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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에는 묵은 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하고 싶은 소망이 담겨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해가 바뀌었건만 묵은 것을 보내지도 않았고 새 것을 맞이하지도 못했다. 연말연시에 걸쳐 20일 동안이나 격렬하게 치러진 이른바 '입법전쟁' 때문이었다.

 

1월 6일자 대부분의 보도들은 여야협상이 타결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야당이 국회 농성을 풀었고 여당도 의장 직권상정을 단념했으니 일견 '타결'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타결이 아닌 '봉합'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법안을 이른 시일에 협의나 합의하여 상정하기로 노력한다는 것이 여야 합의 내용이다. 우선 그 협의와 합의의 개념은 정확히 무엇이 다른 건지. 만약 협의나 합의가 안 된다면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또한 이른 시일이란 언제를 말하는지, 그리고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또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등 석연치 않은 문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이번 입법전쟁을 기획한 청와대와 한나라당 친이 직계 의원들은 여전히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갈 길이 바쁜데 안타깝다"며, "개혁이 한 템포 늦춰지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국회 외교통상위원장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했고, 문방위원장인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은 "불만스럽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특히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국회의원 전부 불만이다"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심지어 그들은 직권 상정을 하지 않은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배신자'라는 말을 썼다고 한다.

 

속도를 맨 처음 강조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나가는 대열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끼어있으면 그 대열 전체가 속도를 낼 수 없다"며 국정 운영에서 속도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입법 기도에 '전쟁'이라는 살벌한 말을 처음 붙인 이는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다. 그는 전쟁이라고 했지만 국민의 눈에는 '입법의 난(亂)'처럼 비쳤을 뿐이다.

 

박희태 대표도 작년 12월 15일 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돌파 내각, 돌격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하면서 "전광석화처럼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밀어 붙여야 한다. 속도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로 '속도전'은 북한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그런데 대북관계를 파탄 낸 이명박 정부 사람들이 이 말을 즐겨쓰고 있다.

 

한나라당이 입법전쟁에 본격 착수한 것은 박희태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 3일 후였다. 그들은 12월 18일 국회 외교통상위 회의장을 봉쇄하고 단독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단독 상정함으로써 야당에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이후 여야는 20일 동안이나 전쟁을 치르면서 국민을 가뜩 불안하게 만들고 나서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은 제대로 송구영신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같은 용어인 전쟁으로 비유한다면 이번 입법전쟁은 삼팔선을 휴전선으로 바꾼 한국전쟁처럼 희생만 잔뜩 치른 채 휴전한 지극히 소모적인 전쟁이었다. 그런데도 이 사태에 대해 책임지려는 사람이 하나 없다는 점도 한국전쟁 후와 흡사한 양상이다.

 

국정운영능력 부재 여실히 드러낸 청와대와 친이직계

 

우리는 지난 제야에 보신각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목격했다. 현장을 중계한 공영방송 KBS가 화면과 음향을 노골적으로 조작했다. 우리는 이 일에서 3공과 5공 시절을 떠올려야 했다. 동시에 이것은 이명박 정부의 불안한 미래를 점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일이 또 있었다. 그것은 경찰이 시민의 풍선을 빼앗은 일이었다. 동서고금 아무리 지독한 독재정권도 시민의 풍선을 빼앗았다는 기록은 없다. 결국 우리 국민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일을 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이름 하여 '풍선의 자유'를 박탈당한 것이다.

 

방송 조작과 풍선의 자유 박탈, 이 두 가지 사건은 새해 한국인들의 삶이 더욱 척박해질 것을 예감케 했다. 동시에 그것은 이명박 정부의 성격과 능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불온한 사건이기도 했다. 새해 벽두의 징조대로 우리는 이번 입법전쟁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격과 능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혹자는 입법전쟁이 국회 일이므로 정부 책임은 아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청와대와 친이직계가 기획하고 주도한 것임을 알게 해 주는 여러 정황이 이미 드러났다. 또한 그들은 사태가 악화되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들이 당 원내 지도부와 국회의장에게 끊임없이 전쟁을 주문한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대야 협상 공식 창구인 홍준표 원내대표가 몇 가지 협상안을 제시했을 때, 친이직계 강경파들은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진성호·이군현·심재철 의원 등은 "본회의장에 단전·단수를 해서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게 해야 한다"는 등의 극단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이 번번이 협상과 타협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물론 청와대의 의도 때문이라고 본다. 당시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는 여야협상과는 별도로 계속적으로 85개 법안 일괄 통과를 바라고 있고 이상득 전 부의장이나 이명박 직계 의원들 모두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들은 철저히 이 대통령의 의도를 좇아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 대통령이 지난 섣달 말일에 국회 사태에 대해, "오늘, 내일은 (직권상정을) 안 한다고 하면 모두 편할 텐데"라고 말하자 그들은 잠시 조용해졌었다. 그러다가 1월 2일 이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이제 국회만 도와주면 경제 살리기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다시 강경 노선으로 표변했다. 그들은 협상을 벌이는 홍준표 원내대표와 질서유지권을 발동하지 않는 김형오 국회의장을 가차 없이 성토했다.

 

1월 5일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도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은 현실과 사태를 읽지 못한 채 끝까지 법안 통과가 관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들로 볼 때, 85개 법안 처리 작업의 정점에 있었던 이상득 의원과 법안 몰아붙이기를 주문한 청와대 참모들에게 가시적인 문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청와대와 친이직계가 최소한의 국정운영능력이라도 있는 것인지를 회의하도록 만든다. 능력이 없으면 타인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법인데 그들에게는 그런 아량과 겸손도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경우 아무리 민선정부라 할지라도 어느 순간 붕괴의 위험에 봉착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날치기의 추억과 절차가 무시된 다수결

 

1996년 12월 26일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은 새벽 시간을 타서 노동법 날치기를 감행했다. 그때 155명의 여당 의원들은 바지에 먼지를 일으키며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해야 했다. 결과 6분 만에 11개 법안이 속도전으로 통과되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형제도 있었다.

 

정부·여당은 다수결의 원칙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운다. 하지만 절차를 무시한 다수결은 이미 다수결이 아니다. 그들이 '85개 개혁 법안 리스트'를 확정한 것은 연말을 불과 사흘 앞둔 12월 28일이었다. 그러고는 연내 통과가 마치 역사적 과업이라도 되는 양 큰소리를 친 것이었다.

 

85개 법안 가운데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것이 무려 58건이다. 가장 예민한 쟁점 법안인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12월 24일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솔직히 미디어 관련법이 그렇게 중요한 법안인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한나라당은 다수결이 그렇게도 꼭 지켜야 할 원칙이라면 왜 노무현 정부 때에는 걸핏하면 의장석을 점거하고 국회를 박차고 나가 장외투쟁을 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부·여당의 입법전쟁 패배는 자업자득의 성격을 띤다.

 

덧붙이자면 이번 사태는 친이직계가 아니라고 해서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의 처신은 지나칠 정도로 기회주의적이다. 당 중진이자 유력한 대선주자라면 일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견제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이명박계가 어려워진다 싶으면 불난 집에 살짝 기름 치듯이 한 마디씩 하는 그의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는 쇠고기 파동이나 대운하 문제에도 비슷한 처신을 보였다.

 

아무튼 지금 한나라당은 단일정당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친이계와 친박계가 갈라져 있다. 그러므로 이 대통령은 국민 통합을 요구하기 전에 당내 통합을 먼저 이뤄야 할 것이다. 또한 국민의 반대가 심한 법안들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는 발상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은 정부가 경제가 어려운 점을 역이용해서 무슨 법안이든 통과시키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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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작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85개 법안, #MB악법, #이명박 , #이상득,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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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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