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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소망을 안고 새해 첫 아침이 밝았습니다. 올해는 남편의 띠인 소띠해라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파동으로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미친소'가 등장하여 본의 아니게 우직한 소가 폄하되기도 했습니다.

 

옛날에 농가에서 소가 미쳤다면 그해 농사는 다 지었겠죠. 소는 식용으로 뿐만 아니라 농가에서는 재산목록 1호로 가족처럼 지내던 소중한 동물이었습니다.

 

소 팔아서 대학을 보낼 정도로 농촌에서 자란 사람들은 소의 은혜(?)를 입고 힘들게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상아탑이라고 부르는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영향으로 소 한마리 팔아도 대학 등록금을 대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맨손으로 거대 기업 현대를 일으켜 세운 故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1996년 방북을 할때 소는 남북 화해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때 보낸 소들은 지금은 다 죽고 그 소의 새끼들이 대를 잇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남북 화해의 물꼬를 텄던 그 소들은 다 없어지고 지금은 오히려 미국에서 미친소가 들어오고 수입산 쇠고기가 대형 할인마트에서 팔리고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참 요상한 세상입니다.

 

이렇게 소는 작년 한해동안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올해 소띠해를 맞았습니다. '소 뒷걸음 치다가 쥐 잡는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그 뒷걸음질에 잡힌 쥐입니다. 남편은 소띠고 저는 쥐띠이기 때문입니다. 저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 소띠와 쥐띠가 만나면 잘 산다고 했는데, 그 말을 믿고 살아서 그런지 소띠 남편과 결혼 이후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살았으니 할머니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결혼 이후 남편은 소처럼 우직하게 가족을 위해 힘든 내색 안 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어젯밤(12월 31일) 11시 58분 쯤에 남편에게 "소띠해 축하하고, 무엇보다 올해도 늘 건강하세요?" 하니 남편은, "이제 소가 늙었다는 소리로 들리네. 아직은 한창이야" 합니다.


사오정 고개를 넘어 남편은 이제 오륙도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아직 지천명도 넘지 않았지만 벌써 오륙도를 걱정하는 남편이 안쓰럽습니다. 작년에 경기가 안 좋아 남편 회사에서도 명퇴와 감원태풍이 휘몰아쳤고, 올해 역시 그 태풍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편 세대는 흔히 하는 말로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끌어온 세대지만, 요즘 감원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불쌍한 세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어깨가 가끔씩 힘이 없어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지 모릅니다.

 

올해 소띠해를 맞아 아내로서 남편에게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은 사실 건강입니다. 결혼 이후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일해 온 남편이 늙은 소 취급을 받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늘 나이는 먹었어도 마음은 이팔청춘이라고 하지만, 지난해 다르고 올해 다른 남편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어젯밤 12시가 넘어 남편과 함께 포도주 한 잔을 마시며 새해 소망을 빌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건강을 빌었는데, 남편은 어떤 소망을 빌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명퇴, 감원 태풍이 휘몰아치지 않도록 해주고, 올해도 회사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진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아마도 남편의 새해 소망은 이 시대 모든 가장들의 소망이기도 할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http://fiancee.tistory.com)와 다음 블로그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새해, #감원태풍, #명퇴, #실직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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