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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6일) 국회에서는 그동안 한나라당이 추진해 온 이른바 '방송법 개정안' 통과가 무산되었다. 그런데 오늘(7일) 아침 조선닷컴을 보니 '방송장악 음모 운운 MBC가 파업하는 진짜 이유'(7일자 <조선일보> A8면 보도)라는 제목의 기사가 메인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일보>는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은 것에 미련이 참 많은 모양이다.

 

제목이 거창하여 뭔가 새로운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 기사를 읽어보았다. 기사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의견을 근거로 들면서 MBC 파업이 MBC 직원들의 '밥그릇 지키기'라고 주장했다.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기사였다.

 

따지고 보면 어제(6일) '공정언론시민연대'(이 단체는 한나라당 추천 방송위원인 김우룡씨와 <중앙일보> 출신 성병욱씨가 공동대표로 있고, 전 <조선일보> 주필인 류근일씨가 고문으로 있음)에서 발표한 'MBC 노조에 경고한다'라는 성명서를 대서특필한 'MBC의 우격다짐'이라는 기사의 재탕인 셈이다.

 

그런데 한 가지 새로운 내용이 있었다. 그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발간한 '산업실태 조사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MBC 서울 본사에는 1765명이 근무하고 있다. 똑같이 1개 채널을 갖고 있는 SBS 직원은 884명이다. MBC는 지난 2007년에 777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SBS는 635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인력은 MBC가 2배나 많지만 매출액은 SBS와 큰 차이가 없다. 증시에 상장된 SBS는 '시장'의 감시를 받고 KBS는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다. 반면 MBC는 주식시장의 감시도, 감사원의 감사도 받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MBC가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신규 방송사업자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인력 구조를 비롯, 많은 부분에서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MBC가 수십년째 이런 구조로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KBS MBC SBS 3사에만 독점적으로 지상파 종합TV채널을 허용한 '독과점'체제가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이번 방송법 개정안은 시장 진입 규제를 완화해 다양한 사업자를 시장에 끌어들이고 이를 통해 산업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정리하면 인력 대비 매출이라는 '시장논리'를 들어 MBC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방송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방송도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와야 하는데 이번 '방송법' 개정안이 그런 취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이야 워낙에 '시장'을 맹신하고 있으니 방송에서 '문화'라는 측면보다 '상품'이라는 측면을 더 중요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장논리'를 적용했을 때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MBC 스타 직원들이 전면에서 나서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김주하·나경은·문지애·박경추·박혜진·서현진·손정은·오상진 등 MBC 간판 아나운서를 비롯해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방송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시장 진입 규제를 완화해 다양한 사업자를 시장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했다. 이는 기존의 지상파 방송사의 소유구조에 변화를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지상파 방송사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SBS가 개국할 당시 MBC, KBS에서 보던 아나운서들이 어느 날 갑자기 SBS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것을 이채롭게 봤던 기억이 있다.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많은 방송인들이 SBS로 옮겨갔다.

 

방송사가 늘어나면 방송 관련 일자리가 많아지게 된다. 또한 인지도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스타 방송인들은 희소가치로 인해 자연 몸값이 뛸 수밖에 없다. 즉 방송인 개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으로 보자면 방송사가 더 생긴다는 것은 '밥그릇'이 더 커지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앞서 언급한 MBC 스타 직원들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굳이 따져 보면 그들은 더 커질 수 있는 자신의 밥그릇을 스스로 걷어차고, 지금의 밥그릇만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장논리'대로 하면 스타 직원들은 이번 방송법 개정안을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한다.

 

결국 <조선일보> 기사에서 "MBC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 이대로의 MBC가 제일 좋다'는 종업원들의 속내를 '정권의 방송 장악' 논리로 교묘히 포장해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없다고 하겠다.

 

오히려 <조선일보>가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지금 이대로의 방송법 개정안은 안 된다는 MBC 종업원들의 순수한 의지를 밥그릇 지키기 논리로 교묘히 포장해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나아가 <조선일보>가 방송사 소유를 위해 '지금 이대로의 방송법 개정안이 제일 좋다는 속내를 시장논리로 교묘히 포장해 드러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지난 6일 전국언론노조 '총파업 4차 결의대회'에는 MBC 노조뿐만 아니라 SBS, KBS 노조위원장도 함께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이른바 보수언론이 말하는 '밥그릇 지키기'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잃는 대목이다.

 

일단 방송법 개정안 통과는 무산되었지만 다가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언론 관련 핵심 법안을 처리한다고 하니 다시 한 번 여야의 첨예한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더불어 보수언론의 '방송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힘 실어주기도 예상된다. 그때도 천박한 '시장논리'와 '밥그릇론'을 들고 나올지 궁금하다.

 

세상에는 '시장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이치가 있고, '밥그릇'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언제쯤이면 보수언론이 알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태그:#방송법, #MBC, #조선일보, #방송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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