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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문제로 작년 말부터 뉴스의 정점에 있던 장수중학교 김인봉 교장이 오늘(15일)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어젯밤 전라북도교육청 앞에 마련돼 있는 천막을 찾아 오늘 오후 1시, 징계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키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교육청 기자회견장에 있었던 나는 징계위원회(위원장 김찬기 전북도 부교육감)가 앞으로 10일 후에 징계내용을 결정·통보한다는 발표를 믿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서울 사는 친구의 문자를 받고 중징계 사실을 알았다. 인터넷이라는 게 이렇게 때로는 엄동설한에 사건 현장에서 사건의 진행을 지켜 본 사람을 까막눈으로 만들고 따뜻한 방 안에서 컴퓨터를 들여다 보는 사람을 천리안으로 만들기도 한다.

 

유난히 추웠던 오늘 이른 아침, 출근시간에 맞춰 몸 벽보와 팻말을 들고 시위를 했던 우리가 콩나물 국밥집에서 아침을 먹으며 설왕설래했던 징계수위의 여러 정치적 고려와 변수들이 쓸모없는 입방아에 지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정직 3개월의 중징계는.

 

부교육감을 위원장으로 교육청의 실장, 국장, 과장, 장학사 등 10명의 내부인사들로 구성되는 징계위원회에서 이렇게 중징계가 나오리라고 예측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우세한 것은 '무리'라는 것이었다.

 

일제고사 날 체험학습을 신청한 학생들의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일일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초중등교육법 48조에 나와 있는 학교장의 적법한 권한으로 이를 승인한 것이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김 교장의 정직 3개월

 

교육청 김찬기 부 교육감은 어제 부임한 분이다. 교과부 본청으로 전입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전임 이중흔 부교육감이 교과부의 강경방침을 어기고 가벼운 징계결정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징계 하기에는 사안이 경미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징계날짜를 미뤄오지 않았겠냐는 추측이다. 부임하자마자 중징계의 칼날을 휘두르기에 신임 부 교육감으로서도 명분이 취약할 거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물론 다 빗나갔지만.

 

김인봉 교장이 징계위원회 심문을 마치고 기자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내려왔을 때는 신문과 방송 기자들이 스무 명 넘게 모여 있었다. 질문들은 주로 징계위의 분위기나 징계수위에 대한 예측, 그리고 앞으로의 대응 방침에 대한 것이었다.

 

김인봉 선생은 세 가지로 요약해서 답변을 했다. 첫째는 교육자로서 일제고사를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학생의 창의성과 교육의 자율성을 죽이며 농촌교육을 파탄 낸다는 점을 들었다. 둘째는 이번 사건이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일제고사를 교장 권한을 이용해서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61명의 장수중학교 3학년 학생 중 54명이 시험을 봤다는 사실을 들어 그렇게 말했다.

 

학교장이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면 단 한사람도 시험을 치를 수 없었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작년 10월 당시에 가정통신문이나 기타의 방법으로 일제고사를 안 봐도 된다는 식의 부추김이나 권유조차 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소개했다. 셋째로는 앞으로도 일제고사를 보거나 안 볼 수 있는 학생의 권한을 침해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학습권에 속하는 부분이라는 설명이었다.

 

체험학습은 학습형태의 하나, 학생결정은 존중의 대상

 

기자들은 정직 이상의 중징계가 떨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물었다. 김 교장은 "경징계가 되었건 중징계가 되었건 관계없이 징계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안에 대해 징계를 한다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 고유의 학습권에 대한 침해이며 학교장의 법적 지위와 역할에 대한 부정이라는 것이다. 현행법으로도 체험학습이 정당한 학습의 한 형태라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체험학습을 선택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정당한 학습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듯했다. 그것은 존중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기자들의 질문이 너무 건조하다 싶어 나는 좀 다른 차원의 질문 두 가지를 했다. '작년 12월 23일에 있었던 두 번째 일제고사 때 이를 학교차원에서 안 보기로 결정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냐'라는 질문이 첫 번째 질문이었다.

 

당시 김 교장은 10월 일제고사 때 학생들의 체험학습 요청을 승인한 것 때문에 징계위에 회부된 상태였다. 비록 12월 23일 일제고사는 전북도교육청에서 단위 학교가 시험 응시 여부를 결정해도 된다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 해도 이를 거부하는 결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는 판단에서다.

 

김 교장은 "솔직히 무척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런 결정이 개인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았다면 사람이 아니지 않겠냐"면서도 "운영위원회에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정했기에 존중했다"고 말했다.

 

내가 한 두 번째 질문은 김 교장의 발언들이 안타까워서 한 질문이었다. 징계위원들이 새 학기 때도 일제고사가 연이어 있는데 어쩔거냐는 질문을 몇 번씩이나 했다는데 왜 그리 고지식하게 '본다 안 본다 말 할 수 없다. 여전히 학교 구성원들의 민주적인 의사수렴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했냐고 물은 것이다.

 

이른바 '개전의 정'이 있는지 보고 경징계의 구실을 삼으려고 징계위원들이 그런 질문을 부러 했을 수 있는데 그 눈치를 못 채고 완고하게 그런 답변을 했느냐는 질문이었다. 정치적인 감각을 발휘해서 "최근 일련의 사태들을 잘 되짚어 보면서 지혜롭게 잘 대응하겠습니다"라고만 답변을 해도 훨씬 부드럽지 않았겠냐는 내 식의 걱정에서 그렇게 질문을 했는데 김 교장은 한참 웃더니 짧게 답변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것 외에 다른 답변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래 갈 싸움... 공교육이 무너지는 마지막 파열음

 

3일 동안 교육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던 장수군대책위와 사회공공성공교육강화 네트워크 관계자 40여명은 간단한 정리집회를 하고 헤어졌다. 전교조 교사와 농민회 회원, 장수중학교 학부모, 그리고 시민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나는 김 교장의 정직 3개월 소식을 들으면서 도리어 판단이 명료해졌다. 우리의 공교육은 치유가 불가능한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근 10여 년 동안 두 자녀 덕분에 대안학교 관계 일을 해 오면서, 최근에는 '스스로 세상학교'나 '100일 학교' 또는 '보따리 학교' 등의 활동을 하면서 갖게 된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학생과 학부모, 선생들이 대대적인 탈출을 시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정부를 반대하고, 저지하고, 규탄하는 데 더 이상 정열을 탕진하지 말고 공교육이라는 이름의 국민 사육장에서 대 탈주를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정 공교육을 살리는 마지막 선택 앞에 우리는 서 있다는 느낌이다. 가르쳐서 길러낸다는 의미의 일방적이고 오만한 '교육'을 미련 없이 버리고 서로 서로 배우면서 자신과 상대방을 함께 자라게 한다는 '학육'의 세계를 향해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배로부터 이어진 수십 년 한국 공교육의 역사는 교육의 무덤을 파는 역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가 만들어져 십 몇 년을 투쟁했어도 학교의 교장을 축으로 하는 봉건적 질서 하나 바꾸지 못했다. 소청심사를 거치고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이번 중징계 철회 싸움은 오래 계속 될 것이다. 그동안에 진정한 모반을 꿈 꿔 보면 어떨까.


태그:#김인봉, #일제고사, #장수중학교, #대안교육, 100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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