 목적으로 떠난 사람들은 30%정도 줄었다. 또한 인터넷 여행업체 웹투어 이진혁 홍보팀장은 "실제 예약 후 출발하신 분들 기준으로 해외 여행상품은 수요가 줄었지만, 국내 여행상품은 10% 증가했고 그중 제주 여행상품은 15% 정도 늘었다"고 전했다.

 


꼭 필요한 외국 현지 출장이나 친지 방문 등을 제외하고 순수 여행 목적으로 해외로 출국하는 수요가 많이 줄어들었다.

경기침체 위기가 오기 전에 수학여행을 해외로 가는 것이 사회적인 이슈가 될 정도로 학교마다 붐이었다. 하지만 기업체나 학교 단체 여행의 해외 수요가 국내로 흡수되면서 제주여행 인기가 높아진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가 1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학여행 등 단체 교육 여행이 전년 대비 12.4% 증가했다고 한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제주신혼여행시장이 부활한 것도 한몫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너도나도 "아무리 못해도 동남아라도 가자"던 해외여행의 거품이 사그라진 것이다. 예식 비용은 물론이고 신혼살림과 집을 장만하는 데도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 제주에서 여행업체를 운영하는 윤성호(가명·36)씨는 "예전에는 제주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하면 촌스럽게 느껴졌지만, 지난해부터 허니문 관광 예약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엔고 현상이 지속되면서, 가까운 일본여행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바쁜 직장인들 사이에서 주말을 이용해 일본을 다녀오는 올빼미 여행이 한때 유행이었지만 경기가 불안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심리가 위축되어 아예 지갑을 닫았다. 이에 반사적인 이익을 얻어 제주 여행의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초저가를 찾는 똑똑한 관광객 입맛 맞추기

국내 여행을 하더라도 경비를 줄이기 위해 인터넷으로 비교해보고 꼼꼼히 준비하는 사람이 늘었다. 가격대비 만족할 수 있는 최저가 상품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런 수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제주의 각 숙박·특산품·쇼핑·음식·항공·렌터카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인하했었다. 이렇게 상품원가가 절감되니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 가격도 내려갔다. 

최근 취항한 '이스타 항공'의 송기택 홍보실장은 "인터넷을 통해 예매할 경우 항공기(보잉 737-NG기종, 131석) 전 좌석의 10%에 한해서 탑승료 최저가 1만9900원(공항이용료·유류할증료 제외)에 제공하고 있다. 선착순으로 제공하다 보니 설 연휴 전후로는 비수기인데도 3월까지 최저가 좌석은 만석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세일기간에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몰리는 홍콩의 성공적인 외국 사례를 본떠서 제주시에서는 지난 가을 '제주 그랜드 세일'도 벌였다.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 신중훈 대리(32)는 "제주 물가가 비싼 편이라 같은 가격이면 동남아로 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고전을 면치 못했었다"며 "하지만 국내로 몰리는 여행객을 잡기 위해 20~50%까지 대폭적인 세일에 들어갔었다"고 전했다. 

 
15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 지하철역사 안. 제주시와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가 오는 2월 12일부터 제주에서 여는 '제주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를 홍보하는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제주특산품과 제주관광상품권을 내건 플래시 게임에는 20여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 마감을 알리는 행사 진행자의 말에 줄을 서려던 사람들이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들불축제'는 병충해를 없애고, 불에 탄 풀이 재가 돼 그해의 목초를 연하고 맛좋게 하도록 들불을 놓는 것을 말한다. 이날 소원을 엽서에 적어내면 축제 당일 함께 태워준다고 한다.

직장인 김여진(37)씨는 "제주에서 그래도 가장 볼만한 축제라고 들었다"면서 "가족들이 하는 일을 다 이루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소원엽서를 적어내려갔다. 주부 한현숙(48)씨는 "지난 여름 제주도로 휴가 갔을 때 제주 감귤 초콜릿을 사와서 맛있게 먹었다"고 말한 뒤 "딸과 함께 백화점 쇼핑을 나왔다가 초콜릿을 받고 싶어서 줄을 섰다"며 웃었다.
 
대학생 이미현(20)씨는 "친구들과 명동에 놀러왔다가 참여하게 되었다"며 "겨울 방학 때는 여름 방학과 달리 비수기라 제주여행 가격이 더 저렴해 한 번 가볼까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여행 비용이 너무 비싸져 좀 망설여지기 때문에 국내로 눈을 돌렸다"며 "들불 축제는 처음 들어봤는데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주체한 제주도특별자치도관광협회의 신중훈 대리는 "지난해 목표 관광객 수를 돌파하면서 올해에는 이 여세를 몰아 600만명을 목표로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가운데 하나로 서울 도심에서 이렇게 다양한 이벤트를 벌여 직접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라며 "예전처럼 그냥 감귤 나눠주고 구경만 하는 행사는 사람들이 식상해하기 때문에, 흥미를 끌기 위해 직접 참여하는 행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원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어서 앞으로도 국내 여행의 수요가 많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전했다.

태그:#제주도, #관광, #들불축제, #제주관광, #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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